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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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는 육체적, 정치적 차이가 있다. 그것은 위계이다. 모든 고통은 같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기 상처가 제일 큰법이다. 나도 내 상처가 제일 크다. 나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내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 나는 ‘사회 정의‘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다는 생각에서 그들의 요구에 응한다. → 오해받거나 배신을 당한다. 시간, 돈, 평판 등에서 ‘큰 손해를 본다. → 배신감, 상처, 자책감에 시달린다. → 분노로 시간을 낭비한다. → 복수할 방법에 골몰한다. → 해결 방안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붕괴가 지속된다. →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에 복귀한다. → 몸에 부상을 입은 채 잊는다, 잊게 된다, 잊힌다.
내게 용서는 저절로 잊히는 것이지, 용서를 위해 고민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내겐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고 참을 수 없는 부정의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관련된 사건을 잊는 것이다. 사건을 무시한다(ignore). 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그 일을 잊는다. 물론 가해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접촉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가 일반 법칙이 될 수는 없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 결벽증, 비사회성에 상응하는 능력은 없지만, 일중독과 자기 몰입성향이 ‘용서‘ 따위를 잊게 해주는 것 같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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