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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라는 기적 - 난치병 환자들의 기적을 함께 찾아온 의사의 기록
김운 지음 / 더로드 / 2026년 9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익성이 낮고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관심에서 밀려난 사각지대의 환자들이 있다. 고위험 난치병 CRPS 환자들이다. 이 책은 그 환자들의 치료 과정을 담았다. 자신의 상태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불안 속에서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에게, 이 책은 난치라는 이름의 가짜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작은 망치가 되어줄 것이다.
1. CRPS란?
CRPS는 영어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의 약자로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특정 신체 구역(Regional)에, 극심한 통증(Pain)과 함께 피부·혈관·감각 이상 등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Complex) 얽혀서 나타나는 증후군(Syndrome)이다. 통증을 느끼는 신경 시스템의 센서가 고장 나서 사소한 자극에도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난치병을 더 이상 난치병이 아니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제로 회복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환자를 진정으로 낫게 하는 것은 환자의 몸 그 자체가 가진 자생력과 나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의사의 관심이다.
p.17 치료는 몸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상태를 이해하고 다시 회복의 가능성을 붙잡는 과정이기도 하다.
2. 환자의 치료
의사는 환자가 치료를 끝까지 완주하도록 돕는 조력자이자 페이스메이커여야 한다. CRPS란 병명은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치료 과정이나 회복 사례를 말하는 사람은 드물고, 환우 커뮤니티에는 절망적인 글이 가득하다. CRPS는 통증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추신경계가 변해 기능을 잃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약이나 차단술 같은 통증 중심 치료에서 벗어나 통증 조절, 중추신경계 정상화, 기능 회복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장부터는 환자들의 회복 이야기가 나온다. 이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회복됐는지 알 수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3. 회복 과정
환자는 절대로 매일 좋아지지 않고, 롤러코스터 같은 회복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특히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는 CRPS 고위험군 환자는 그 불안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람은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열심히 하면 좋아진다"라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변화가 없으면 치료 동기를 잃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환자들이 실제로 좋아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여준 다음, 회복 과정을 알려 주고, 완쾌된 환자의 후기를 직접 듣게 한다. 비슷한 고통을 겪은 환자들끼리 나누는 경험은 어떤 의학적 설명 보다 강한 위로와 확신이 되는 것이다.
4. 수술은 언제 필요한가?
수술은 수술을 받는 환자의 몸 상태와 이후 재활 계획이 뒷받침될 때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명의에게 수술을 받아도 환자가 이를 견뎌낼 몸과 재활 계획이 없다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CRPS 환자는 특히 더 그렇다. 급하게 수술하고 장기간 고정하면 재활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관절이 굳어 더 큰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물론 조기 수술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합병증과 결과를 충분히 따져 보고 선택하느냐, 절박한 마음에 운에 맡기듯 결정하느냐의 차이다. 성급한 수술은 환자의 소중한 기회를 잃게 하는 악수가 되기도 한다.
5. 일상이라는 기적
이 책을 읽으면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나도 최근 가족의 암 수술을 겪었는데, 모든 치료의 목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소중함을 몰랐던 평범한 하루로 돌아가는 것.
저자가 어떤 통증이든 어떤 길 위에 있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결코 닫혀 있지 않다는 말을 가장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가능성을 환자 스스로 너무 일찍 닫지 않도록 옆에서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것이 이 책이 닳고 싶었던 자리라고.
환자의 고통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덜 외롭다. 다만 회복이 길어질수록 보호자도 자신의 일상을 미루고, 답답함과 죄책감을 함께 떠안으며 지쳐간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때 보호자의 흔들림이 환자에게 그대로 전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보호자 스스로를 먼저 챙기라는 조언이 와닿았다. 나 역시 간병을 하면서 너무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다. 환자보다 먼저 쓰러지지 않으려면 나부터 챙겨야겠다.
환자에게는 희망을, 보호자에게는 버틸 힘을 주는 책이었다. 나처럼 치료가 길어져 지쳐 가는 환우와 가족에게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