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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전집 1 ㅣ 다시 읽는 우리 문학 2
이효석 지음 / 가람기획 / 2025년 11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옅은 녹색의 표지 위에
자리한 이효석의 자화상은 책을 펼치기 전부터 조용한 시선을 건넨다. 한 시대를 살았던 한 작가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그의 문장을 읽기 전
마음을 다듬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속에는 42편의 단편소설이 발표 연대순으로 실려 있어, 이효석 문학의
흐름과 변화를 차분히 따라가기에 더없이 좋은 구성이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 이효석. 그러나 이 전집은 그 한 편의 명성에 가려졌던 수많은 작품들을
다시 불러낸다. 해방 이전, 그는 해마다 10여 편이 넘는
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지만, 1940년 아내와 아들의 잇단 죽음은 그의 삶을 깊은 상실로 몰아넣었다. 잠시 방랑의 시간을
거친 뒤 다시 창작 의욕을 불태웠으나,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서른다섯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 곳곳에 흐르는 고독과
허무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책의 앞부분에는 풍경
사진, 육필 원고, 편지 등 이효석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 실려 있다. 단순한 소설집을 넘어 한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를 함께
조망하도록 돕는 장치다.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김우종 문화평론가이자 덕성여대 명예교수가 쓴 해설 「화려한 ‘순수’에의 미몽」이다. 이 글은
이효석 문학의 성격, 작품 기법, 정신 세계를 짚어 주는 훌륭한 안내서이자, 동시에 날카로운 비평이기도 하다.
김우종은 이효석 소설이
언어의 예술로서 빛날 수 있었던 이유, 자연 회귀 사상과 로렌스 문학의 영향 등을 짚어 주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동시에 “그의 문학에는
역사와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침도 서슴지 않는다.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세계는 있으나, 구체적인 사회 현실이 비어 있다는 지적이다.
순수문학이 지닌 내용적 공백이라는 약점과, 언어 예술로서의 탁월한 장점이 공존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효석 문학의 정체성임을 이 해설은 분명히
보여 준다.
전집에 실린 소설들은
길이도 다양하다. 짧은 작품은 3페이지 남짓, 긴 작품은 20페이지를 훌쩍 넘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와 표현은 미주로 정리되어 있어, 작품
감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도 반갑다.
개별 작품을 읽다
보면, 놀랍게도 지금의 우리와 겹쳐지는 장면들이 발견된다. <누구의 죄> 속 취업을 둘러싼 불안과 좌절은, 오늘날 구직난에 지친
청년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도시와 유령>에서는 도시 문명이 만들어낸 공허와 소외가 서늘하게 드러나고, <오후의
해조>와 <독백>에서는 인간 내면의 감각과 고독이 섬세한 문장으로 포착된다. <인간 산문>은 제목 그대로 삶을
바라보는 이효석 특유의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다.
<이효석 전집 1>은 단순히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를 다시 읽는 책이 아니다. 순수와 서정,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 한계까지 함께 마주하게 하는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이다. 화려하지만 비어 있고, 섬세하지만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이효석의 문학은 오히려 그렇기에 지금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는 문장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한 얼굴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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