퀘스트 - 줄거리를 회수하라
김연주 지음, 박시현 그림 / 풀빛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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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든 믿음이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서툰 믿음만큼 관계를 해치는 것도 없으니까.

이 책은 고등학교 1 학년 서하나와 스토리텔러가 함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속, 꼬여버린 줄거리를 회수하는 퀘스트를 달성해 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퀘스트란 롤플레잉 게임에서 주인공이 NPC(Non-Player Character)로부터 받는 임무, 즉 미션을 말한다. 책에는 녹색 글자로 표시된 부분에 나온다.

처음에는 하나 혼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으로 들어가고 그다음에는 스토리 텔러 B와 함께 <어린 왕자> 속으로 간다. 마지막은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가 <별주부전>과 함께 섞여버린 이야기 속으로 A와 함께 간다.

어떻게 사람이 책 속으로 들어가지? 신비한 자수정 때문이었다. 이것을 일정 속도 이상으로 진동시키면 차원의 틈이 열려서 책 속의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는 것. 그래서 이 외계 물질 NF3908은 '책 속으로 향하는 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나는 자기 방에 갑자기 책 속에서 나타난 스토리텔러 A를 만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으로 들어갔다. 엘리스가 된 것이다. 이렇게 빙의가 돼버리면 엔딩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빙의된 책에서 나갈 수 없다. 이곳에서 줄거리를 회수해야만 한다.

하나의 놀라운 점은 빙의된 캐릭터에 동화된다는 것이다. 책 감응도 수치 100%. 동화자는 캐릭터에 스토리텔러처럼 빙의되는 것이 아니라 동화된다. 빙의는 한 육체에 2개의 영혼이 공존하지만, 동화는 한 육체에 한 영혼만 존재한다. 캐릭터의 영혼과 융화되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줄거리를 회수하자, 스토리텔링 협회에서 하나를 데리러 나온 스토리텔러 B와 만나게 된다. 그다음 퀘스트는 <어린 왕자>다. 장미로 빙의된 B가 간 소행성에는 어린 왕자가 아닌 팝콘만 잔뜩 먹어서 뚱뚱해진 할아버지가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여우로 동화된 하나는 보아뱀과 친구가 되고 진화한 보아뱀이 소행성 B612로 하나를 데려다준다.

하나가 어린 왕자에게 가니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어린 왕자를 산책시키세요'라는 퀘스트가 주어졌다. 하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공원을 걸었다. 왜 우울한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를 때는 걷다 보면 이런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정리되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단다. 나도 무조건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게 내버려두며 걷다가 점점 아무 생각이 안 나게 되면 뇌가 쉬게 되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어린 왕자는 노을을 보며 이게 마지막이라고 한다. 하나는 내일 또 보면 되지 않냐고 했는데, 어린 왕자는 오늘의 노을은 오늘뿐이라며 슬퍼한다. 하늘 아래 같은 붉은색이 없듯, 노을도 다 다르다고. 그래서 십인십색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우리 모두는 다 다르기에 세상이 빛난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에 재밌게 봤던 <대행사>라는 드라마 대사처럼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나처럼 책을 읽으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을 키워간다면 기쁨은 배로, 슬픔은 반으로 나눌 수 있는 멋찐 어른이 될 것이다.

이제 어린 왕자와 이별할 시간.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호를 떠날 준비를 한다. 하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정이 든 걸까? 이런 게 길들여지는 걸까? 우리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지구를 떠나야 한다. 그때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졌던 장미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서로를 길들이는 연습을 하나보다.

하나는 사무실에서 눈을 뜬다. 줄거리 회수 완료를 알리는 종료음과 함께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어쩌면 헤어진 어린 왕자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사진과 동영상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실물로 볼 수는 없지만 내 마음속에 늘 나와 함께 살아있는 것 같다. 내가 잘 한 일 있으면 혼잣말로 엄마에게 자랑하니까.

마지막은 <별주부전>과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가 섞인 책 속으로 A와 함께 간다. 둘 다 토끼가 되었는데 별주부 전에서는 A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줄거리를 바로잡고, 거북이와 경주하는 토끼에 동화된 하나는 색다른 결론을 내면서 줄거리를 회수한다.

대한 스토리텔링 협회 이사장은 진상갑이고 스토리텔러 A에게 신입들이 다쳐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악명 높은 X가 배후일 것이라고 했다. 자수정과 안티 스토리텔러인 X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이제까지 발견된 조각은 5개. 이제 마지막 조각 하나를 찾아야 한다. 과연 이렇게 줄거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왜 그랬을까? 책 속에서 함께 찾아보자.

