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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인두투스 : 입는 인간 - 고대 가죽옷부터 조선의 갓까지, 트렌드로 읽는 인문학 이야기
이다소미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2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다소미의 『호모 인두투스, 입는 인간』은 “인간은 왜 입는가”라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옷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욕망, 권력과 문화까지 들여다보는 인문서다. 우리는 매일 옷을 입지만, 그 행위가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감추는지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이 책은 바로 그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며, 옷을 하나의 ‘언어’로 읽어 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여러 기업과 현장에서 패션 역사와 ‘일상 속에서 입는 즐거움’을 주제로 강연을 해 온 연구자이자, 패션 매거진에 꾸준히 글을 써 온 필자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학술서처럼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게 소비되는 패션 트렌드 책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대중이 옷의 사회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사유할 수 있도록, 인류사 속 장면들을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인두투스(homo indutus)’, 즉 ‘입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로 ‘옷’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 속에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탄생한 유목민의 바지, 절대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헨리 8세의 과장된 복식, 세계대전 속에서 병사들을 보호한 트렌치코트, 그리고 앙드레 김을 통해 현대적으로 되살아난 한민족의 백의까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옷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옷을 입고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이 겹쳐 보인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명품의 미학과 드레이핑 기법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마네킹 위에 직접 천을 걸쳐 형태를 잡는 이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패션 디자인의 핵심적인 영감이 된다. 이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단절된 유행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감각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반면 헨리 8세의 코드피스 이야기는 패션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권력과 남성성을 과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화려하고 과장된 옷 뒤에서, 그와 함께한 여성들이 대부분 불행했다는 사실은 패션의 이면에 존재하는 폭력성을 떠올리게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스칼렛 오하라가 코르셋을 극단적으로 조인 이유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의 구현이었지만, 동시에 코르셋은 여성다움을 강요하며 여성을 옥죄던 억압의 상징이었다. 옷이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적 규범과 시선 속에서 작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한국 문화에서 ‘흰색’이 지닌 의미를 짚어내며, 이를 세계적인 미학으로 끌어올린 앙드레 김의 이야기는 이 책의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가장 기본적인 색이자, 모든 색과 조화를 이루는 배려의 색이라는 해석은 한국적 미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호모 인두투스, 입는 인간』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책이다. 옷을 통해 역사를 읽고, 문화를 이해하며,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유익하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인문서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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