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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은 블랙 -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나고
이광희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2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랑이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블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하고 어두운 이미지와 달리, 책의 표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흰 바탕으로 되어 있다. 그 속에 보일 듯 말 듯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보고 있으면, 단순히 표지 한 장일 뿐인데도 그 안에 내포된 의미가 꽤 깊게 다가온다.
저자인 이광희는 '오트 쿠튀르'를 대표하는 최정상 디자이너이자 아프리카 톤즈에서 '마마 리'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나누고 싶었을 이야기들을 독백처럼 써 내려간 편지 모음집이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지만, 그 속에는 저자가 삶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과 깨달음, 그리고 깊은 성찰이 담담하게 녹아 있다.
내용은 크게 여섯 개의 편지와 에필로그로 구분된다. 일기 같기도 하고 가벼운 에세이 같기도 해서 굳이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좋다. 마음이 끌리는 주제나 손길이 닿는 페이지를 무심코 펼쳐 읽어도 충분히 그 울림이 전해진다. 문장은 전체적으로 가볍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아 읽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책 속에서 저자는 큰아들에게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게 원래 인생의 순서"라고 말한다. 우리는 늘 늦었다고 자책하며 살지만, 사실 인생에서 늦음이란 없다. 다만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라는 조언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매일 집안 청소를 하고 가끔은 큰 건물을 청소하기도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청소하는 법은 잘 모른다. "마음도 대청소를 하면 시원해질까?"라는 저자의 질문에 나 만의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통찰도 인상적이다. 누군가 나에게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며 충고를 할 때, 정작 듣는 나는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충고가 아닌 지적질이다. 저자는 내가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말한다. 공감은 충분히 해주되, 그 뒤에 불필요한 뒷말을 붙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배려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또한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고통에 대해서도 색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오래 기다려주면, 고통은 그저 아픈 상처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근육이 된다는 말은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특히 사막처럼 버려졌던 황량한 들판에서 채소를 키워낸 이야기는 희망 그 자체였다. 농기구도 기술도 없어 모두가 포기했음에도 결국 싱싱한 오이와 커다란 수박이 열리는 결과를 맞이하며, 정주영 회장의 "임자,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을 떠올렸다는 저자의 모습에서 강한 긍정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우리나라 1호 간호사이자 저자의 어머니였던 분의 발자취가 담겨 있다. 불우한 이웃에게 베풀었던 사랑, 남편에 대한 조용한 내조,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준 평온한 모습들이 잔잔하게 흐른다. 어쩌면 블랙은 모든 종류의 사랑을 포용하는 가장 깊고, 두꺼운 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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