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는 사람들
김희영.류정희 지음 / 담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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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희영 작가의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책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속도를 늦추라고 말 건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것은 표지다. 구름이 드리운 백사장을 따라 나란히 걷는 가족의 뒷모습. 특별한 사건은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에서 평온과 안도가 스며 나온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힘은 아마 이 첫인상에서 이미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두께 또한 인상적이다. 작가의 말과 소개를 포함해도 고작 64페이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고도 시간이 남을 만큼 얇다. 그러나 얇다고 해서 가볍지는 않다. 모든 페이지를 채운 일러스트는 거칠지 않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선으로 마음을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글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그림과 함께 숨을 고르는 시간에 가깝다.

 

이야기는 16년간 교육자로 살아온 작가의 고백에서 출발한다.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정작 자신의 육아는 낯설고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는 말. 육아에 지친 아내,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는 남편, 또래보다 걸음이 다소 느린 아이. 이 가족이 마주한 현실은 특별하다기보다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들이 내린 선택은 ‘제주도 100일 살기’였다. 숨을 고르기 위한 잠시의 도피처럼 시작된 이 시간은 3개월이 더 연장되고, 결국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결정으로 이어진다. “세상 사람 다 힘들어, 다들 그래도 버티고 사는 거라고…”라는 가슴 아픈 말은, 어느 순간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자”라는 문장으로 바뀐다. 이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재조정한 결과처럼 보인다.

 

이 가족의 선택이 옳았는지, 정답이었는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각자가 처한 환경도, 감당할 수 있는 조건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행복은 정답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말에는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잠시 멈춰 서도 괜찮다고,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삶에서 탈락하는 것은 아니라고 조용히 말해준다. 바쁘게만 살아가다 문득 쉼이 필요해진 사람, 마음 한켠에 작지만 따뜻한 불씨가 필요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걷는 속도는 그대로일지라도 마음만큼은 분명 조금 느려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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