나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렇게 정신없이 읽었는데 내 조카에게 선물해 주면 엄청 좋아할 것 같다. 표지까지 반짝반짝 빛나서 너무 예쁘다. 나는 아직 나의 꿈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찾으려고 책을 읽는 과정이 행복하다. 설령 꿈을 찾지 못한다 해도 매 순간 새로운 책과 함께하는 여행 자체가 참 즐겁다. 소설 속 하나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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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 서울을 잇다 - 공학 박사가 들려주는 한강 다리의 놀라운 기술과 역사
윤세윤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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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전한 한강을 위해 희생되신 모든 분들께 이 책을 바친다.

<한강 다리, 서울을 잇다>는 한강에 있는 다리와 함께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제정된 '시설물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안전한 통행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고 이후 한강의 모든 다리에 정밀 안전 진단을 시행했고, 유지관리라는 개념이 등장해서 더 이상의 사고는 없었던 것이다.

한남 대교 이야기 중에 소양강댐이 한강 수위를 조절하여 강남 지역을 대도시로 변모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때 강줄기 흐름을 바꾸고 산을 헐어야 하는 어려운 공사를 하다가 공사 중 37명의 기술자와 근로자가 작업 현장에서 순직했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수도권에 살면서 집이 한 번도 물에 잠긴 적이 없다면 이분들의 희생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안전 뒤에는 이런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한강에 대해서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그냥 있나 보다 했지 느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한강도 다리도 진심으로 느껴진다. 굳이 왜 느껴야 하냐고? 우리나라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내가 한국인인 것이 참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국의 템즈강과 파리의 센 강은 우리나라의 안양천 또는 분당에 있는 탄천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강이었다. 그에 비하면 한강은 1킬로미터 이상의 강폭을 가진 거의 바다인 셈. 그래서 강 바람이 센 거였다. 바다처럼 큰 강이어서.

다리를 떠나 남산이랑 관악산 우면산 정도만 알고 있던 나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인왕산, 청계산, 아차산 등도 모두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 이렇게 많은 산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전주 한옥마을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북한산 한옥 마을도 있었다.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에서 서울이 가장 잘 내려다보인다고 한다. 여기는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니 정말 서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대중교통으로 다리를 관람하는 법이었다.

1. 양화대교

한강 최초의 다리가 한강 철교라면 우리나라의 기술로 지은 최초의 다리는 양화대교다. 다리 이름은 몰랐지만 잠두봉의 순교자 박물관은 오다 가다 많이 봤던 것 같다. 누에가 머리를 든 모습과 비슷해서 잠두봉이다. 머리가 잘리는 산이라는 뜻의 '절두산'이라고도 한다. 그저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쉽게 죽여도 되었던 가슴 아픈 흔적이다.

합정역 7번 출구로 나가 한강 방향으로 가면 절두산과 순교자 박물관이 있는 양화진으로 갈 수 있다. 선유교를 건너면 양화한강공원으로 가게 된다. 9호선 선유도역에서 걸어왔으면 이 다리를 통해 선유도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알려주는 가이드북 역할도 톡톡히 한다.

2. 원효대교

영화 <괴물>에서 한강 어딘가의 콘크리트 터널 같은 공간이 원효대교 북단에 위치해 있다. 원효대교의 이름은 원효로에서 따왔고, 원효는 원효(元曉) 대사에서 따왔다. 효창공원에는 원효대사의 동상도 있고 백범 김구 선생의 묘와 기념관까지 있다는 것을 나만 지금 안 건가? 원효대사가 괴물을 때려잡는 원효대교.

원효대교는 5호선 여의나루역 2번 출구와 연결되어 있고,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한강공원 주차 사이트에서 주차장 상황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에디스톤 등대에 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3. 한강 철교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처음 놓인 것이 한강 철교다. 철도가 지나는 다리를 철교라고 하고 철로 만든 다리도 철교라고 한다. 한강 철교는 제1철교에서 제4철교의 4개가 있는데 9호선 노들역 1번 출구로 나와 사육신 역사 공원으로 가면 한강철교를 볼 수 있는 우수 조망명소라는 전망대가 있다.

노들역에서 건널목을 건너 노들나루공원을 대각선으로 질러가면 한강대교 입구의 사거리가 나온다. 이 입구의 왼쪽으로 자전거와 사람들이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같이 있다니, 나도 한강 변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한강 철교를 느끼고 싶다면 노량진역에서 1호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가면 된다. 급행을 타면 제1철교와 제2철교를 이용해서 한강을 건너볼 수 있다.

