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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통문
구름과벗 지음 / 좋은땅 / 2024년 8월
평점 :
절대 안 되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반드시 되는 것이다. <기경>과 <비상명>의 문구들이 실은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자 신기하게도 하나둘씩 퍼즐이 맞춰져 갔다.
나는 바둑을 배운 적은 없지만 '바둑에서의 한 수'라는 뜻의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장그래를 응원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한 이후, 인공지능의 능력에 대해 새삼 놀랐던 기억도 있다. 한동안 바둑에 대해서 잊고 있었는데 인공지능과 바둑의 예술성을 초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해서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최근 챗 GPT의 등장과 함께 딥러닝으로 더 똘똘해진 인공지능 덕에 앞으로는 바둑도 AI와 함께 더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인공지능 앱으로 익힌 바둑을 직접 실물 바둑으로 연습해 보는 동아리나 방과 후 활동도 생기면 좋을 것 같다. AI로 바둑을 배워 바둑 급수도 따고 바둑 대회에 참여해 보아도 좋을 듯.
<기통문>은 주인공 활귀와 인공지능 회사 EM의 사장인 유간산의 싸움 이야기다. 마치 알파고와 인간의 싸움을 연상시키지만 그 사이에 <기경(棋經)>과 <비상명(非常名)>이라는 바둑의 비법서가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과연 이 번에도 승리는 인공지능일까?
기통문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조선 시대, 바둑으로 유명했던 단원 김홍도와 당시 조선 국수였던 독고혁인 천원화는 절친이었다. 천원화가 월하산 중턱에 큰 바둑 도장을 짓고 이름을 단원에게 지어달라고 했다. 단원은 바둑을 한자로 '기'라고 하고, 돌들이 서로 호응하고 통함으로써 오묘한 이치에 이르는 것이니 통할 '통'자를 넣어 '기통'이라고 지었다.
이때, 천원화는 바둑에 대한 모든 것을 집대성한 <기경>을 써서 봉인하고 이를 얻는 자는 천하 바둑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반면 바둑의 수읽기가 빨라 번개같은 손놀림을 의미하는 전수(電手)였던 바둑 고수 애꾸눈 최공은 천원화의 무심법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비상명>이라는 책을 쓴다.
활귀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문 앞에 버려진 아기를 기통문파의 문주였던 청산걸인이 거두어 길렀다. 아기 이름은 불교에서 쓰이는 활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활귀라고 지었다. '활구'란 의미가 있고 뜻이 통하는 말이라는 뜻으로 말만 앞세우지 말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는 마음에서였다.
활귀는 동갑내기 달기가 초능력을 써서 불상이 부서졌을 때 <기경> 이라는 두루마리 책 8권을 발견하고 바둑의 세계를 홀로 깨닫는다. 문파 내에서 바둑을 제일 못 두던 활귀는 독고혁인의 신령한 영기를 가득 받고 <기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기통문의 후계자가 된다. 활귀는 소문주가 되어 기통문의 여러 가지 사무를 배우던 중 기통문을 배신하고 EM으로 간 변정에게 납치된다.
쌍백 : 양부문(良否門) 문파의 8대 문주가 EM에서 투자한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도망가자 양부문은 EM에 통합된다. 후계자였던 쌍백은 양부문이 통합되자 원수EM 회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기통문으로 가서 양부문의 후계자임을 밝히고 EM을 물리치는 데 힘을 합친다. <비상명>이란 책은 대구 양부문 문파의 창시자 박무달이 가지고 있었다. 양부문 문주가 달아나자 쌍백이 <비상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중에 활귀의 수에 허점이 보이자 쌍백이 활귀에게 이 책을 보여준다.
진호림 : 친할아버지 청산걸인의 뒤를 이어 제16대 문주가 되었다. 기통 문파의 사활 집 <퇴마사활>의 증보판 <신퇴마사활>을 만든다.이 책은 기통문의 비밀 서적으로 문파 제자들만 볼 수 있다. 양부문이 사라지고 쌍백으로부터 유간산이 바둑계를 수중에 넣어 큰 돈을 모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변정 : 기통 문주 진호림이 곁에 두고 가르친 기통문 후계자였다. AI에 관심이 많아 EM에 다니는 학교 선배 허달회에게 바둑 부장 자리를 제안받고 EM으로 간다. 인간의 마음을 닮은 인공지능 연구, 마음 창조 프로젝트로 EM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을 꿈꾸며 EM의 후계자가 된다. 기통문과 함께 경쟁하며 성장하면 참 좋았을 것을... 활귀를 납치하고 활귀에게서 <기경>을 빼앗는다.
유간산 : 20층 건물에 300명의 직원이 일하는 인공지능 개발 회사 EM(Every Mind) 사장. 바둑을 좋아하는 천재적인 과학자이다. 비류문, 기통문, 양부문의 세 문파을 통합해서 자기가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이들이 EM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송종문 : 죽도에서 혼자 낚시를 즐기다가 바다의 정령 아라를 만나 달기라는 딸을 낳는다. 초능력이 있는 달기는 달의 기운을 받지 못하면 죽을 운명이라 달의 기운이 가장 강한 서울 북쪽에 있는 월하산에서 산다. 망망기원을 운영하며 수선화로 딸 달기의 치료 약을 개발한다.
활귀, 쌍백, 유간산, 변정, 진호림과 송종문 정도의 등장인물만 알고 읽어도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달기가 달의 기운을 받지 못해 쓰러져서 EM에 잡혔는데,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달기를 구하기 위해 활귀는 <기경>의 8개의 두루마리 중 마지막 두루마리 묘수 편을 감추고 7개만 유간산에게 가져가 달기를 구해온다. EM은 이 7개의 두루마리를 인공지능에 탑재하여 개발한다.
20회째를 맞이하는 평창 바둑 대회에서 한국의 바둑 AI가 우승한 것은 EM 사의 361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모든 대국에서 상대의 대마를 모조리 잡아 버렸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 EM 사의 361이 제시하는 길만 따라가고 자신들의 고유한 바둑은 두지 않게 되었다. 바둑 본래의 즐거움과 낭만이 사라지고 오직 승부에만 집착한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승리의 길만 따라갔다.
서울의 북쪽 의정부에는 한국기원이 있는데 여기서 40회째를 맞이하는 지존배 세계 바둑대회가 열린다. 지존배는 달빛 일보와 한국기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세계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활귀가 우승하는데, 아마추어가 우승한 건 바둑 역사상 최초였다. 한국기원은 활귀를 초단으로 임명했다. 활귀가 프로가 된 것이다.
프로가 되고 각성한 활귀는 <기경>과 <비상명>의 상극의 두 바둑책을 하나로 합친 전대미문의 파워를 가지고 EM 361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pro_361과 싸워 이긴다. EM과 배신자 변정은 어떻게 될까? 송종문은 달기가 달의 기운 없이도 살 수 있는 약을 개발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바탕으로 미생 이후 아주 재미있는 바둑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