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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달리기 - 승복 입은 러너의 11,450킬로미터 마음 수행기
지찬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승복을 입은 한 남자가 해맑게 달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딘가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평온해 보이는 그 장면 위로 '승복 입은 러너의 11,450킬로미터 마음 수행기'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평소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한 호흡에 괴로움이 나가고, 한 걸음에 생각이 사라진다"는 문구는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 강렬하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과연 수행자인 스님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달리기의 과정에서 어떤 마음의 풍경을 마주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달리는 수행자, 첫발을 내딛다'를 시작으로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다'까지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선 순간부터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고, 그 이후의 삶까지 저자가 달려온 모든 시간의 기록이 담백하게 담겨 있다. 글 중간중간 삽입된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들은 읽는 내내 즐거움과 편안함을 더해준다.
제목에 적힌 11,450킬로미터라는 숫자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이는 매일 10킬로미터 이상을 꾸준히 뛰고 전국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쌓아 올린 정직한 땀방울의 총합이었다.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대목은 수행에서의 몰입과 달리기에서의 몰입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저자의 시선이다. 흔히 러너들이 경험하는 극도의 행복감인 '러너스 하이'와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행의 과정, 그리고 마음속 깊은 한을 내려놓는 작업은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길은 결코 짧지 않다. 누군가는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온몸의 비명을 견디며 달리지만, 꾸준히 훈련한 누군가는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평온하게 나아간다. 저자는 이를 통해 꾸준한 훈련과 수행이 주는 삶의 가르침을 잔잔하게 전한다.
수행자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대목에서는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최근 달리기 열풍으로 마라톤 대회가 추첨제로 바뀌면서 저자 역시 낙첨의 고배를 마신다. 이때 마음이 요동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수행하는 사람조차 결과에 따라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내 깨닫는다. 굳이 대회라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길, 내가 숨 쉬는 이 순간 자체가 바로 수행의 현장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자의 도전은 일반적인 로드 러닝을 넘어 거친 산길을 뛰는 트레일 러닝으로까지 확장된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지만, 저자는 여기서 또 다른 차원의 깨달음을 얻는다. 완주라는 결과에만 매몰되지 않고, 억지로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기보다 때로는 멈추고 내려놓는 일이 더 깊은 수행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이루고 난 뒤의 허탈함 대신, 비어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가 다음 걸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사실 달리기는 결코 쉬운 운동이 아니다. 숙련된 러너라도 처음 몇 분은 숨이 가쁘고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다. 머릿속엔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그만둘까?" 하는 온갖 잡념이 피어오른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억지로 밀어내려 애쓰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저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디디며 몇 번의 호흡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고요한 틈 속에서 잡념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는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조금씩 단단하게 빚어낸다. 이 책은 달리기와 수행을 연결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정성스럽게 풀어낸 따뜻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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