강철왕 카네기를 아시는지? 나는 카네기란 사람이 강철처럼 굳세게 뭔가 인생에서 이뤄낸 사람이어서 위인전에 나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철강회사를 만들어서 강철왕이라고 한다. 초딩 때 들었던 강철왕의 뜻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회사 이름은 바뀌었지만 본사는 피츠버그에 있고, 미식축구팀 이름도 스틸러스다.

한강철교와 에펠탑은 같은 트러스 구조로 만들어졌다. 책에는 이 구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한강 철교를 지날 일이 있으면 이 다리가 에펠탑과 같은 츄러스 구조로 되어있다고만 기억하겠다. 츄러스나 트러스나 발음이 비슷하니깐.

서울 함 공원도 특이하다. 성산대교 북단에 퇴역 군함과 잠수함을 전시하는데 아이들뿐 아니고 어른도 가면 이색적인 볼거리라 재밌을 것 같다.

4. 한강 대교

옛날에 한강에 다리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건넜을까? 배 타고 건넜겠지? 그런데 정조는 배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배를 강에 엄청 많이 띄우고 그 위에 판자를 연결하면 배다리가 된다. 어찌 이런 생각을?

그러면 물속에 어떻게 교각을 만들었을까? 교각(橋脚)은 다리를 받치는 다리, 즉 기둥을 말한다. 위아래가 뚫린 양동이를 모래사장에 세우는 것으로 비유를 해 주시니 이해가 쏙 되었다. 위아래가 뚫린 양동이를 케이슨이라고 한다. 케이스라고 생각해도 될 듯. 그래서 이런 공법을 오픈 케이슨 공법이라고 한다.

한강 대교는 제1한강교, 양화대교는 제2한강교, 한남 대교는 제3한강교라고 불렀는데 1984년 한강 다리 이름을 일제히 바꾸면서 한강 대교가 되었다. 현재 한강대교는 1930년대와 1980년대의 나이가 다른 쌍둥이 다리다.

9호선 노들역 3번 출구로 나와 걸으면 노량진 문화원과 노량진 교회가 있고, 용이 달리고 봉이 날아드는 정자라는 뜻의 용양봉저정이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가기 위해 한강을 배다리로 건너고 쉬던 행궁이다.

나는 용양봉저정 공원에서 블로거들이 찍은 사진으로 다리 사진을 보았다. 너무 멋있다! 하늘 전망대 조망점에서는 원효대교, 한강철교, 한강대교가 보인다. 정말 아치 모양의 흰색 쌍둥이 다리네? 나도 어디 가서 이제 아는 척 좀 할 수 있겠다.

5. 반포 대교

반포대교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2층 구조의 다리다. 위를 반포대교라 하고 비 많이 오면 잠기는 아래쪽을 잠수교라고 한다. 게다가 드라마에서 보는 멋진 분수쇼를 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9호선 고속터미널 역 G2 출구는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에서 반포 한강공원까지 이어지는 360미터 길이의 지하 통로가 공공보행 통로로 개방되어 있다. 이 통로를 통해 지상으로 나가지 않고 곧바로 반포 한강공원에 도달할 수 있다. 통로 끝자락에 이르면 하얀 타일로 마감된 구간이 나오는데 여기서 아래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통해 한강공원으로 진입한다.

계단을 내려와 잠시 걸으면 장대한 반포 대교와 잠수교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 상류 쪽으로 걸으면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동작역에서 반포 한강공원까지 무료로 운행되는 한강 해치카 셔틀 정류장이 있다.

세빛 섬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튜브스터라고 배에서 식사를 즐기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는 세빛 섬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튜브 스터에서 1시간에 55,000원이면 한강에서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 대신 튜브 스터?

6. 한남 대교

혜은이의 '제3한강교'라는 노래 제목이 한남대교다. 이 노래가 유행한 이후, 오렌지족이 등장했고,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가로수길 같은 상권이 탄생했다. 경기 남부에서 서울 시내로 가기 위해 빨간색 광역 버스를 타면 경부고속도로에서 나오자마자 왕복 12차로의 한강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 다리가 바로 한남대교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한남대교에서 남산타워가 보이고 아 서울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남산 1호 터널을 지나면 명동으로 진입한다. 이 다리 덕에 말죽거리는 땅값이 1년 사이 10배가 올랐지만 강남지역은 상습 침수지역이라 개발되기 어려웠다. 오늘날의 강남을 있게 한 것은 소양강댐 덕분이었다.

