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어슬렁어슬렁 누비고 다닌 미술 여행기
류동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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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럽에서는 '그랜드투어'라는 여행이 부잣집 자제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만약 '그랜드투어'를 떠나게 되면, 부잣집 자녀와 가정교사가 여행 내내 함께하고,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문화와 예절을 배웠는데 그 기간이 수년에 이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그랜드투어'의 최종 목적지는 이탈리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랜드투어'의 최종 목적지로 그들이 이탈리아를 가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인류 역사 최고의 문화유산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사는 우리로서는 유럽은 어딜 가나 유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당시 유럽인은 이탈리아야말로 유럽의 유럽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태어난 부잣집 자녀는 이탈리아로 '그랜드투어'를 떠나는 게 그들에게 최고의 자랑이자 최고의 배움이었을 것이다.

미술 저널리스트 류동현 작가의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라는 책은 그의 이탈리아 그랜드투어 답사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6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와 같은 유명 도시를 거점으로 주변 도시까지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의아한 건,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로마와 관련된 분량이 책에서 가장 적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미 한국 출판계에 로마를 소개하는 책이 많이 출간되었기에 저자가 일부러 로마와 관련된 내용은 최소한으로 소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미술 저널리스트로서, 이탈리아의 각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에 있는 미술작품이나 혹은 그 도시와 연결된 미술작품을 이 책에서 자세하게 소개한다. 놀라운 점은 그가 단순히 미술에만 해박한 게 아니라 영화와 음악과 관련돼서도 상당히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들어보는 이탈리아 도시 이름인데, 저자는 이 도시에서 어떤 영화가 촬영되었고, 도시의 어떤 건물이 영화에서 나왔다는 식으로 도시를 소개한다. 아마도 저자는 미술광일 뿐 아니라, 영화광이 아닌가 싶다.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방랑이 아닌 다음에야 여행의 장소를 정할 때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다양한 경험 등이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책, 영화, 음악 등이 여행의 행선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영화를 본 후 여행지에 대한 동경이 생기곤 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보고 사막의 별을 보겠다고 이틀간 밴을 타고 가는 고생을 하고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요르단의 페트라를 찾은 것은 모두 영화가 나에게 준 여행의 '동인'이었다." (218쪽)

저자의 말처럼 일상에서 여행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음악을 듣는 것일 수 있다. 내가 접한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이 내가 나중에 떠날 여행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당분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갈 계획은 없다. 원래 작년에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었는데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되어서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나는 이스라엘로 가장 먼저 가고 싶다. 혹시라도 내가 나중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 될 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이 책과 예전에 읽은 '내 손안의 로마'라는 책을 다시 살펴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나도 이탈리아로 그랜드투어를 떠나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가져보고 싶다.

#류동현 #어쩌다이탈리아미술과걷다 #교유서가 #교유당 #Italy #피렌체 #그랜드투어 #미술 #로마 #미술관 #rome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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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태의 세계 - 의지와 책임의 고고학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성관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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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가을에 SBS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청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드라마 제목에 브람스라는 음악가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청춘 음악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에 자극적인 내용이 별로 없어서인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다. 음악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갈등이 다분히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연찮게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가 쓴 '중동태의 세계'를 읽게 되었다. '중동태의 세계'가 쉬운 철학 책은 아니었지만, '중동태의 세계'를 통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등장인물을 능동태와 수동태 그리고 중동태라는 새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박준영, 이정경, 채송아를 '종동태의 세계'로 바라보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피아니스트 박준영: 드라마에서 그는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2위를 차지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정경, 채송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재능과 명성을 가진 인물이다. 일견 그는 능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 피아노는 그저 생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시지만 항상 가난에 쪼들렸던 그는 일종의 소년 가장으로서 가정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지고 피아노를 쳤다. 쇼팽콩쿠르에서 2등을 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피아노 공연을 한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무수한 피아노 공연에 지쳐 국내에 귀국해서 잠시 안식년을 가져보지만 이곳도 그에게 쉼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위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도전했지만 지도 교수와의 불화로 콩쿠르 도전이 쉽지 않아졌다. 그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이정경: 드라마에서 그녀는 경후문화재단 이사장의 손녀로 등장한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부지처럼 보이는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지고 싶어 한다. 박준영과는 학창 시절부터 동문으로서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서 살아갔다. 경후문화재단이 박준영 본인뿐 아니라, 그 가정의 금전문제를 종종 해결해 주었기에 그녀와 박준영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얽혀있기도 하다. 그녀는 유무형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에 그것을 넘어서는 삶을 살지 못한다. 재단 이사장인 할머니는 자신의 뒤를 이어 재단 일을 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바이올린을 계속 연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녀의 커리어는 이미 꺾인지 오래다. 그녀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채송아: 그녀는 드라마에서 박준영과 이정경과 비교했을 때 가장 늦게 음악의 길로 접어든 인물이다. 그녀는 서령대(아마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뒤늦게 4수 끝에 서령대 음대에 들어갔다. 재능에서는 박준영과 이정경과 비교했을 때 많이 뒤처지지만, 음악 자체를 사랑하는 열정만큼은 이들을 압도한다. 문제는 그녀가 서령대 4학년으로서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진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정작 졸업 이후에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설자리가 전혀 없다. 지도 교수와의 친분으로 대학원 진학을 꿈꾸었지만, 갑작스럽게 교수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대학원 입학도 어려워졌다. 그녀는 '바생바사'의 '바순이'지만, 그녀는 아직 아마추어에서 프로의 단계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실상 드라마에 등장하는 박준영, 이정경, 채송아 그 누구도 완전히 능동적이거나, 완전히 수동적으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때때로 능동적이며, 때때로 수동적이다. 이는 그들이 사는 세계가 바로 중동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완전히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항상 주변 환경에 끌려다니는 것도 아니다. 중동태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능동에 더 가까운 삶을 살기도, 수동에 더 가까운 삶을 살기도 한다. 중동태는 영혼의 중력과 같다.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은 곧 완전히 강제된 상태로 추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동태의 세계를 살아간다 함은 아마도 그러한 것이리라. 우리는 중동태를 살아가면서 때로는 자유에 가까워지고 대로는 강제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 자신을 사유할 때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갱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유 방식을 갱신하는 것은 용이하지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중동태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조금씩 그 세계를 알아갈 수가 있다. 그리하여 조금씩이긴 하지만 자유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다. 이것이 중동태의 세계를 앎으로써 얻어지는 미미한 희망이다." (350쪽)

