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리커버 에디션 한정판)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스포 있습니다★★

아프리카로의 여행을 꿈꿔오며 자유를 갈망하는 영어 학원 강사 버드(27)에게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다.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간 버드는 아기가 뇌헤르니아라는 의사의 소견을 듣는다.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뇌에 빠진 버드는 여자 친구 히미코를 만나기도 하고 끊었던 음주를 하기도 한다. 히미코와의 끝없는 성교를 통해 두려움을 외면하며 히미코에게 의지한다.
그러던 중 버드는 대학병원에 보내진 아기에 대한 전화를 받게 된다. 과연 버드는 식물적인 존재 같은 아기를 어떻게 할까.

주인공 버드는 불량소년 출신답게 무책임하다. 출산 전부터 아내와 아이를 본인의 꿈인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장애물로 여긴다.
(14p) 그리고 일단 아내가 출산하고 내가 가족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 사실 결혼 후, 나는 그 감옥 안에 있는 것이지만 아직 감옥의 뚜껑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가 그 뚜껑을 꽝 하고 내리덮어 버릴 것이다-나는 이제 아프리카를 혼자서 여행한다는 건 완전히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런 마음 상태의 버드에게 아이가 뇌헤르니아라는 의사의 소견은 충격적인 사실임과 동시에, 아기를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된다. (아이의 쇠약사를 바라는 버드의 의도에 따라, 대학병원에서는 희석한 분유와 분유 대신 설탕물을 아기에게 먹인다.)
물론 버드는 이러한 본인의 생각과 행동에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힘들어하지만, 아기의 생명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끝내주기를 바란다. 처음에는 이러한 버드의 마음가짐을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아기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등장하면서부터는 innocent한 아기를 어떻게든 법적으로 문제없이 떠넘기려고 하는 버드와 히미코의 언행에서 역겨움을 느꼈다.
또한 막 출산한 아내는 내팽개쳐두고(아내가 어떻든 간에), ‘여자 친구‘라는 히미코와 놀아나는 모습은 쓰레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자 친구라길래 그저 여자인 친구인 줄 알았는데..;;)

조력자 역할을 하는 히미코는 남편의 자살 이후,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며 살아오다가 힘들어하는 버드의 의지처가 되어준다. 성교를 통해 버드의 공포를 줄여주며, 아기 사망과 아내와의 이혼 후에 버드와 아프리카 여행의 꿈을 함께 하기로 한다.

이야기의 말미에 버드가 변화하긴 한다. 아기의 죽음을 바라던 버드가 아기와 직접 대면한 이후, 부지불식간에 아기를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자동차, 지붕을 덮을 수 있어? 안 그러면 아기가 젖어 버릴 텐데˝ 하고 버드는 우울한 백치처럼 말했다.
히미코가 아는 어떤 병원의 의사에게 아기를 맡기고 나서, 술집에서 위스키를 마시다가 버드는 문득 아기를 되찾아 책임지기로 선언한다. 그리고 버드의 행동은 성공하여 이야기의 반전을 만든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반전이 나에게는 당혹스러웠다. 시종일관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유지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밝아진다. 사실 아이는 뇌헤르니아가 아니라 단순한 육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고 성장한 버드는 장인 장모와 아내와 해피엔딩!
˝저는 녀석들을 알고 있는데 웬일인지 그들은 저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군요˝ 하고 버드가 말했다.
˝자넨 요 몇 주 동안에 완전히 변해 버린 듯한 느낌이니, 그 때문이겠지.˝
˝그럴까요?˝
˝자넨 변해 버렸어˝ 하고 교수가 약간은 애석하다는 느낌도 담긴 따스한 육친의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에겐 이제 버드라는 어린애 같은 별명은 어울리지 않아.˝

물론 버드가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이야기의 의도는 알겠지만, ˝짜잔!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너무 갑작스러웠다. 요람에 싸인 아기를 직접 안고 나서의 버드의 변화하는 내면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면 개연성 측면에서 이 정도로 갑작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버드의 내면을 세세하게 비유하고 묘사하는 작가의 글솜씨는 꽤나 괜찮아서 글 읽는 재미를 느끼며 버드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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