7. 성수 대교

수인 분당선 서울숲 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서울숲공원 정문이 나온다. 문화 예술공원, 생태숲, 체험학습원, 습지 생태원의 특색 있는 4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어 공원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 식사를 하고 가기를 추천한다. 생태숲으로 가는 길에는 성수대교 북단 아래를 지나게 된다.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는 서울숲공원에서 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울타리로 막혀 도보로 접근이 힘들다. 위령비조차 도보로 접근이 어려운 현실은 우리 사회가 그들의 희생과 교훈을 얼마나 쉽게 잊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우리 사회의 아픈 기억이지만, 그 고통을 짐작하기조차 어렵지만 성수대교 붕괴로 희생되신 분들과 무학여고 학생들,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을 자책하며 생을 마감하신 부모님들을 추모하고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을 받으셨던 유가족 분들에게 책으로나마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작가님의 마음에 감동했다.

8. 올림픽 대교

올림픽 대교는 88 서울 올림픽을 영구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현상 공모를 시행하여 당선된 설계를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주탑 꼭대기에 있는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윤동규 교수의 '영원한 불'이라는 작품이다. 이 조형물을 내려놓고 하강하던 헬기는 로터가 조형물과 부딪치며 추락했고, 조종사, 부조종사, 기관사 모두 현장에서 순직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자.

암사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한 암사종합시장이 있다. 여기서 간식을 사고 길을 건너 버스를 탄다. 340번, 3318번, 3324번 중 하나를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광나루한강공원으로 들어가는 즈믄길나들목 가는 길이 나온다. 하류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천호대교 아래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천호대교를 지나면 올림픽대교와 테크노마트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이 펼쳐진다.

강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테크노마트 9층 '하늘공원'에서는 올림픽대교를 더욱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블로그 사진을 보니 정말 올림픽 대로가 눈앞에서 쫙 펼쳐진다. 이곳 일몰이 장관이라고 하니 꼭 노을 시간에 갈 것.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한다. 테크노마트 옆에는 이제 사라져 가는 포차 거리도 있다.

이렇게 8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다리에 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등대 이야기, 댐 이야기, 경제 이야기, 사회 이야기 등 다리를 통해 서울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구경 하고 온 느낌이다. 나중에 시간 되면 이 책 한 권 들고 나도 한강 다리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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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은 선물이었다
정성교 지음 / 좋은땅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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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별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예쁘다.

이 책은 자연과 함께 걸으며 자연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의 작지만 큰 실천 이야기다. 환경운동가이자 산을 오르며 청소하는 저자의 인스타그램에는 자연에서 거둬들인 우리들의 부끄러운 흔적들이 한 봉지 가득 담겨 있다. 이 봉지야말로 아름다운 자연을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사랑 그 자체가 아닐까?

이 책은 산 타는 남자 정성교 작가님의 세 번째 책이다. 전작에서의 산과 함께하는 풍경은 그대로 두고, 이번에는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 넣었다. <부족은 선물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자연을 접하고 느낄 수 있었다. 부족했기에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다. 현재의 나는 자연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이 만들어 준 것임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이자 제일 큰 학교인 자연 속으로 출퇴근을 한다.

책에서 얻은 수익금을 자연에 기부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 산을 오르며 자연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이 확대되어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왠지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오른다. 우리가 이렇게 자연을 아끼면, 자연은 더 맑고 푸르른 공기를 선물해 주지 않으려나?

요새 공기질이 너무 나빠서 목이 매일 칼칼하고 아프다. 게다가 어제까지만 해도 패딩을 입었는데 갑자기 반팔을 입어야 할 지경이다. 이런 환경을 우리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전기랑 가스도 아끼고, 옷도 입던 옷 엔간하면 계속 입고, 쓰레기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 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님처럼 아무나 오를 수 없는 등산 코스를 돌며 산에 있는 쓰레기를 치워내는 일도 있었다. 나는 등산이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막걸리 한잔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흥청망청 놀다가 버리고 간 쓰레기들은 작가님께서 모두 다 거두어 오신다. 나는 작가님의 이런 행동이 너무도 인상적이고 귀하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등산을 하시면서 쓰레기 주울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작가님 산행의 목적 자체가 쓰레기 줍기다. 건강은 자연이 덤으로 선물해 주지 않을까. 쓰레기를 줍기 위해 산을 오르기는 해도, 쓰레기를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는 작가님... 특히 담배꽁초 앞에서는 가슴이 철렁하셨단다. 작은 불씨 하나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회사의 주주는 지구라는 파타고니아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회사도 개인도 이렇게 자연을 위하는 마음들이 모인다면 이제 머지않아 다시 사계절을 느끼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실천하는 한 사람의 힘이 두 사람을 만들고 그래서 공동체가 생기고 자연은 더 넓고 크게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사랑의 선순환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니, 어머님께서 해주셨다는 흑설탕을 묻힌 인절미 구이가 생각난다. 나는 내가 먹고 싶어가지고 이것을 누가 사업 아이템으로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릇노릇하게 즉석에서 인절미를 구워서 꿀도 찍어 먹고 흑설탕도 찍어 먹고, 콩고물도 묻혀 먹고, 꿀 찍어서 콩고물을 또 찍어 먹고 취향껏 인절미 구이를 즐기는 것이다. 너무너무 맛있을 거 같다.

