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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의 세계 - 인체의 지식을 향한 위대한 5000년 여정
콜린 솔터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4년 9월
평점 :
책이 쓰인 시대의 지식과 사고방식을 보존하는 장치라는 의미에서다. 특정 주제의 서적을 시기별로 훑으면 그 변천사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해부학자의 세계>를 통해 해부학에 관한 서적들을 시기별 훑었더니 해부학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래서 책 제목이 '해부학의 역사'여도 좋았겠지만 너무 흔해서 지금 제목으로 한 것 같다.
해부학은 의대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다. 조각가와 화가도 인간의 형태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해부 구조를 배워야 한다. 르네상스 이후로는 미술학교에서도 해부학을 가르쳤다. 자연스러운 동작과 사실적인 인체를 표현하려면 뼈, 근육, 관절 등의 구조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술 해부학이라는 과목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베스트셀러 <파브리카>를 쓴 베살리우스의 일화도 재밌다. 그의 동료 콜롬보는 베살리우스를 아주 좋은 친구라고 하면서 뒤로는 그를 깎아내리고, 베살리우스는 자기가 콜롬보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섰지만 서로 좀 더 격려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는 없었을까?
17세기에도 사람의 몸은 신의 이미지를 본떠서 만든 것이라 함부로 손을 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런 혐오감과 공포심은 풍자와 유머의 소재가 되었다.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 무서운 사람은 그 장면을 찍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웃으면 덜 무서워진다는데 옛날부터 두려움을 웃음으로 승화한 지혜가 놀랍다.
1장 : 고대 (기원전 3000~기원후 1300)
가장 오래된 해부학 기록은 이집트의 파피루스다. 파피루스 자체도 3600년이나 된 것인데 그 안에는 5000년 전 문헌에 대한 기록이 있다니 고대 인류도 참 똑똑했던 것 같다.
고대에서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근대 의학의 선구자 갈레노스, 바그다드 최고의 의사 알라지, 전통의학을 집대성 한 이븐시나 와 최초로 관중 앞에서 시신을 공개 해부한 몬디노 데 루치에 대한 내용과 희귀한 그림 및 도해가 나온다. 어떻게 이렇게 몇 천 년 전에 사람의 몸속을 연구했는지 대단하다.
2장 : 중세 (1301~1500)
인쇄술의 출현으로 복제가 가능해지고 삽화를 판화로 넣을 수 있는 기능도 생겼다. 최초의 근대 해부학 책인 <인체의 해부>에서는 해부학을 철학에서 분리하여 과학으로 다루었다.
중세는 별로 유명한 사람이 없어서 해부 극장만 생각날 것 같다. 시체 냄새도 역하고 죽은 사람의 몸속을 보기가 찝찝했을 텐데, 연극도 아닌 공개 해부를 쇼처럼 진행했다. 강독사는 높은 곳에 앉아 해부 구조를 설명하고, 해부자는 실제 절개와 적출을 한다. 지시자는 뾰족한 막대기로 강독사가 설명하는 부위를 가리키며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시체 밑에는 떨어지는 사람의 장기를 먹으려고 개가 기다리고 있다. 그림이 마치 사진처럼 세밀해서 깜짝 놀랐다.
해부학 삽화의 선구자 귀도 다 비제바노와 해부학 삽화에 채색을 한 선구자 만수르 이븐 일리야스라는 의사의 삽화를 보면 해부도가 쭈그린 자세를 하고 있다. 중동 지방 해부도의 전형적인 특색이라고 한다.
15세기 유럽에서 인체 해부가 합법화되면서 알렉산드로 아킬리니와 안토니오 베니비에니, 독일 의사 요하네스 데 케탐과 히로뉘무스 브룬슈비히 등이 이 시기에 활약했다. 16세기 초, 마그누스 훈트의 <인간학>과 그레고어 라이슈의 화려한 목판 삽화가 일품인 <철학의 진주>가 해부학의 진보를 가져왔다.
3장 : 르네상스 (1501~1600)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는 모나리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다비드 상과 천지창조로 유명한 미켈란 젤로다. 이 당시 화가들은 인체의 비율을 중시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표현하려 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다. 이후 뒤러가 인체의 불완전성을 다양한 체형의 이미지로 인지하고 아담과 하와라는 작품을 그렸다. 그의 <인체 비율에 관한 네 권의 책>은 해부학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창의력과 지성의 정점이자 해부학의 예술적, 의학적 걸작이 모두 이 시기에 나왔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해부학이 인간의 겉모습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보였다. 해부학 지식은 15세기 중반부터 예술을 이끌었다.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화가 보티첼리는 가죽이 벗겨지고 해부된 주검을 그린 화가인 안토니오 델 폴라이우올로의 제자이다.
프랑스의 앙리 2세가 마상 시합 중 창 파편이 그의 눈을 뚫고 뇌로 들어갔을 때 치료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같으면 수술해서 쉽게 제거했을 텐데... 그러나 그 덕에 해부학의 필요성이 부각 되었을 것이고, 옛날에는 허구한 날 전쟁을 했을 테니 부상병들이 많아 치료를 거듭 하면서 해부학이 더 발전한 것 같다.
4장: 현미경의 시대 (1601~1700)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교에 세계 최초로 50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해부 극장을 설계한 파브리치는 20권이나 되는 의학서를 집필했다. 그의 제자 윌리엄 하비는 혈액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순환계를 밝혀냈다.
17세기 초 현미경은 아직 초기 단계였는데 이탈리아 미생물학자 마르첼로 말피기가 현미경으로 혈전의 속성, 혈전 생성과 좌우 심실에서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적혈구 세포를 관찰하고 인쇄했다. 그 후 현미경의 최대 배율이 500배까지 올라가자 토머스 윌리스는 신경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의 제자 레몽 뷰상은 뇌와 척수에 관한 연구를, 험프리 리들리는 뇌 해부서를 써서 뇌 해부학의 큰 발전을 이루었다.
5장 : 계몽의 시대 (1701~1800)
해부용 시체를 구하기 위해 갓 매장된 시체를 파내어 해부학 학교에 파는 불미스러운 상황을 방지하려고 영국 정부는 살인법을 제정했다. 처형된 살인자의 시신을 의과대학으로 옮겨 자세히 해부하는 공개 해부형을 집행한 것이다. 범죄 발생을 줄이고 해부학자에게 더 많은 시신을 제공할 목적이었는데 살인 사건이 줄어들었다. 결국 시신도 부족하고 과학에 대한 대중의 반감으로 17세기의 서적들을 그대로 인쇄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해부학 책이 컬러로 인쇄되었고, 해부 병리학이 탄생했으며, 침술, 뜸, 약초 치료 등 한방에 의존했던 일본에서도 18세기부터 과학적 해부가 시작된다.
6장 : 발명의 시대 (1801~1900)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화타가 만든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이다. 중국 최고의 명의 화타는 조조의 부름을 거절해서 고문당하다가 죽었다. 자신의 의술이 적힌 책을 옥졸에게 전하려 했지만, 옥졸이 처벌이 두려워 받지 않자 스스로 책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조조가 아니었으면 마비산의 제조법이 널리 알려져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조조가 나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의학적인 진보는 이제까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해부대에 올라감으로써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자의든 타의든 해부를 위해 누워 계셨던 분이나 해부를 하셨던 분이나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