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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으로 가난을 샀습니다 - 불안을 설렘으로 바꾼, 두 사람의 인생 반전 스토리
고우서 지음 / 슬로우리드 / 2026년 1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제목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코스피가 4200을 넘보고,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일상의 주문처럼 반복되는 지금, 누군가는 재산으로 부가 아니라 가난을 샀다고 말한다. 주식도 아니고, 금이나 은, 가상화폐도 아닌 가난. 도발적인 이 문장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태도에 가깝다.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 궁금증은 저자 소개를 읽는 순간 조금 풀린다. 2019년 결혼, 그리고 2022년. 전 재산을 들고 아내 수야와 함께 세계로 나섰다.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서 내려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낯선 세계로 몸을 던진 선택. 제목은 그 선택의 결과이자 선언처럼 느껴진다.
표지도 인상 깊다. 비에 젖은 두 사람의 신발이 땅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화려하지도, 특별해 보이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단단하다. 젖었지만 무너지지 않은 신발처럼, 이 여행 역시 불안정 속에서 더 단단해진 삶의 기록임을 암시한다.
이 여정의 출발점은 ‘젊어서 무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문장이었다. ‘안정’이라는 뭍에서 ‘불안정’이라는 강으로 뛰어드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집을 팔고, 짐을 줄이고, 러시아행 비행기 티켓을 사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만난 다섯 살 미샤와의 3박 4일은 이 책이 가진 온기를 잘 보여준다. 미샤는 ‘안녕(Hello)’과 ‘안녕(Bye)’이 동시에 존재하는 언어의 묘함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독자는 여행이란 결국 장소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3대의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오로라를 “얼어라!”를 외치며 마주한 장면은, 준비된 자만이 아니라 버텨낸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처럼 읽힌다.
튀르키예의 바닷가 마을 칼칸에서의 한 달 살이는 또 다른 결의 풍경을 보여준다. 별빛, 달빛, 비와 바람,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보내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흘러가는 시간을 감각하는 경험. 저자는 이 시간을 ‘시간 부자’가 되는 순간이라 말한다. 생산성과 효율이 미덕인 사회에서, 이 문장은 조용하지만 강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시간을 소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쫓기고 있는가.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여행기를 넘어 관계의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하는 선택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함께 살아가며 비로소 모르는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여행은 그 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루 종일, 매 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배우자를 새롭게 알아간다. 선택에 ‘후회’가 없는 사람, 불평 대신 웃음을 선택하고 후회 대신 지금을 사랑하는 사람. 아내 수야의 태도는 저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적어도 그런 방향으로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 변화는 거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인도 사기꾼을 공략하는 15가지 방법’이라는 챕터는 여행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단순하다. 조금만 조심하면 사기를 피할 수 있고, 일부의 경험으로 한 나라 전체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고보다 자극적인 제목에 더 쉽게 반응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기록하는 사람의 책임’을 조심스럽게 짚는다. 여행을 소비하는 방식, 타인을 대상화하는 시선, 그리고 말과 글이 만들어내는 오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다시 묻는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왜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을 하는가. 그 답으로 그는 여행을 수학이 아니라 미술에 비유한다.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도구와 색으로 자유롭게 채워가는 과정.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길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한한 자유. 이 비유는 여행뿐 아니라 삶 전체에도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편지다. 그의 말 속에 담긴 열정, 눈빛, 그리고 함께 걷는 길에 대한 신뢰. 이 편지는 책 전체를 감싸는 정서적 마침표처럼 느껴진다.
1년의 여행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업 유튜버로서 떠난 여행은 3년이 넘는 여정으로 이어졌고, 그 시간 속에서 아이도 태어난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다음 삶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였음을 이 후일담은 조용히 증명한다.
<전 재산으로 가난을 샀습니다>는 ‘옳은 선택’을 설득하는 책이 아니다. 이 저자의 선택이 경제적으로 맞는지, 사회적으로 현명한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대신 이 책은 한 사람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다시 미래를 향해 걸어갈 힘을 어떻게 회복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에 남는 문장은 단순하다. “삶이란, 결국 긴 여행이니까.” 이 문장이 오래 뇌리에 맴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가난을 사고, 시간을 사고, 용기를 사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샀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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