나처럼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 '중동태의 세계'를 끝까지 읽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했지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혀 모르고 중동태라는 문법을 처음 배우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 책을 읽다가 초반에 포기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초반의 여러 난해함과 복잡함을 뚫고 끝까지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중동태라는 개념을 통해 나의 문제와 남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적용해 아내와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중동태라는 개념에서 나의 한계와 아내의 한계를 직시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갈등은 때때로 명확한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한계 그리고 타인의 한계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한계를 아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아는 것의 첫걸음이다.

#고쿠분고이치로 #스피노자 #중동태의세계 #능동태 #수동태 #중동태 #서양철학 #브람스를좋아하세요 #라틴어 #그리스어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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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태 2021-07-2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진 비평 잘 읽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350쪽의 인용의 첫 대목이 꽤나 중요한 대목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음 / 싱긋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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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에 가족이 함께 서울의 어느 호텔에서 호캉스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방에 에어컨 작동 문제 때문에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그것 때문에 호텔 측에 컴플레인을 걸었는데, 호텔 측에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다음에 호텔에서 1박을 할 경우 무료로 룸 업그레이드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우리 가족이 다시 이 호텔을 방문하게 되는 일종의 '미끼'가 되었다. 지난가을에 우리는 이 호텔에서 다시 일박을 했고, 호텔 측의 룸 업그레이드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잘 쉴 수 있었다. 당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객실을 이용할 수 있어 호텔 측에 감사했다.

아무래도 고급 호텔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자주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더군다나 국내 최고의 호텔로 손꼽히는 웨스틴조선호텔과 콘래드 서울호텔은 여태껏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전설의 수문장'의 저자인 권문현 선생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6년간 근무하고 정년퇴직하여 현재 콘래드 서울호텔 지배인으로 8년째 근무 중이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많이 사라진 이 시대에 권 선생의 성실한 직장 생활은 그 자체가 미담이 아닐 수 없다. '전설의 수문장'에는 권 선생이 처음 벨보이로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와 현재 호텔 지배인으로서의 이야기가 모두 수록되어 있다.

호텔업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 업종이다. 호텔에는 고객들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요구 사항과 컴플레인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때때로 고객들의 요구 사항이 정당할 때도 있지만, 밑도 끝도 없는 진상 고객도 호텔에 있기 마련이다. 권 선생 역시 지난 시간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고객들을 호텔에서 상대했을 것이다. 그는 과연 호텔에서 진상 고객을 어떻게 상대했을까? 혹시 그만의 탁월한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44년 동안 정말 끝까지 소통이 되지 않았던 고객은 한두 명으로 기억한다. 그 외 수천여 명의 고객은 대부분 대화만으로도 엉킨 마음을 풀어주었다. 명함을 받고,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설명해드린 것이 전부인데 고객들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그래서 나는 '진상 고객'이라는 단어보다 '애정 고객'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애정이 있어야만 지적도 한다. 애정 고객은 또 찾아올 고객이다." (57쪽)

