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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연탄으로 만든 길
허기복 지음 / 좋은땅 / 2024년 9월
평점 :
밥은 하늘이다. 하늘 아래 밥을 먹는 일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밥이 하늘이면 연탄은 땅이다.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어머니의 품처럼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땅이다.
<밥과 연탄으로 만든 길>은 나눔과 섬김의 길이다.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길, 나의 행복을 위한 길이다. 저자는 밥상을 차리고 연탄을 날랐다. 그저 누군가가 배고픔과 추위에 내몰리지 않게 하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26년을 지나오면서 밥과 연탄은 빛나는 순간을 수없이 탄생시켰다. 이 책은 바로 그 순간들의 모음이다.
'밥'이라는 글자는 밥이 담긴 그릇처럼 생긴 'ㅂ'이 서로 마주 보듯 놓였고, 수저를 집어 든 손처럼 생긴 'ㅏ'로 이루어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이 하나의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글자에 이미 가족과 공동체의 의미가 담긴 셈이다. 굶주린 민중들에게는 밥이 곧 생명이고 삶이었으니 밥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하늘이었던 것이다.
3.65kg, 신생아의 몸무게와 비슷한 연탄 한 장에는 우리 삶의 여정이 담겼다. 연탄은 아래쪽 연탄이 타올라야 위쪽 연탄도 불이 붙는 구조이므로 홀로 타지 못한다. 적어도 두 장이 꼭 필요하다. 마치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모습 같다.
이 책은 나만을 위해 살았던 나 자신을 너무나 작고 부끄럽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연탄을 때는 곳이 있다는 것, 연탄보일러가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연탄은 음식점에서 레트로 감성을 위해 쓰이는 소품인 줄로만 알았다. 또 연락 끊긴 자식이 있다고 부양의무자가 있는 것이 되어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어르신이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사회 곳곳에 내가 모르는 아픔이 이렇게 많은 줄은 상상도 못했다.
1994년 가을, 원주 의관 교회 담임목사로 온 저자는 IMF로 빈곤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데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무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당장 이웃의 주린 배를 채워 주지도 못하면서 하나님 말씀만 전하는 것이 공허해했던 그 죄스러운 마음, 이 마음이 우연한 시작이었다. 종교라는 이름에 하나님을 가두는 것이 아닌, 그저 공기처럼 당연히 계신 분임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래서 1998년 원주천 쌍다리 아래에서 밥상공동체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땅을 사서 원동이라는 곳에 밥상공동체가 뿌리내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여정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대표적인 활동들을 정리해 보았다.
밥상공동체(1998) : 무료급식
연탄은행 : 연탄 제공(온기 지원) -여름을 날 수 있게 에너지 은행으로 도약 중
신나는 빈민은행 : 무담보 소액대출은행
백사마을 신나는 아동센터 : 방치되는 아이들 돌봄
백사마을 비타민 목욕탕 : 어르신들 공중목욕탕
마을관리소 : 전구도 갈아끼워드리고, 고장 난 곳도 고쳐드리는 아파트 관리소와 같은 역할
지구촌 지원 : 북한, 인도 캘커타, 중국 연변, 키르기스스탄 등 우리는 지구라는 마을의 가족이다.
구두 대학 : 대학이 뭐 별거인가? 사람이 다니면서 공부하고 익히는 곳이면 대학이다. 구두 대학은 기술을 배워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고 등록금도 무료다.
봉사와 나눔은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큰 진짜 부자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 어떻게든 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태도로 무장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가만히 좀 있지, 왜 나서서 일을 벌이냐는 생각을 가진 분들은 어딜 가든 꼭 있는 것 같다. 내가 다 알아서 한다. 다른 일이 많다. 기다려 보자는 식의 미루는 말을 달고 사는 분들이다.
게다가 임대 아파트 아이들이 단지를 가로질러 등교하지 못하게 한 아파트는 것은 드라마에서 보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냐고 격분했는데, 정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드라마가 현실을 좀 걸러서 보여주는 것이란 말이 실감 났다. 사람을 돈으로 차별하는 것이 정말 명품 아파트일까?
요새는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명품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악기 다루는 게 없다고, 골프를 못 친다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차별을 해서 적응하지 못하고 나와서 주상복합 아파트나 프리 실버타운 등으로 간다고 한다. 돈으로 차별이 안 되니까 별 걸 다 만들어서 차별을 한다. 이것이 명품 실버타운일까?
저자가 바라는 것은 나눔과 봉사가 특별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데 돈으로 자기가 가진 것으로 남을 차별하는 사람에게 나눔과 봉사의 마음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작품이며,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이런 분들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겠지? 상처가 많아서 그런 거겠지? 하며 마음을 진정해 본다. 우리가 모두 명품은 아닐지라도 '한정판'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그런데 연탄 때는 집들 때문에 지역 전체 이미지가 나빠진다, 땅값이 떨어진다는 말을 한 지자체장들도 있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또 화가 났다가 또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런 것이려니 한다.
세상에 불우이웃은 없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만 있을 뿐이다.(p.239)
불우 이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그리고 나눔과 섬김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든다. 자원봉사를 한 그룹의 면역 기능이 강화되거나 다른 사람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면역력이 상승해 건강해진다는 마더 테레사 효과가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다른 이에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칼 야스퍼스의 말이 맞다. 그렇다면 돈으로 차별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으니 아직 인간이 아닌 게 아닐까? 사람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인 존재인데 이타심이 없으니 사람이 아니지 않나?
허기복 목사님은 다른 사람이 강한 망치가 되려 할 때, 나는 나무를 고정하는 못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했다. 내가 좀 두들겨 맞더라도 군데군데 낡고 부서진 그들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힘든 이웃들이 버틸 수 있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못의 길을 걷고자 했다. 믿음은 앎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신 분. 나 하나가 잘 되기보다 이 세상이 잘 되기를 기도하신 분의 이야기가 사람이 아닌 분들의 이야기를 그저 불쌍하게 여기라고 내 어깨를 다독여 주신다.
밥상 공동체는 땀이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는 곳이다. 이 책을 집어 든 고마운 독자님들도 나와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살기를 바란다. (p.261)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930/pimg_7913331534448101.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