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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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습니다★★

1026년, 송나라의 개봉으로 진사 시험을 보러 온 조행덕은 서하의 한 여인으로부터 깊은 감명과 알 수 없는 문자로 된 종이를 받고, 돌연 서하로 향한다. 상단에 합류했다가, 서하의 병사가 되었다가, 서하 문자를 익히고 경전을 번역하기도 하는 등 행덕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된다.
서하의 병사가 되면서 알게 된 서하의 한족 대장 주왕례가 서하의 왕 이원호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행덕이 머물러 있던 과주(둔황)도 위험해지는데, 이 난리통 속에서 상인 위지광이 알려준 명사산 천불동으로 경전을 옮겨 숨긴다.

황량한 사막과 무자비한 자연 변화 속에서의 서술이 무덤덤하고 건조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서술은 등장인물들의 특질과도 어울린다. 알몸으로 묶여서 손가락 끝이 잘리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서하의 여인과 단순무식하지만 용맹한 장수 주왕례, 그리고 평생 책만 보며 살아오다가 거친 환경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살아가는 조행덕 등,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독자인 나까지도 죽음을 비롯한 여러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들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거고, 죽으면 죽는 거고. 이에 대해 왈가왈부 구차하게 토를 달 이유가 없어진달까.
특히 주인공 조행덕이 닥쳐오는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다. 조행덕은 지금의 나에게 앞으로 인생의 변화를 이렇게 맞이하고 선택할 수도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수많은 경전의 일부를 천불동에 숨긴 후, 결말에서는 카메라가 뒤로 싹 밀려나는 것(줌 백)처럼, 이후에 숨겨져있던 경전들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 역시 이 소설의 문체와 어울린다.

해설에서 주왕례, 조행덕(모른다무새), 위지광(목걸이무새) 등의 인물들은 허구임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천불동에서 발견된 수많은 불교 경전의 유래에 대해 가상의 인물들을 활용해 픽션을 쓴 것이다.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는 <검푸른 해협>에서는 고려 왕실이 몽골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굽히고 몸부림치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둔황>에서는 반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앞으로 내가 삶의 문제들에 직면하여 고뇌할 때, 내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조행덕과 서하인들의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알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걱정 많은 나조차도 어렵게만 보이던 그 상황을 좀 더 관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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