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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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좋은 돌봄의 기본 요소를 발견해 이를 돌봄 현장의 필수 요소로 만드는 것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늘 부족한 시간에도, 사회적으로 너무나 낮은 인정에도 불구하고 가슴 뭉클한 돌봄이 존재하는 건 오로지 돌봄을 하면서 "생겨버린 책임감과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때문이다. 좋은 돌봄 사례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돌봄자를 지키고 돌보는 노동 환경과 제도적·사회문화적 지원이 마련된다면 믿고 기댈 만한 돌봄이 가능하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이것은 도움이 필요한 의존 상태에 있는 사람과 그 필요에 응답하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실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신과 내‘가 기댈 수 있는 그 돌봄을 공적으로, 조건을 갖춰 시민사회 안에 기본값으로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그때 우리는 요양보호사의 지식과 역량을 마음껏 기대할 수 있다. 이 지식은 몸으로 체화한 실천지식이다. 이 실천지식이 돌봄의 생태계를 비옥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돌봄노동자의 전문성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방향으로 사회문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 논의와 정책과 생명윤리, 인간의 취약함에 대한 이해, 정치 등을 현장에서의 실천을 중심으로 통합해 연결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통합적 연결은 현장의 돌봄 경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돌봄의 보람과 기쁨, 좌절과 고립, 심지어 살해를 포함한 현장에서의 경험을 공론의 주제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시민사회가 등장해 다양한 돌봄 경험들을 통용 가능한 지식으로 만들고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최적화된 합의를 만들고 이 합의를 정책으로 만들라고 압박한다. 권리의 이름으로 압박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시민사회의 압박은 개별 정책을 마련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정치의 지평, 방향성, 철학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순차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섞이고 순환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현장에 입각해서 질문 받고 비판받고 수정되는 방식이 될 것이다. - P161

런던에서 시작된 돌봄 단체인 ‘더 케어 컬렉티브’는 ‘돌봄선언’에서 "난잡한 돌봄"을 말한 바 있다. 돌봄의 위계를 해체하고 급진적 평등주의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안한 표현이다. 난잡한 돌봄 윤리는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돌봄이 필요와 지속가능성에 따라 공평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돌봄에는 어떠한 차별도 위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구별 짓기나 경계 짓기가 없다고 해서 그 돌봄이 가볍거나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건 아니다.
가볍고 진정성 없이 거리를 두고 행하는 돌봄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돌봄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하다. 우리는 난잡한 돌봄이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가장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돌봄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증식해가는 윤리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난잡함이란 더 많은 돌봄을 실천하고 또 현재 기준에서는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돌봄 요구를 너무 오랫동안 ‘시장‘과 ‘가족‘에 의존해 해결해왔다. 우리는 그 의미의 범주가 훨씬 넓은 돌봄의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 - P169

이 부정의를 부정하는 의미로서 ‘아무나‘는 혈연관계나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돌봄 책임자의 범위를 바꾸고 확장하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돌봄자의 자리는 친밀한 관계, 믿고 의지하는 관계, 구체적인 삶의 장소와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전통적 통념이 이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 법제도는 이 통념을 뒷받침하거나 강화한다. 이에 맞서 혼인과 혈연관계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실질적인 돌봄 관계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생활과 돌봄을 공유하는 관계를 인정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돌봄을 혈연관계나 성역할 고정관념에 붙들어 매는 통념은 현실 속에서 수행되는 여러 다른 돌봄 형태를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이 구현하는 돌봄의 확장과 새로운 상상력을 방해한다. 성소수자, 중증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는 신뢰와 우정의 커뮤니티 안에서 통념을 벗어난 돌봄을 이미 하고 또 받고 있다. 이들의 돌봄은 사회적으로 기대되지도 않고 지원되는 바도 없기에 ‘실험적이고 확장적‘이다. 이들은 허들 경기하듯 ‘보호자 자격 없음‘이 가로막는 방해물을 계속 넘어야 한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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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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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취약한 우리 모두가 폐를 끼치며 살아간다. 폐를 끼치기에 삶이 가능하다는 엄중한 사실에 겸허한 존재들은 폐 안 끼친다고 자부하고 위장하는 세력의 위선을 드러낸다. 적극적인 폐 끼침의 사유와 실천, 곧 돌봄을 통해 기존 사회의 시간과 공간에 변화를 요구한다.
폐 끼친다는 말은 달리하면 의존한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상호의존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의존과 자립의 관계를 기존과는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게 된다. 의존에 관한 주류 담론이나 관행, 사고방식에 비판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타자의 의존이나 폐 끼침은 자신들의 의존이나 폐 끼침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세력의 허위의식을 흔든다. 폐 끼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존재들은 폐 끼치기의 호혜성을 위해 시민사회 차원의 토론과 각성을 추동한다. 의존과 돌봄을 무시하려는 사회적 과정과 흐름을 중단시키고 돌봄의 연대를 추동한다. 의존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철폐하려 한다. ‘폐 끼치는 사람들의 연대‘야말로 서로의 차이를 넘어 의존에 대한 공통 감각을 시민적 덕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다. - P117