이 인절미 구이 이야기에 대전역에서 파는 호떡 빵 생각이 났다. 호떡은 식으면 맛이 없는데 페이스트리로 되어 있고 안에 슈크림이 들어서 언제 먹어도 맛있다. 그런데 인절미를 즉석에서 구워서 먹을 수 있다면? <오징어 게임>이 옛날 놀이를 현재에 재현했듯 이 책 속에는 스타트업을 하실 분들의 추억의 소환 거리가 많이 나온다.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다.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이 소시지와 계란, 어묵 반찬을 싸올 때, 저자의 도시락에는 밥과 김치, 멸치뿐이었지만 한 번도 도시락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나만의 세상이 있고,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어서 짜증이 나거나 투정과 불평이 가득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만들어 왔고 내가 만들어 갈 것에 대한 소중함. 이 소중함에 대한 반응이 더 커야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남이 가진 것, 남이 누리는 것에 반응하는 것은 스스로 내 속에 억지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도 처음 결혼했을 때 남들은, 내 친구들은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우리는, 나는으로 시작하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도 친구들이 투자를 잘해서 또는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에 아파트를 샀다는 말을 들으면 질투 난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책을 왜 읽나 싶다. 하지만 이때 자연을 생각해 보았다. 좁은 도시와 빌딩숲이 아닌,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넓은 자연 속에서는 강남 아파트 건 지방 월세방이건 똑같이, 건물이 아니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보인다.

자연과 가까이하면 철학자가 되나 보다. 길을 잘못 들거나 실수를 하면 자책하거나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자연을 통해 배우면서 스스로 나아져 간다는 것을 느낄 때 얼마나 뿌듯할까?

스스로의 만족이 반복될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 자존감의 비교 대상은 나 자신이 된다. 이렇게 계속 성장하면서 꾸준한 만족감을 느끼면 감사와 행복이 저절로 넘친다. 이렇게 풍요로운 삶은 자연이 가르쳐 준 내 안으로 걸어가는 길을 택했을 때 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그저 자연을 숨 쉬게 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좁은 길을 걷고 계신 작가님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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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태국 여행을 10배 재밌게 만들어 주는 책 - 뻔한 태국 여행은 그만
김정욱 지음 / 상상의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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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의 탈을 쓰고 있지만 철저히 인생의 저축이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유명한 곳을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사진을 찍어오는 것이 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여행에 대한 생각을 근본부터 완전히 바꾸어 놓은 고마운 책이다. 표지에 있는 말, 뻔한 태국 여행은 그만이라는 말은 나처럼 사진 찍고, 맛있는 거 먹고, 쇼핑하고 오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한 말이다.

그 뻔한 여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 추억이 있고 행복이 있다. 그런데 보다 깊은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실려 있다. <당신의 태국 여행을 10배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란 작가님의 20여 년간에 걸친 태국 여행을 통해 태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왜 태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또다시 태국을 오가며 일일이 직접 갤럭시 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구성했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관광명소 사진도 있지만, 뻔한 장소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아니고서는 알려줄 수 없는 특이한 곳을 많이 알려준다. 일례로 방콕 시내에 위치한 '짐 톰슨 하우스'나 '국립 방콕 박물관' 같은 곳이다. 한국 관광객들이 의외로 잘 가지 않는다고 하니 여유로운 관광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사뭇쁘라깐'을 아시는지? 우리나라 4호선 끝자락인 '오이도역'에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듯 방콕에서 BTS를 타고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나는 왜 방탄소년단이 태국에 갔나 싶었다는. 찾아보니 방콕 수도권과 근교를 잇는 도시철도를 BTS라고 했다.

BTS รถไฟฟ้าบีทีเอส, Bangkok Mass Transit System의 약자인데, 2025년 1월 기준, 일일권을 판매한다. 아침 일찍 구입하면 당일 내 몇 번이든 반복해서 탈 수 있다. '게하 역'으로 가면 역 가까이에 '사뭇쁘라깐 바다'가 펼쳐진다. 전망이 끝내주는 레스토랑도 많다. 책에 있는 레스토랑도 너무 낭만적이다.

