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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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는 육체적, 정치적 차이가 있다. 그것은 위계이다. 모든 고통은 같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기 상처가 제일 큰법이다. 나도 내 상처가 제일 크다. 나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내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 나는 ‘사회 정의‘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다는 생각에서 그들의 요구에 응한다. → 오해받거나 배신을 당한다. 시간, 돈, 평판 등에서 ‘큰 손해를 본다. → 배신감, 상처, 자책감에 시달린다. → 분노로 시간을 낭비한다. → 복수할 방법에 골몰한다. → 해결 방안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붕괴가 지속된다. →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에 복귀한다. → 몸에 부상을 입은 채 잊는다, 잊게 된다, 잊힌다.
내게 용서는 저절로 잊히는 것이지, 용서를 위해 고민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내겐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고 참을 수 없는 부정의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관련된 사건을 잊는 것이다. 사건을 무시한다(ignore). 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그 일을 잊는다. 물론 가해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접촉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가 일반 법칙이 될 수는 없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 결벽증, 비사회성에 상응하는 능력은 없지만, 일중독과 자기 몰입성향이 ‘용서‘ 따위를 잊게 해주는 것 같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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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P32

메스꺼움이 가시자 어쩐지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감정이나 생각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곁에 있는 유나에 대한 사랑이 쿵쿵거리는 내 심장 소리와 함께 피부로 느껴졌다. 평생을 함께한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이 힘을 잃었고 알 수 없는 용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내가 늘 꿈꾸던 내 모습, 우물쭈물하지 않고 하고 싶은말을 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 겨우 소주 몇 모금에 이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었나. - P21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내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눈을 보고 말했을 거야. 지호야, 너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 친구야. 너는 나를 판단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 있으면 온전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나도 너와 함께 헬싱키로 가고 싶지만 우리 식구들은 곧 쫓겨나듯 한국으로 가야 할 거고 나는 홀로 이 나라에 남아서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자신이 없어. 이곳은 2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도 내게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너를 잃는 것이 아파. 나의 무능력과 약함 때문에 이곳에 홀로 설 수 없는 내가 밉고 부끄러워.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마치 한국이 이곳보다 내게 훨씬 더 좋은 곳이고, 너 정도는 대체할 친구들이 많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렸어. 그리고 다시 겨울이 시작되던 때에 우리 가족의 한국행이 정해졌지.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그때는 그게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변화를 거부하며 사는 것이 겁이 많고 불안이 많은 나에게는 안전한 선택지였으니까.
지호야, 나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었어. 큰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덜 상처받고, 덜 위험한 길만을 골라서 갔지. 그리고 그건 언제나 내 마음속 욕구와는 다른 길이었던 것 같아. 계속 그런 식으로만 살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 - P82

하지만 자신의 내면만큼은 그분들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다는 걸 해주는 믿음을 얻으며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도 내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해주는 조용한 성전에 앉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채반 같은 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인정하게 된 것도 아무리 바가지로 물을 떠서 담으려고 해도 채반 같은 마음에는 조금의 물도 머무를 수 없었다. 신을 받아들였다는 건………… 무려 신의 사랑을 체험했다는건 채반에 더는 물을 붓지 않고 깊은 물속에 채반을 던지는 일 같았다. 그건 입을 열어서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소중한 경험이었다.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고 없는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해주에게 믿음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었다. - P107