돌봄은 아동, 장애인, 노인, 환자 등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돌봄의존자를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다. 동시에 돌봄은 대상 영역으로 환원될 수 없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돌봄자-보호자와 돌봄의존자의 관계, ‘좋은 돌봄’의 불가능성, 돌봄의 탈/여성화 · 탈/가족화 또는 공공화·시장화, 돌봄 자원·부담·책임의 평등하고 정의로운 분배 등은 어떤 돌봄 현장에서든 중요한 핵심 의제다.
그래서 각 부분을 서로 연관성이 없는 개별 복지정책의 대상이나 돌봄 서비스 등의 자원 분배 대상으로 다루면 돌봄을 중심축으로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모든 사람이 돌보고 돌봄 받을 권리를 인권으로 정초하려는 지향과 만날 수 없다. - P122

뒤돌아보는 보호자는 기관과의 소통과 협력을 이어간다. 당사자가 (대부분 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상태라는 걸 알기에 이전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지금의 ‘좋은 머무름’을 위해 당사자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할 수밖에 없는 돌봄의 양태를 수용하며, 필요한 단계의 조치를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게 된다. 협력은 내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요양시설을 ‘돌아오지 못할 곳‘이 아닌 계속 가꾸고 보듬어야 할 삶의 장소로 만들 수 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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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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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근본적으로 관계 안에서 관계를 갱신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일이기에 돌봄 위기라는 건 사회가 재생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가장 작은 범위로는 아동, 장애인, 노년 등 당사자 개인의 위기, 돌보느라 자기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대개는 여성이다)의 위기이고, 넓게 보면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서 만든 관계라는 의미의 사회가 재생산되지 못하는 위기다. - P11

그간 법적·정치적 윤리에 치우쳤던 인권은 돌봄 윤리와 만나면서 인간의 보편적인 취약성과 그에 따른 상호의존성에 주목하게 됐다. 그 배경 조건은 사람 ‘사이‘, 다른 말로 ‘관계‘다. 개인은 자기의 고유한 삶을 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첩되고 교차되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가능하다. 인권에 대한 관계에 기반한 접근은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닌 인간의 관계 때문에 사람을 사람으로서 대한다는 것이다. 모욕하고 멸시하고 착취하는 관계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관계, 더 나은 의존관계를 만드는 것이 적극적인 인권 실현이다. 인간 누구나 관계속에 깃들여 살며, 서로의 취약성을 돌아보고 응답할 보편적 책임이 발생한다. - P29

존엄을 말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존엄을 어떻게 말하느냐와 존엄이 어떻게 가능하냐가 중요하다. 누가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향해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라는 응답이 필요할 것이다. 기억하고 알고 있다는 것은 그의 살아온 내력과 함께 그의 현재 모습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 P34

이 책에서는 역량을 돌봄의 관점에서 적용하고 이해하려 한다. 여기서 능력이라 하지 않고 역량이라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능력이 단순히 훈련과 반복된 실천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역량은 돌봄이 왜 필요한가, 돌봄은 무엇인가, 어떻게 돌봐야 돌봄 받는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존엄성이란 걸 잘 지키면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가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매뉴얼대로 잘하는 게 능력이라면, 역량은 생각하고 질문하면서 돌봄의 내용과 형식을 고민해 바꾸어가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 P40