태국을 사랑하는 저자가 태국의 여러 도시를 다니고, 머물며, 경험했던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색다르기도 한 에피소드들도 재밌다. 나무 옆에 웬 여자 옷인가 했더니 나무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 양주 킵 해놓은 것인 줄 알았더니, 오토바이 주유용 휘발유 병이었다. 태국이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라인 것도 처음 알았다. 게다가 '도입살길 천호필달'이라는 한국인도 모르는 한글 사진은 어떻게 찍으신 건지?

저자가 태국어를 처음 공부할 때는 분명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배웠기에 태국에도 4계절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국의 계절은 여름과 더운 여름 그리고 정말 미치게 더운 여름 이렇게 3계절이다. 한 마디로 태국은 그냥 사계절이 덥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나는 알 수 없는 태국 역의 비유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으로 비유를 해 주셔서 이해도를 확 높여버리신 저자님의 센스가 너무 맘에 든다. 첫 부분에 나오는 열차표 사건이다. 서울역에서 대전역을 가는 사람이 부산행을 끊었다. 가만있으면 대전역을 가는데 깜짝 놀라 수원역에 내려서 중도에 표를 바꾸었다. 딱 이런 상황이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대전에 사는데 수원에서 열차를 잘못 탔다. 중간에 천안에서 내려서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 열차를 타면 되는데 당황한 나머지 이상한 곳에 내려서 다시 네이버 지도로 경로 검색해서 한참만에 돌아서 대전에 왔다. 그래도 워낙 지도도 잘 되어 있고 내 위치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라고 방향까지 알려줘서 참 감사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서울역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타는 거 맞냐고 물어본 학생들도 생각난다. 내 표를 보여주니 수원역이 아니라 서울역을 간다는 것이다. 서로 타는 곳이 틀릴 거란다. 그래서 수원역 다음이 영등포역이고, 그다음이 서울역이라고 여기서 같이 타면 된다고 알려줬다. 언어도 잘 통하는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젠 태국에서도 휴대폰과 한국 신용카드로 기차표를 쉽게 예약할 수 있다. 심지어 침대 자리 지정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실수도 있고 사람 사는 재미도 있었던 옛날이 왜 그립게 느껴지냐고 묻는다.

나는 어문계열을 나와서 그런지 유독 언어에 관심이 많다. 태국어도 한번 배우고 싶었지만 성조가 5개나 된다고 하고 글씨도 도저히 내가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배울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자음이 42개라서 핸드폰에 있는 키보드가 두 판이라는 것이다. 시프트 위치에 있는 위로된 화살표를 누르면 새로운 자음판이 또 나온다. 정말 태국어 하시는 분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1월 2월 이런 식으로 월을 말할 때 숫자를 쓰는데 태국에서는 모든 달을 숫자를 안 쓰고 태국어로 쓴다. 그래서 자기들도 헷갈려 한다고 한다. 나도 검색을 해서 태국 글자를 한번 접해봤는데 눈이 뱅뱅 돈다. 1월 มกราคม (마카라콤), 2월 กุมภาพันธ์ (꿈파판), 3월 มีนาคม (미나콤)...@@...

저자는 월 이름이 별자리에서 유래한 것을 알게 된다. 복잡해 보이고 생소한 철자들 속에서 질서와 숨겨진 철학을 발견하는 순간 복잡함에서 기인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뭔가를 이해했다는 뿌듯함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으니,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태국을 떠올리면 태국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아닌데 돌아보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환한 웃음을 웃어 주고, 어려운 일은 자기 일처럼 기꺼이 도와주고 안심시켜 주었던 넉넉한 마음의 모든 태국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p.287)

이 책을 읽으니 '여행 작가'가 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태국 아저씨에게 100번 젓는 믹스커피 비법을 배우는 장면도 그렇게 행복해 보인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일상을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풀어내는 일, 읽는 사람도 함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계시는 작가님께 이 책 덕분에, 태국 가면 남들과 다른 일정으로 보다 많은 행복을 담아오겠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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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서 보낸 3만 시간 - 국가대표 무릎 주치의 김진구 교수의 메디컬 에세이
김진구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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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역사의 발전은 낡은 것과 새것의 충돌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금은 왜곡된 '보수'라는 단어가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서도 강직함과 정직함, 새로운 세대를 포용하고 존경받는 단어가 되기를 희망하며. 간절히... (p.236)

<수술실에서 보낸 3만 시간>은 의욕이 없는 분,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분들을 위한 책이다. 김진구 선생님은, 이렇게 산 사람도 있구나 하며 흥미롭게 들여다봐주면 좋겠다고 하신다. 에세이 집을 소설책처럼 읽다가 멈춰 생각했다가 다시 읽기의 과정을 반복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과정을 서점에서 읽었다고 상상해 보았다.

