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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ㅣ ANGST
김인숙 지음 / 북다 / 2025년 12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은 첫 장을 넘기기 전부터 시각적 감각을 강하게 자극한다. 곧게 뻗은 하얀 자작나무, 잎을 모두 떨군 가지들, 그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이층 주택, 그리고 모든 풍경을 차갑게 감싸는 푸른빛의 표지는 이 소설이 품고 있는 불안과 침묵의 정서를 예고한다.
이 작품은 박민정 작가의 '호수와 암실'에 이은 ‘앙스트’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로, 현실과 밀착된 공포를 통해 독자의 일상 감각을 서서히 흔든다. 현실에 없는, 상상 속에서 다가오는 공포가 아니라 현대인이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공포,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공포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그려내었기에 새로운 시각,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앙스트가 뜻하는 ‘불안’은 이 소설에서 괴물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우리가 외면해 온 삶의 단면으로 구현된다. <자작나무 숲>이 다루는 공포는 상상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뉴스 기사 속에서, 골목 끝에서, 혹은 이웃의 집 안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특히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쓰레기를 모으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제 기사에서 접했던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며, 그들이 쓰레기를 쌓는 행위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결핍과 상처, 통제 불가능한 삶에 대한 마지막 방어임을 암시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쓰레기로 가득 찬 이층집 ‘산 1번지’가 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재개발이 이루어지면 막대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공간이지만, 집 안은 이미 쓰레기에 잠식되어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이 집과 얽힌 세 인물, 쓰레기 더미에 묻혀 생을 마감한 호더 할머니 최무자, 유일한 상속자 손녀 모유리, 그리고 노인의 죽음을 기다리다 먼저 사고로 죽은 강유이는 각기 다른 욕망과 결핍으로 얽혀 있다.
왜 집은 쓰레기로 채워졌을까. 쓰레기는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기억이자 감정이며, 버리지 못한 삶의 잔해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질문을 거듭 던지며 독자를 사건의 내부로 끌어당기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감춰진 비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자작나무 숲>은 결국 공포를 통해 묻는다. 우리가 외면해 온 것들은 정말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쌓이고 쌓여 언젠가 삶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불안이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속에 숲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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