이제까지의 취약성 논의를 돌봄의 맥락에서 정리해보자. 취약성을 보편적 속성으로 갖는 인간의 자율적인 독립의 삶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움직임이 관여한다. 우선 타인의 취약성에 눈뜸으로써 윤리적 존재가 된 개인이 서로 의존할 만한, 믿을 만한 돌봄의 관계를 형성한다. 서로에게 잘 매달려 경쾌하게 진지운동을 한다. 개인은 이러한 상호 달림, 상호의존을 통해 사회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이 된다. 시민은 자기 삶의 안전과 의미가 사회를 함께 만드는 다른 존재의 연대와 협력 덕분임을 알고, 그 신뢰 속에서 자신도 그를 위해 안전망의 한 코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실뜨기를 닮은 이 창의적 연결 속에서 생성되는 자율성은 관계적 자율성이다. 취약해서 늘 안전이 위협받는 상태에 있는 개별 인간이 기본적인 도덕적 권리인 인권의 감각으로 서로 의존하고 기대며 돕지 않는다면, 사회 공동체는 흔들리고 무너질 것이다.
다른 움직임은 권력의 구조적 차이와 사회제도의 취약성 때문에 발생하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취약성에 적극적으로 책임 있게 응답하는 국가와 관련된다. 아동, 장애인, 환자, 노인, 비혼모, 노숙인, 기초생활이 위협받는 빈곤한 사람 등은 더 취약하고 더 의존적이다. 그만큼 더 집중적이고 포괄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기회와 접근의 의미 있는 제도적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 정의의 세 범주인 인정, 경제적 분배, 왜곡 없는 재현(repre-sentation)에서 평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더 적극적인 반응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평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인 반응이 취약자들의 회복 가능성을 높인다. - P65

돌보는 사회는 돌봄 자원이 풍부하고, 이 자원이 평등하고 정의롭게 분배되고 순환하는 사회다. 돌봄은 개인 단위에서, 동시에 사회와 국가 단위에서 생산되고 축적되고 유산으로 상속된다. 돌봄 자원은 누구나 돌보고 아무나 돌보는 돌봄 민주주의와 연동되어 있다. 즉 돌봄 역량이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일과 시민적 덕성을 증명하는 지표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돌봄 민주주의 사회다. 여기서는 평등과 자유가 적대적 대당이 아니라 서로에게 정당성과 구체적 의미를 부여하는 원리요 힘이다. - P73

돌봄에 필요한 시간과 정성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같이 도모한다면 호혜적이 된다. 따라서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정과 호혜성 구축은 사회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행위가 된다. 돌봄 현장은 병상 같은 물리적 장소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집 안이든 어디든 모든 돌봄 현장의 의미는 정치성을 갖고 있다. 돌봄이 자본주의적 효율성이나 그에 따른 시민의 자격 심의와 연동될 때 돌봄 관계를 둘러싼 사회적인 인식과 실행의 체계는 ‘어떤 삶은 돌볼 가치가 있고 또 어떤 삶은 돌볼가치가 없다‘, ‘누구에게 돌봄 자원을 쓸 가치가 많다 혹은 적다‘는 식으로 흐른다. 이런 식의 논의와 판단은 매우 정치적이다. 존재 가치를 저울질하는 대신 시간과 정성을 같이 기울이되, 획일적이 아니라 각 사람의 고유성을 서로 잘 돌보는 사회가 호혜적인 민주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라야 ‘좋은 돌봄‘이 가능하다. - P81

각각의 특수한 상황에서 타자의 구체적인 필요 욕구에 반응하고 돌보는 것이 윤리적 태도라면 보편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여성주의 윤리 철학은 두 가지 보편성의 차원을 제시한다. 첫째, (앞 장에서 논의한) 취약성의 인류학적 보편성과 그에 따른 상호의존성, 둘째, 자신을 타자의 필요 욕구에 반응하는 ‘선한 자아‘로 고양하길 원하는 갈망의 보편성이다. 넬 나딩즈는 이러한 갈망의 토대가 되는 것은 돌봄 받은 기억이며, 모든 사람은 이 기억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보편적이라고 보았다.