내가 서점에 가서 무심코 책을 펴 읽기 시작한다. 재밌어서 빠져든다. 드라마에 나올 듯한 응급상황에서는 지금 그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맘이 급해져 막 빨리 읽는다. 음악을 들으며 수술하는 장면을 읽으면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환자가 결국 죽음을 택한 장면에서는 함께 마음이 아파진다. 감동적인 장면에서는 따라서 울고 있다. 결국 책장을 덮고 이건 나 혼자 읽을 수 없다며 들고나온다.

내가 죽음을 택한 환자의 소식에 함께 마음 아파하는 것을 Sympathy(동정, 연민)라고 한다. 감동적인 이야기에 따라 우는 건 Empathy(공감)이다. 만약 의사가 환자에 대해 동정심을 갖는다면 불쌍하고 딱해서 내가 어떻게 해서든 꼭 고쳐주고 싶다. 수술이 잘 되면 자랑스럽다. 내가 의사라는 우월감도 느낀다. 그러다가 못 고치면 스스로 자책한다. 그런데 만약 의사가 공감을 한다면 어떨까?

환자의 아픔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의사 역시 사람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환자의 완치는 스스로의 노력과 보호자의 정성 또는 신의 은총 일 수도 있다. 그러면 내가 고쳤다는 사실은 자랑이 아닌, 내가 내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자긍심이 남는다.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가 안 좋아도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더 연구하고 노력하게 된다.

선생님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전문가나 최고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돌팔이라는 말을 일부러 더 가져다 썼다고 한다. 나는 고작 돌팔이에 불과하다며 스스로 교만해 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인간적으로 환자에게 다가가 어떻게든 환자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돌팔이라는 말에 진 빚이 참 많다.

나는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 후배들에게 하는 당부 5가지가 참 좋아서 그것을 중심으로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이제는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다. 그래서 이 당부는 꼭 의대생 뿐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를 빛나게 하는 당부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1. 외로운 사람들을 사회는 전문가라 부른다.

선생님은 하루 마지막에 하는 샤워만 자신을 위해서 하고 하루 세 번 이상 하는 나머지 샤워는 모두 환자들을 위해서 한다. 나를 믿고 내게 몸을 맡긴 환자들을 위한 배려다.

처음에는 너무 귀찮고 힘들었지만, 힘들수록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것이 프로가 되기 위한 유일하고 혹독한 비밀이었다는. 그래서 프로는 디테일이 다르다는 말이 생겼나 보다.

2.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숨기지 마라.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연구실에 뼈와 무릎관절 모형을 사들여 수술 노트를 새로 작성한다. 교과서 반 페이지 분량이 네 장에 걸쳐 60 단계의 술기로 세분된다. 나는 술기(術技)라고 해서 기술의 오타인 줄 알았다. 의학 분야에서는 숙련된 기술을 술기라고 한다. 보통 기술이 아니라 어려운 기술이니까 강조해서 기술을 거꾸로 말한다고 기억하기로 했다.

손재주가 없다는 관용어인 all thumbs를 열 손가락이 다 굵고 짧은 엄지손가락이어도 어느 손가락보다 더 회전이 자유롭지 않냐며 초긍정 마인드를 보여주신다. 정말 엄지손가락을 잘 마사지하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잠도 잘 오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하니, 엄지손가락은 아주 쓸모 있는 손가락이다.

이런 긍정 마인드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나 진상은 꼭 있다. 진상을 순화해서 블랙 컨슈머라고 한다. 악성 소비자라는 뜻이다. 병원에서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나고 선생님은 "나는 의사가 아니라 호텔 지배인이다. 지배인은 고객과 싸우지 않는다"라며 그때마다 스스로를 세뇌했다.

어떤 환자분이 인터넷에 비방글을 올려 속수무책으로 당한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무책임한 글로 매도당하면서 덕분에 내가 인터넷 스타가 되겠다고 하셨지만 진실이 왜곡되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래서 앞으로는 환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더 상세하고 친절히 설명하고, 환자의 궁금증에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 홈페이지에 비밀 게시판을 만들어 이런 블랙 컨슈머들이 실컷 불만을 올릴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싶다. 모든 불만은 직원이 아닌 이 게시판에 올려야 접수가 된다고 하면, 직원들도 좀 편해지고 게시판에 실컷 불만을 적다 보면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3.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라.

선생님은 수술을 할 때 <레 미제라블> 하이라이트 17곡을 다운받아 틀어놓고 노래가 바뀔 때마다 수술 속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펠로우, 전공의, 간호사 등으로 이루어진 한 팀이 음악 덕분에 편안함과 긴장감이 적당히 어우러져 하루 수술 스케줄을 물 흐르듯 소화해낸다.