저자는 호텔에서 '진상 고객'이라 불리는 고객을 '애정 고객'이라고 부른다. 이는 역발상이 아닐 수 없다. 호텔리어를 끔찍하게 괴롭히는 고객이 역으로 호텔에 너무나 애정이 있어서 진상을 피운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저자의 말이 맞다. 호텔이 마음에 안 들면, 굳이 진상을 피우지 않는다. 호텔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앞으로 또 방문할 의사가 있기 때문에 그 고객은 호텔에 컴플레인을 심하게 걸 수 있다. 진상 고객을 애정 고객이라 부르며 고객을 따뜻하게 대하는데, 어느 고객이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을까? 이처럼 '전설의 수문장'은 호텔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여타 서비스 업종에 속한 사람도 읽으면 좋은 내용이 참으로 많다. 언젠가 저자가 일하는 호텔을 방문해 그와 직접 인사를 나누고 책에 사인을 받고 싶다.

#권문현 #전설의수문장 #교유서가 #교유당 #싱긋 #웨스틴조선호텔 #콘래드서울호텔 #호텔리어 #지배인 #hotel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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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도넛 - 존경과 혐오의 공권력 미국경찰을 말하다
최성규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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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경찰을 준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한 학생도 장차 경찰이 되길 꿈꾸며 관련 학과로 진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경찰을 준비하는 사람 혹은 경찰이 되도록 권하는 사람은 왜 경찰이 되는 걸 좋다고 생각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경찰이 국가 공무원에 속하기 때문이 아닐까? 경찰의 업무 자체는 매우 위험하지만, 경찰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된다. 이는 군인도 마찬가지이다. 군인의 업무 자체는 위험하지만, 모든 군인은 공무원이기에 직업 자체는 안정적이다. 만약 경찰이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지만, 지금처럼 국가 공무원에 속하지 않는다면, 혹은 정년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면 과연 많은 청년들이 경찰이 되길 선호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경찰은 경찰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국가 공무원이라는 큰 틀 속에 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와 전혀 다르다. 미국은 각 주별로 경찰을 뽑는 자치경찰제를 시행한다. 미국의 경찰 시스템과 한국의 경찰 시스템이 차이가 난다면 미국 경찰과 한국 경찰의 실제 생활도 많은 차이를 보일까? 현 서울성북경찰서장인 최성규 서장은 '총과 도넛'이란 책을 통해 미국 경찰의 시스템과 미국 경찰의 실제 생활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내 생각에 미국 경찰에 관하여 이토록 쉽고도 상세하게 쓴 책은 앞으로도 출판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 경찰은 한국 경찰에 비해 경찰이 되는 것은 쉬운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은 지역마다 경찰을 뽑는 인원이 제각각이고, 사람들이 경찰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지역에서는 쉽게 경찰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경찰이 되는 것보다 경찰로 살아가는 게 미국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돈과 총 때문이다. 미국 경찰은 지역마다 자치적으로 경찰을 모집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지역의 재정 자립도가 경찰의 생활수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미국 경찰의 급여는 한국처럼 급여가 전국적으로 일정하지 않고,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잘 사는 지역의 경찰은 많은 급여를 받고, 못 사는 지역의 경찰은 적은 급여를 받는다. 단순히 급여뿐만 아니라, 경찰이 사용하는 차량이나 장비 역시 돈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만약 미국 경찰로서 자신이 속한 지역이 경찰 급여를 적게 준다면 경찰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복을 입고 알바를 하면 된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경찰복을 입고 알바 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한다. 경찰의 알바를 허용해야 그들이 급여를 적게 받아도 그 지역의 경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경찰로 사는 게 어려운 이유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총기 때문이다. 미국 경찰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 범죄자에게 총을 맞을 수 있다. 그건 그들에게 숙명과 같은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세기에 미군이 전쟁에서 죽은 숫자보다, 자국에서 미국민이 총기로 죽은 숫자가 더 크다고 한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미국이 매일매일 일상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경찰 중에 순찰을 하면서 자신이 총에 맞아 죽을까봐 걱정하는 경찰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러고 보면 미국에서 경찰로 산다는 건 참으로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미국의 경찰제도와 한국의 경찰제도를 이 책을 통해 비교해보니, 미국과 한국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다. 미국에 대해 어릴 적부터 하도 많이 들어서,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은 각 주 하나하나가 나라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50개 주가 제각각 다른 경찰을 운영하고, 다른 법령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는 한국처럼 동질성과 통일성을 강조하는 나라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자치경찰제나 검경 수사권 분리를 섣불리 한국에 도입하는 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미국에서 좋은 것이 한국에서 꼭 좋은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좋은 것이 미국에서 꼭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어쩌다보니 대학동 고시촌에 있는 24시간 스터디 카페에서 이 서평을 쓴다. 나를 제외하고 이 스터디 카페에 있는 모두가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것 같은데, 부디 그들의 꿈대로 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경찰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성규 #총과도넛 #경찰 #police #cop #미국경찰 #한국경찰 #경찰공무원 #공무원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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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합치 - 예술과 실존의 근원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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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상적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내게 클래식 음악은 몰입을 가속화시키는 일종의 촉매와 같다. 그러다가 종종 재즈 음악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재즈 음악을 들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일상에서 클래식 음악은 집중을 위해, 재즈 음악은 이완을 위해 꼭 필요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프랑수와 줄리앙의 '탈합치(De-coincidence)'를 읽으며, 들리지 않는 재즈 음악을 듣는 느낌이었다. 철학자가 쓴 철학책이기에 철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철학자가 어떤 의미에서 '탈합치'란 말을 사용하는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생소한 '탈합치'는 과연 어떤 뜻일까? 저자는 '탈합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탈합치의 개념은 안착된 합치를 해체할 때 새로운 가능성들이 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사유하는 사명을 지닙니다. 이는 단절, 창조, 나아가 혁명의 거대한 신화에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한 사상가는 이미 사유된 것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스스로 이미 사유한 것으로부터 탈합치할 때 비로소 사상가일 수 있습니다. 미래를 다시 여는 것은 사회에 부과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그 확정성에 매몰되는 적합성과 조정의 형태를 해체할 때 가능합니다." (9쪽)

