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봉아, 우울해? - 침몰하는 애인을 태우고 우울의 바다를 건너는 하드캐리 일상툰
향용이 지음 / 애플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
이야기’들과는 결이 다르다. 이 책은 병을 극복하거나 희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우울증이라는 단어 속에 묻혀 있는 ‘함께
살아가는 시간들’을 그려낸다. 작가는 13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자친구 ‘상봉’과의 일상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 기록은
무겁지 않다. 짧은 호흡의 만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지한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재치 있고 담백하게 흘러간다. 그렇기에 독자는 이들의
삶을 관찰하는 대신, 조용히 곁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의 차별점은
명확하다. 대부분의 우울증 관련 도서가 치료나 회복을 다루는 반면, <상봉아, 우울해>는 ‘공존’을 이야기한다. 작가와 상봉은
우울이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 나간다.
“우울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우울증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작가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우울이란 반드시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때로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책의 구성은 만화
형식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일상의 장면들이 짧은 컷 안에 배치되면서도 그 안에는 감정의 결이 섬세하게 담긴다. 예를 들어, 상봉이가 매일
아침 일어나 하는 일이 게임뿐이라는 장면은 단순한 습관 묘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있음’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방식으로 읽힌다. 작가는
그 모습을 꾸짖지 않는다. 그저 지켜보며, 가끔은 함께 웃는다. 그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작가가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대목들이다. “내게 헤어지지 않는 이유를 가장 많이 물었는데, 알아차린 것은 그동안 이별을 고민한
적이 없다는 거였다.”라는 구절은, 사랑이 단순한 연민이나 책임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 한 문장은 작가의
13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설명한다. 사랑의 형태가 반드시 밝고 희망차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버텨주는 사랑이, 함께 견뎌주는 시간이 그
어떤 치유보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
또한 책 곳곳에는
‘가혹한 말’이 등장한다. 타인의 무심한 시선, 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잣대가 상봉과 향용 모두를 상처 입힌다. 하지만 작가는 그 말들에
반격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림으로 그려내며, 그 속에서 스스로를 단단히 세운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에게 묵직한 위로로 다가온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메시지가 만화의 여백 속에 스며 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보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작가의 의도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독자가 무엇을 배우거나 실천하기보다,
그저 함께 웃고, 함께 한숨 쉬며,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해 주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올바른 방식이다.
#상봉아우울해 #향용이 #애플북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에세이만화 #우울증 #공존의이야기 #일상그림책 #사랑의형태 #위로의책 #감정공감 #삶의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