"자연스러운 돌봄의 관계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선‘이라고 인식하는 인간 조건으로 확인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희구하고 추구하는 바로 그 조건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에게 도덕적이 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그 특별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돌봄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는 계속 돌범의 관계 속에 있고 돌보는 사람으로서 우리 자신의 이상을 고양하기 위해서 도덕적이기를 원한다." - P86

돌봄 상황을 가능한 피하면 좋을 폐 끼치는 상황으로만 보는 것은 의존과 그에 따른 돌봄을 바라보는 사회의 왜곡된 시선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체계는 타인의 돌봄에 의존해 삶을 유지하는 것은 민폐라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발산한다. 웬만하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게 타당해 보이겠지만, 문제는 ‘웬만하면‘이 어느 정도를 가리키는지 사회적으로 합의된 바가 없다는 데 있다. 돌봄 욕구를 중심에 두고 소통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남의 도움은 안 받는 게 최선이라는 명제가 성립한다. - P104

장애여성공감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출간한 책 『어쩌면 이상한 몸』에서 돌봄을 잘 받을 훈련, 몸을 내맡기는 연습에 관해 이야기한다. "존엄하기 위한 노동은 모두에게 필요하며, 끊임없이 의사소통하며 서로를 직면하고 몸을 접촉하면서 익혀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자신을 대하는 건 어떤 투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 P107

돌봄은 언제나 얼마간의 자기희생을 요구하고, 삶을 재편하도록 강요하며, 한계를 시험한다. - P109

‘나‘를 돌봄 받는 사람으로 상상할 때 돌보는 일의 형태와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돌봄에 관해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지고 담론 차원에서 상상력의 교환도 더 촉구될 것이다. ‘좋은돌봄’에는 적절한 거리 두기 그리고 돌봄 받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입, 공감이 요청된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돌봄은 거리두기와 다가가기를 반복하는 두 진자운동의 조율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다른 관계성을 형성한다. 정서적 접속이나 교류가 어려운 돌봄 환경에서도 외부의 보상이나 인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나 여타 에너지가 투여된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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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
카먼 마리아 마차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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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속에 사는 건 내 권리야. 내 권리라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내 권리이고. 곁에 있으면 불쾌해지는 것도 내 권리야. 넌 네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 적이 있기는 해? 이건 미쳤어, 저건 미쳤어, 너한텐 세상 모든 게 미쳤지. 누구 잣대로? 뭐, 미치는 것도 내 권리야, 네가 정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난 부끄럽지 않아. 살면서 수많은 걸 느꼈지만, 그 중에 부끄러움은 없어.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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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비대면 외면 - 뉴노멀 시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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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몇 다리 건너 연결된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생활 방식이 나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주고 나 또한 그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가까운 친구들은 10촌과 유전적으로 동등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우리가 자주 접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와 비슷한 성향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기 때문이다. ‘우편번호가 그의 유전자 암호보다 건강을 더 잘 예측하는 요인‘이라는 말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 나는 건강한가? 의료 검진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들과 함께 빚어가는 경험 세계가 중요한 지표가 되는 셈이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거기에 흐르는 감정은 무엇인가? 소통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과 충만함은 의료적 처치 못지않게 건강을 증진시킨다. 면역력의 원천이 되는 생명 에너지도 유쾌한 사회적 활동에 접속할 때 넉넉해진다. - P220

섬세함과 예민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의 오랜 친구이자 스승인 조영훈 교육센터 <빛·숨> 센터장이 명료하게 구분해주었다.
전자가 상대방의 존재에 마음이 닿아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자신의 에고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섬세함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내면에 귀 기울이면서 기쁨과 슬픔, 평온함과 고통을 기꺼이 나누는 감수성이다. 그에 비해 예민함은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생존 본능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면서결국 고립을 자처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관계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 타인을 충분히 배려하되,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상대방의 속 깊은 이야기나 나를 위한 진심어린 조언에는 귀를 쫑긋 세워야 하지만, 별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야 한다. - P229