음악을 이용하니 수술팀들은 30분짜리 곡을 틀으면 탄성이 터지고 두 시간짜리 곡을 틀게 되면 수술이 복잡하고 까다로울 것이라는 예고라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명령이 아닌 배려하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나는 타이머를 이용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몇 분인지를 체크해서 그 음악이 끝나기 전에 숙제를 끝낸다던가, 그 음악이 끝나면 반드시 쉬어야 한다던가 하는 음악을 이용한 시간 관리법도 매우 유용한 팁이다.

슈만을 틀어달라는 소녀에게 슈렉은 안다고 하니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으로 긴장을 풀고 소녀는 어려운 수술을 잘 마치고 재활도 잘 이겨냈다는 이야기. 일본의 와세다 대학이 세상에서 가장 센 대학인 것도 처음 알았다. 와~ 세~다!

4. Empathize! (공감하라)

나는 사기를 당해 본 적이 있어서 사기꾼이라는 말이 너무 싫다. 그런데 이 책으로 사기꾼이라는 말을 들으면 웃게 되었다. 내 마음의 상처도 조금 치유된 느낌이랄까.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 환자와 의료진의 사기를 높이려면 내가 먼저 수술팀의 사기를 올리는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 때문이다.

사기꾼이란 말이 나도 힘든데 모두의 사기를 위해 내 마음을 숨기고 에너지가 넘치는 척 기분 좋은 척 사기 친다는 뜻이기도 하고, 단순히 사기를 올려주는 사람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기 친 사기꾼은 덕분에 나는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 독서를 시작하게 만들었으니 나의 사기를 올린 사기꾼 맞다.

진정한 사기꾼(?)은 김연경 선수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야기를 할 때 남을 탓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는 늘 남 탓만 하고 살았는데... 언제나 자신에게 닥친 시련과 좌절을 기꺼이 감당해내려고 애썼던 그녀의 은퇴를 통해 그녀와 같은 멋진 사기꾼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응원한다.

이미현 선수가 친엄마를 만나고, 엄마는 자신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는 소식도 너무 기뻤다. 비록 어쩔 수 없이 입양을 보내야 했지만 그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이렇게 다시 만나 과거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나도 행복해진다.

5. 진실한가?

수술할 때 이렇게 저렇게 하지 말라고 떠드는 모든 것들은 지난 25년간 했던 실수들이라고 한다. 이 실수를 숨기지 않고 모두 밝히고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다.

손재주가 없어 수술도 잘 못하던 사람이 구제불능 의사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 실수를 기록해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이도가 있는 기술은 사체 해부실이든 모의 뼈 수술이든 수술실이 아닌 곳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했다. 모든 좋은 수술은 모든 실수에 대한 명료한 기억이다. 각 과정마다 실수한 것을 적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술기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노트를 달았다. 지금도 120여 단계의 Dr. Kim's Note를 가지고 있다.

논문을 심사할 때 교수님는 그 논문이 거짓말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지적할 체크 리스트가 70여 개나 준비되어 있다. 아들에게도 교수님께서 논문을 리젝트 할 때 왜 이 논문이 거짓인지를 반박할 체크리스트가 70가지가 넘는다고 했더니 아주 좋은 정보라며 좋아한다.

친구여 우리가 걸어온 길을 너무 특별하다고 여기지 말자는 말. 나 혼자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는 알량한 자부심도 내려놓자는 말. 그리고 나 혼자의 힘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말에 그동안 쌓인 응어리가 다 풀려 버렸다.

수많은 이들의 도움과 연대가 있었으며 눈에 보이진 않아도 신의 가호와 선의가 나를 끌어주고 밀어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나 혼자 애써 버티며 살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덕이었다. 나도 이렇게 세상을 넓게, 고맙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제는 우리가 길이 되자.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가 길이 될 수 있다. 길이 되기 싫으면 응원하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그것도 함께 길이 되는 게 아닐까? 선생님의 모든 수술이 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듯 말이다.

선생님은 할아버지 무릎을 고쳐주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을 기증하여 장기를 이식해야 하는 환자를 고쳐주고, 건강을 되찾은 장기 이식 환자는 지친 내 마음을 고쳐주고, 돌고 도는 행복이란다. 이 맛에 오늘도 가운을 휘저으며 수술실과 진료실을 누빈다고. 받은 것을 나누려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 때문에 힘든 고비를 숱하게 넘어올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시겠다며.

나도 선생님처럼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인 날이 좋으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하면 적당해서 모든 날이 다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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