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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쓸 만한 후회 - 시간을 건너보내는 편지
김영태 지음 / 미래의창 / 2026년 3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초록빛 수풀이 우거진 정글 같은 배경 속에서 거위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한 마리가 별을 소중하게 손에 받쳐 들고 있다. 표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저 새는 먼 길을 돌아 고생 끝에 드디어 자신이 고대하던 목표에 도달한 것일까, 아니면 이제 막 새로운 빛을 발견한 것일까. 묘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표지는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 소개란을 보고는 더 놀랐다. 은행원, 기자, 창업가, 기업 임원과 대표에 이르기까지 직장을 옮긴 횟수만 열 번이 넘는다. 한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기도 힘든 세상인데, 저자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이토록 역동적인 선택을 이어왔을까 싶다. 낯선 세계를 만날 때마다 책을 읽고 문장을 써 내려갔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이 책에는 그가 통과해온 수많은 감정과 시간의 무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은 총 다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 저자의 인생 행보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출발선에 서는 순간부터 길을 잃고 방황하던 때, 매일의 치열한 전선과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천천히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까지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굳이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저자의 내밀한 고백이 담긴 에세이 형식이기에 목차를 훑어보다 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부터 펼쳐도 저자와 나란히 걷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대목은 그렇게 좋은 건 내게 올 리 없다는 저자의 태도다. 요즘 사람들은 참 조급하다. 타인보다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포모(FOMO) 증후군이나 갈수록 심해지는 부의 양극화 때문인지 성과와 돈 앞에서 늘 안달하며 산다. 그런 세상에서 좋은 것은 이미 다 받았다고 생각하며 수시로 스며드는 유혹을 쳐내는 저자의 철학은 참 심플하면서도 단단하다. 욕심을 덜어내니 오히려 삶의 본질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사라져가는 낭만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드라마 속 김사부처럼 비현실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LG 트윈스 임찬규 선수의 일화처럼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는 낭만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효율을 따지느라 모두가 서두르고 생략하는 시대지만, 조금만 속도를 조절하면 우리도 각자의 낭만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시간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재미있다. 한때는 무료함을 죄악처럼 여기며 무언가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무료함이야말로 충전의 시간이며 재생의 기회라고 말한다. 오래 미뤄둔 책을 펼치고 손에 쥔 펜으로 문장 한 줄을 적는 순간, 그 정적인 시간 속에서 새로운 재미가 싹튼다는 점이 깊이 공감된다.
책 제목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누구에게는 장점이 될 철학이 때로는 무책임으로 비칠 수도 있음을 저자는 솔직히 인정한다. 후회는 짧게 끝내고 반성은 서둘러 접으며 회복이라는 단어 뒤로 숨어버린다는 저자의 고백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후회 속에 파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 후회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력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규정보다 나는 어떻게 되어갈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문장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인생은 완성된 조각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모양을 바꿔가는 진행형이다. 설령 어떤 정점에 도달했더라도 내일이면 다시 새로운 시간이 열린다. 나의 생각과 선택에 따라 인생의 방향타는 언제든 다시 꺾일 수 있다. 삶의 무게에 눌려 자책이 깊어질 때, 이 책과 함께하며 제법 쓸 만한 후회들을 모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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