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좋은 돌봄의 기본 요소를 발견해 이를 돌봄 현장의 필수 요소로 만드는 것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늘 부족한 시간에도, 사회적으로 너무나 낮은 인정에도 불구하고 가슴 뭉클한 돌봄이 존재하는 건 오로지 돌봄을 하면서 "생겨버린 책임감과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때문이다. 좋은 돌봄 사례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돌봄자를 지키고 돌보는 노동 환경과 제도적·사회문화적 지원이 마련된다면 믿고 기댈 만한 돌봄이 가능하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이것은 도움이 필요한 의존 상태에 있는 사람과 그 필요에 응답하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실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신과 내‘가 기댈 수 있는 그 돌봄을 공적으로, 조건을 갖춰 시민사회 안에 기본값으로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그때 우리는 요양보호사의 지식과 역량을 마음껏 기대할 수 있다. 이 지식은 몸으로 체화한 실천지식이다. 이 실천지식이 돌봄의 생태계를 비옥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돌봄노동자의 전문성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방향으로 사회문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 논의와 정책과 생명윤리, 인간의 취약함에 대한 이해, 정치 등을 현장에서의 실천을 중심으로 통합해 연결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통합적 연결은 현장의 돌봄 경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돌봄의 보람과 기쁨, 좌절과 고립, 심지어 살해를 포함한 현장에서의 경험을 공론의 주제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시민사회가 등장해 다양한 돌봄 경험들을 통용 가능한 지식으로 만들고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최적화된 합의를 만들고 이 합의를 정책으로 만들라고 압박한다. 권리의 이름으로 압박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시민사회의 압박은 개별 정책을 마련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정치의 지평, 방향성, 철학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순차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섞이고 순환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현장에 입각해서 질문 받고 비판받고 수정되는 방식이 될 것이다. - P161
런던에서 시작된 돌봄 단체인 ‘더 케어 컬렉티브’는 ‘돌봄선언’에서 "난잡한 돌봄"을 말한 바 있다. 돌봄의 위계를 해체하고 급진적 평등주의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안한 표현이다. 난잡한 돌봄 윤리는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돌봄이 필요와 지속가능성에 따라 공평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돌봄에는 어떠한 차별도 위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구별 짓기나 경계 짓기가 없다고 해서 그 돌봄이 가볍거나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건 아니다. 가볍고 진정성 없이 거리를 두고 행하는 돌봄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돌봄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하다. 우리는 난잡한 돌봄이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가장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돌봄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증식해가는 윤리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난잡함이란 더 많은 돌봄을 실천하고 또 현재 기준에서는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돌봄 요구를 너무 오랫동안 ‘시장‘과 ‘가족‘에 의존해 해결해왔다. 우리는 그 의미의 범주가 훨씬 넓은 돌봄의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 - P169
이 부정의를 부정하는 의미로서 ‘아무나‘는 혈연관계나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돌봄 책임자의 범위를 바꾸고 확장하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돌봄자의 자리는 친밀한 관계, 믿고 의지하는 관계, 구체적인 삶의 장소와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전통적 통념이 이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 법제도는 이 통념을 뒷받침하거나 강화한다. 이에 맞서 혼인과 혈연관계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실질적인 돌봄 관계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생활과 돌봄을 공유하는 관계를 인정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돌봄을 혈연관계나 성역할 고정관념에 붙들어 매는 통념은 현실 속에서 수행되는 여러 다른 돌봄 형태를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이 구현하는 돌봄의 확장과 새로운 상상력을 방해한다. 성소수자, 중증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는 신뢰와 우정의 커뮤니티 안에서 통념을 벗어난 돌봄을 이미 하고 또 받고 있다. 이들의 돌봄은 사회적으로 기대되지도 않고 지원되는 바도 없기에 ‘실험적이고 확장적‘이다. 이들은 허들 경기하듯 ‘보호자 자격 없음‘이 가로막는 방해물을 계속 넘어야 한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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