현주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미리는 벽에 부딪힌 기분을 느꼈다. 왜 자신의 마음을 현주가 정확히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까. 왜 그토록 현주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서도 미리는 한 번씩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고 현주는 그런 미리의 이야기를 어린애의 투정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미리는 어느 순간 현주로부터 자신의 한 부분을 이해받는 것을 포기했다. 최악의 인정 욕구는 자기 아픔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일지도 몰랐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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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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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꺼움이 가시자 어쩐지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감정이나 생각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곁에 있는 유나에 대한 사랑이 쿵쿵거리는 내 심장 소리와 함께 피부로 느껴졌다. 평생을 함께한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이 힘을 잃었고 알 수 없는 용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내가 늘 꿈꾸던 내 모습, 우물쭈물하지 않고 하고 싶은말을 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 겨우 소주 몇 모금에 이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었나.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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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게 일입니다 - 죽은 자와 남겨진 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마음
김민석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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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든 아니든, 나이가 적든 많든, 성 정체성과 지향, 장애, 자본의 유무와 상관없이 애도의 권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처럼 의심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당신이 누구이든, 고인과 어떤 관계이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애도의 웅덩이에 뛰어들어도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힘든 시간 속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진 못할 테지만, 적어도 언제든 뛰어들었다 빠져나올 수 있는 웅덩이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웅덩이는 온전히 나의 것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애도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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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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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분증 뒤에는 스티커 한 장이 붙어 있다. ‘응급 상황 시 아래 번호로 연락해 주세여. 집 안에 반려동물이 혼자 있습니다.’ 짝꿍과 엄마 번호를 차례로 적어두었다. 집에 사는 고양이는 말을 할 수 없고, 전화할 수 없으며, 굳게 잠긴 문을 열 수도 없다. 나는 내가 갑자기 죽게 되더라도 나와 함께 살던 고양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보살핌을 받길 원한다. 새해에는 신분증에 스티커를 한 줄 더 추가했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습니다.‘ 혹시나 내가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위급 상황에 처했을 경우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해 두고 싶었다. 짝꿍과 나는 이 주제로 여러 번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생각을 지지하며 공감한다.
나는 때때로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동의한다. 죽음은 공평하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필연인 죽음은 늙은 결과가 아니라 살아온 것의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든 날은 좀 더 씩씩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외할머니는 어땠을까. 외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고민해 본 적 있을까. 우리는 왜 이 주제를 한번도 나누지 못했을까.
외할머니에게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러니 한라봉이 남아 있고 보행 보조기를 ‘모셔 놓은‘ 당신 집으로, 당신이 돌아오면 좋겠다. 나는 당신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속에서 완화 치료전문가인 수전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제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당신이 생명 유지를 위해 얼마만큼 견뎌낼 용의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상태면 사는 게 괴롭지 않을지 알아야만 해요." 그래서 당신 대답에 따라, 당신 뜻대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된다면 좋겠다. "결국은 이기게 되어 있는 죽음"을 주제로 우리가 오래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 P61

대런 맥가비는 《가난 사파리>에서 독자에게 한 가지 태도를 제안한다. "나는 우리가 먼저 정직해지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혁명은 없을 것이다. 우리 평생에는 없을 것이다. 이 체제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갈 것이고 우리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한때 바랐듯이 정치권력이나 체제가 바뀌기를 ‘순진하게‘ 기대했다. 이제는 그저 일정 부분 망가진 울퉁불퉁한 길을 일단 걸어가 본다.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기르는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려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빈곤은 이런 방식으로 산업화되었다) 나에게도 있다는 걸, ‘가난한‘ 우리도 이 세계의 일부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이자 시민이라는걸 믿으면서. - P75

<페미니즘을 팝니다>의 저자 앤디 자이슬러는 성평등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평등이란 단순히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커다란 실패를 허용하는 것이다." 시장 후보를 뽑는 투표장에 들어간 제인은 자신의 이름에 투표한다. 그 순간 제인은 20대의 자신, 아비바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그 문장을 읽은 이후 나는 또 한번 달라졌다. 실패나 실수를 이전보다 덜 두려워하게 됐다. ‘내가 해도 될까‘ ‘잘할 수 있을까‘ ‘못 할 것 같아‘라는 생각을 물리치는 데 저 문장만 한 부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래희망도 생겼다. 모건 부인처럼 ‘같이 망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실패하고 실수해야 잘하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된다고. 두렵다면 함께 망해 주겠다고, 그러니 우리 더는 조심하지 말자고 손 내밀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나이 먹는다면 뒤에 오는 여성들에게 지금보다는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다. - P134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 김소연, <너를 이루는 말들> 부분

서글픔과 피곤함이 ‘기어이‘ 다정과 평화를 닮아 가는 일은 타인과 세상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통과하는 동안 이뤄지는 것이다. 모르겠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연결된다. 우리를 그렇게 연결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꽤 자주 활자라서 나는 계속 언론사에서 일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저널리즘이라니 우리끼리만 아는 ‘나쁜 농담‘ 같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속절없이 그런 것에 마음을 홀리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힘을 믿고 싶다. - P165

내가 편집자로 처음 기획하고 만든 책인 <죽는 게 참어렵습니다> (시사인북, 2021)는 제주에서 보낸 그런 시간 덕분에 묶을 수 있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를 통해 나는 ‘존엄한 죽음‘ ‘좋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감추고 있는 현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 죽음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사건임을, 우리 모두가 연루된 일임을 드러내 질문하고 싶었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병들고 아프며 죽어 가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관여한다.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질병이, 질병을 이야기하다 보면 돌봄이, 죽음과 섞여 들었다. 우리는 왜 아프면 ‘깨끗하게 죽어 버리는‘ 미래를 상상할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애써 모른 척하면서.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들은 사회복지가 잘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존엄사가 존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복지가 존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나의 죽음을 운에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죽음을 둘러싼 각자의 내밀한 경험이 더 많은 보편의 이야기로 나눠질 때 삶도 조금은 덜 잔인해진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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