캐나다의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성이 발흥하는 도시의 모델을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 tolerance으로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관용은 어떤 장소가 기술과 인재를동원하고 유인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민자, 예술가, 동성애자 그리고 인종적 통합에 개방적인 곳일수록 기술과 인재를 성공적으로 활용한다. 문화적으로 개방적인 장소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되게 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인정하도록 함으로써,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나로는 창조적 에너지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 P238

이때 중요한 것은 애매함을 견디는 마음이다. 우리 두뇌는 무엇이든 확실하게 규정하고 싶어 하지만, 인식의 대상은 늘 분명하지 않다. 사람이든 현실이든 언제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자라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되고, 그 과업을 수행하면서 철이 들어간다. 인간의 성장이란, 자기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둘씩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 그런데 인간이 철들기란 쉽지 않다. 어른이 되어도 유아적 성향이 남아 있어서, 상대방이 내 의견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거절로 해석하기 일쑤다. 그러한 에고의 습성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끌려가지 않도록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 칼 로저스는 ‘반대의 관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는데, 불편한 반응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성숙한 사람이다.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상태라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 P243

그러한 태도는 조직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특히 리더들에게 더 요구된다. 주어진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문제 해결의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는데, 그 작업을 개개인의 능력만으로 해내기는 어렵다. 조직 구성원들이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서로 보완하면서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열쇠는 유연한 사고력과 그것을 북돋는 소통의 방식이고, 리더는 그런 조직문화를 일궈갈 책임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직원들과 나누는 대화 방식을 살펴보아야 한다.
대화는 대부분 질문과 대답으로 이뤄지며, 어떻게 질문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된다. 특히 상급자가 부하직원과 소통할 때,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리더는 모든 것을 이끌어야 한다는 잘못된 통념 때문에 질문보다는 지시나 단언을 하게 마련이고, 질문할 때도 자신의 의견을 은근히 강요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기 때문이다. 미국 MIT공과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에드거 H. 샤인과 피터 샤인 교수는 그런 식으로 소통할수록 조직은 상투적인 대답과 어색한 침묵 속에서 경직될 뿐만 아니라 생산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겸손한 질문humble inquiry‘을 제안한다.
여기서 ‘겸손함’이란, 형식적으로 자기를 낮추는 자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질문할 때 자기가 정말로 그 문제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도 그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능력만으로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면서 함께 배우려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겸손한 질문의 핵심은 무엇인가. "호기심, 진실을 향한 열린 마음, 또한 서로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상대방을 논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 맥락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적절히 대응하는 법"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조직 구성원들은 그런 화법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통찰에 이를 수 있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대화의 핵심을 이렇게 짚은 바 있다. "참된 대화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가 자신의 확실성을 기꺼이 보류하려고 하는 것이다." 확신은 진실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확신을 내려놓고, 명료함을 구해야 한다. 자기를 겸허하게 비우고 경청하기. 정직하고 열린 질문으로 다가가기. 모름을 투명하게 받아들이고 순수한 앎을 향하여 함께나아가는 마음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그여백에서 상호 이해의 길이 열린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도 더욱 유연하고 우아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겸허한 질문과 경청은 창의성의 원동력이 된다. - P245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할 때 끌어다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나 자원은 무한에 가깝게 열려 있다. 따라서 연결 그 자체가 좋은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길을 잃게 한다. 어떤 주제 내지 목표를 중심으로 자원들이 선별되고 배열되어야 한다. 그러한 초점이 명료하다면, 전혀 상관없는 자료나 경험들이 융합되면서 의외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고 기존의 여러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지성이 필요하다. 연결지능은 그렇듯 자기 나름의 지향을 가지고, 다양한 자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능력 위에서 꽃피운다.
그런 능력은 맥락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안목과 과제의 본질을 파악해내는 직관을 내포한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머릿속에 지식을 잔뜩 집어넣는 데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에 부딪쳐 씨름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터득해가야 한다. 리얼리티에 대한 통찰과 문제의식이 분명할 때, 방대한 정보와 지식, 경험과 자원들이 취사선택되고 편집되어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얄팍한 지능이 아니라 깊은 지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것은 다양한 장에서 존재를 연습하는 가운데 형성된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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