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시작한 불은 책으로 꺼야 한다 - 박지훈 독서 에세이
박지훈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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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박지훈의 <책에서 시작한 불은 책으로 꺼야 한다>는 서평과 에세이의 경계에 자리한 독특한 형식의 글 모음이다. 하나의 주제를 떠올린 뒤 그에 어울리는 책을 찾아 읽고, 그 위에 자신의 감상과 사유를 차분히 덧입히는 방식은 단순한 독후의 기록을 넘어, 저자의 삶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흐름을 만든다. 특히 미국에 머물며 휴직 기간 동안 쓴 글이라는 점은 전체 문장에 특유의 여백과 성찰을 더한다.

 

잠의 본질을 파헤친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다룬 글에서는 충분한 수면이야말로 삶의 균형을 잡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주장, 그리고 렘수면이 인간을 생태계의 최정점으로 이끌었다는 대목이 깊이 있게 다뤄진다. 과학적 사실이 개인의 삶과 만나는 지점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자신의 생활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한승태의 <퀴닝>을 읽고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다. 체스판에서 한 번에 한 칸씩 전진만 할 수 있는 '졸'이 끝에 다다르면 '여왕'이 되듯 노동으로 인간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 부자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가. 저자는 답 대신 현실의 어두움을 직시하며 노동자의 미래에 대한 암울함을 조심스레 드러낸다.

 

결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깊은 울림이 있다.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를 바탕으로, 결혼이라는 제도의 의미를 되묻고, 아내가 먼저 떠난 뒤 혼자 남겨질 모습을 상상하며 느낀 슬픔을 고백하는 문장은 담담하면서도 애틋하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함께 쌓아 올린 시간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이 책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라, 문장 속에 담긴 사유의 결을 곱씹어야 비로소 온전히 다가오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천천히, 그리고 생각을 나누듯 읽어가면 저자가 바라본 세계와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의미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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