나는 저자가 말한 합치와 탈합치의 관계를 클래식 음악과 재즈 음악의 관계로 비유하고 싶다. 합치는 자유보다는 질서, 즉흥보다는 계획, 위험보다는 안정을 지향한다. 클래식 음악은 기존에 주어진 틀을 반복할 뿐,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재즈 음악은 다르다. 재즈 음악은 매번 새롭게 연주되는 즉흥성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의 재즈가 다르고, 오늘의 재즈가 다르고, 내일의 재즈가 다르다. 클래식 음악이 합치의 정점이라면, 재즈 음악은 탈합치의 정점이다. 탈합치는 질서보다는 자유를, 계획보다는 즉흥을, 안정보다는 위험을 선호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합치는 죽음을 향하고, 탈합치는 생명을 향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탈합치와 합치의 역동성이 잘 드러나는 성경이 바로 요한복음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에 나타난 탈합치를 발견할 수 있다.

"신이 탈합치로서, 즉 인간적 죽음으로 죽기까지 하는 그의 아들이 도입한 탈합치로서 사유된다는 점에서 요한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은 이 최초의 탈합치를 통해 요청된 성부와의 합치를 역방향으로 가동하는 데 있다. 합치하려면 탈합치해야 한다는 점이 요한복음의 논리적 핵심이며 이로부터 그 역설이 이해된다. 삶을 실질적으로 전개할 수 있으려면 삶에서 탈합치해야 하며, 바로 이것이 삶의 고유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59쪽)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예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탈합치의 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합치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실상 탈합치와 합치는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다만 탈합치가 시작되지 않고서는 합치가 따라올 수 없다. 탈합치는 비움이고, 합치는 채움이다. 탈합치는 날숨이고, 합치는 들숨이다. 탈합치는 썰물이고, 합치는 밀물이다. 우리는 탈합치만 하면서 인생을 살 순 없다. 역으로 합치만 하면서도 인생을 살 순 없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탈합치 할 때가 있고 합치할 때가 있다. 지혜자는 탈합치 할 때와 합치할 때를 분별한다.

'탈합치'는 예술과 실존의 근원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저자는 탈합치한 예술가로부터 탈합치한 예술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존재의 탈합치를 먼저 경험한 사람이 예술의 탈합치에 도달하는 법이다. 탈합치의 길이 비록 두렵고 불안하지만, 탈합치를 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삶이 더 안정된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머무는 이곳은 사실 안정된 자리라기보다는 그저 익숙해진 자리이다. 지루한 익숙함에서 벗어나, 안락함에 중독된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가야 할 탈합치의 순례길을 걸어가고싶다. 아마도 나는 남은 생을 탈합치의 순례자로 살아갈 사명인가 보다.

#프랑수아중리앙 #예술과실존의근원 #교유서가 #탈합치 #요한복음 #복음서 #Decoincidence #철학 #philosophy #순례자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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