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아닌 법 앞에서 - 4·3 법정 일기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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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짙은 하늘색 표지 위에 고요히 피어난 꽃 한 송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꽃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먹먹한 분위기가 감도는 그림이다. 그 위로 정갈하게 박힌 문구 하나가 시선을 붙잡는다. "4.3 법정일기". 이 짧은 글귀는 표지의 고요함을 깨고 우리가 마주해야 할 무거운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이 시집의 저자인 허영선 시인은 제주의 아픔을 집요하게 기록해 온 작가다. 제주 출생으로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연구자로서 4.3의 진실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쳐왔다. 현재 제주 4.3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시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주 4.3 사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에 달하는 약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흉터이자 여전히 치유되어야 할 현재진행형의 아픔이다.


보통의 시들이 사랑이나 희망, 이별과 그리움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노래한다면, 법 아닌 법 앞에서는 철저히 아픔과 고통, 그리고 짓밟힌 삶의 궤적을 쫓는다.


시인은 그 시대의 기억과 멈춰버린 시간을 시라는 형식을 빌려 대변한다. 시집의 목차를 채운 단어들조차 연좌제, 내란죄, 유죄, 수인, 구덩이, 죄책감처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무거운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기억나는 몇 편의 시를 적어보자면...


연좌제는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씌워진 가혹한 굴레를 다룬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공포와 차별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보여준다. 


내란죄는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평범한 농민들이 순식간에 죄인이 되어야 했던 부조리함을 고발한다. 죄의 유무가 아니라 권력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 그날의 판결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되묻는다.


구덩이는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현장의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차디찬 땅 밑으로 사라져간 수많은 생명과 그들을 지켜봐야 했던 이들의 죄책감을 시적인 언어로 형상화하여 독자의 가슴을 후벼판다.


이 시집은 단순히 슬픈 역사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법 아닌 법 앞에 무릎 꿇어야 했던 수많은 영혼을 위로하고, 다시는 그런 야만의 시간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기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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