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니들의 갱년기 - 70년대생 여자 셋의 지극히 사적인 수다
김도희.유혜미.임지인 지음 / 일일호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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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면서 심신에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경우 ‘기승전 갱년기‘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거죠. 이런 경향성이 갱년기를 과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갱년기라는 개념으로 모든 증상을 중화시켜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지 않고 무엇이든 ‘갱년기라서 그래~‘하면서 자가 진단을 하게 되는 거죠.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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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하고 의도와 행동을 모두 필요로 한다는 벨 훅스의 말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 순간들이다. - P228

안타깝게도 동료로서 나의 에너지는 발달장애여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수십년 집에서, 시설에서, 관계로부터 단절되고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발달장애여성의 응축된 에너지는 강하고 발산적이다. 인지와 학습의 더딤, 감각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고집을 피우는 모습, 지나친 솔직함,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 부정적으로 발달장애를 묘사하는 언어다. 어쩌면 이런 다른 감각과 표현 방식, 에너지야말로 규범적인 사회에 저항하는 새로운 몸들일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사회의 규범에 맞추어 살 수 없기 때문에 부정되었던 몸들이 오히려 교양에 대한 다른 감각을 요청하게 한다.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정중함이 아니라 ‘그게 무슨 말인데요‘라고 묻는 솔직함은 지식 권력을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 P229

유한하고 우연성의 반복이란 것 외에 삶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여성이란, 장애란, 인간이란, 운동이란, 말이란, 몸이란, 성이란, 교육이란, 일상이란, 차이란, 관계란, 존중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답 안 나오는 질문을 끝까지 던지고 매해 답을 실천하는 사람들 끝에서 달리는, 그래서 방향을 바꾸면 그곳이 시작인 이 공간. 미련하게 말하고, 쓰고, 움직이며 실패를 통하여 살아가는 이 몸들과 함께 있는 한 무엇도 당연하지 않고, 그래서 멈출 수 없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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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몸을 차별하지 않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친절과 사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과 함께 일할 때 필요한 기술을 몸으로 습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 P222

책 <페미니스트 모먼트>에서 장애여성운동의 동료인 나영정은 이 과정을 ‘개별성, 훈련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 과정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어서 오래 알아온 장애여성 동료라도 서로의 몸의 변화에 따라 ‘훈련하는 과정‘이 갱신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것을 존엄이 담긴 기술과 노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노하우도 원칙도 제각각인 기술들은 지원받는 위치에서 존엄성을 잃지 않으며, 장애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고집스러움이기도 하다. - P223

서로의 말을 알아차리는 순간, 경험은 더 이상 개별로서 존재하지 않는 우리라는 감각을 일깨운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며 일하자는 선언이 일상에 자리 잡으려면 수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장애여성공감이란 공간이 갈등에 유독 강한 것도 아니지만, 이 공간은 특이하게도 갈등을 직면하는것에 익숙해지게 서로를 단련시킨다. 회피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하는 방식은 힘들고 독특한 문화다. 이 힘든 과정을 장애여성공감은 ‘저주받은 세라피‘로 부르거나 ‘직면의 과정‘이라 불러왔다.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기 입장을 드러내도록 독려하는 것은 존중의 방식이지만, 많은 경우 힘든 도전이다. 솔직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공동 작업에서 필요한 과정이지만, 어떤 이는 상처받았고 어떤 이는 더 많이 말해야 하는 책임에 괴로웠다. 서로를 잘 안다는 건, 그만큼 관계의 책임을 동반하기도 했다. - P225

운동의 방향을 노정하기 위한 공통의 감각과 입장은 소수자 운동을 하는 이들에겐 이르기 어려운 과정이다. 사회적인 발언과 참여가 허락되지 않은 몸들이 모여, 사회의 규범과 부정의를 거부하는 입장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중층적인 부정을 거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장애여성공감은 그 몸들이 모여 수많은 직면 끝에 어렵게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고 공통의 약속을 만들어나갔다. 긴 논의들은 대부분 몸에 피로감을 남겼다. 고단한 토론이라는 노동 끝에 다다르는 짧지만, 충분한 희열이 나를 아직 여기 남아 있게 한다. - P226

소수자라는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진 얼굴 있는 관계들의 활동이 정치적 입장을 만들어내왔다. 갈등을 예고하는 공동 작업을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고, 실패의 연속선을 이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 공간에 남아 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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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상한 몸 - 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6
장애여성공감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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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활동보조를 받는 이용자 중에 관계의 중심을 잃고 모든 권한을 활동지원사에게 넘기는 이들도 종종 본다.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일상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됨에 따라 장애인 이용자는 활동지원사에게 점점 종속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나 또한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활동지원사 교육보다 이용자 교육을 조금 더 촘촘히 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활동보조 제도를 비롯해서 IL 운동의 중요한 기반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지만 한 번도 주체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장애인에게 선택권과 결정권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 장애인에게는 그저 선언에 불과할 뿐이다. - P143

처음부터 다시 ‘주체란 무엇인가‘부터 이야기하기로 했다. ‘춤추는허리‘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들부터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들이 쉽지 않았다. 팀장으로서 나는 배우들 간에 역동이 있었을 때도, 실무자와 역동이 있었을 때도 잘 대응하지 못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 당시에는 배우들의 삶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겉으로는 배우들의 경험을 안다고, 이해한다고 했지만 내 삶의 무게가 먼저였다. 아니 내가 먼저였다. 나 역시 리더라는 역할의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무엇을 고민하고 제안해야 하는지 훈련이 필요했다.
점점 ‘춤추는허리‘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정리가 필요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여러 가지 힘듦은 고스란히 몸에 나타났고 내 인생 처음으로 하혈이란 것도 해보았다. 그 과정을 거치며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들을 보내고 나자 점점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배우들의 인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P159

변화의 역동은 그런 일상에서부터 ‘일곱빛깔무지개‘와 ‘춤추는허리’ 활동으로 번졌다. 조화영의 새로운 일이었다. 새로운 일을 통해 조화영은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일곱빛깔무지개‘가 게이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의 합창단 ‘지보이스‘와 합동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성소수자‘라는 말을 접했고, ‘춤추는허리‘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언어장애를 가진 단원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이는 서로의 다름을 환대함으로써 연대하는 경험이었다. 결코 쉽지는 않았다. - P179

사회의 한계를 개인적으로만 극복해야 했던 자신의 삶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들렸다. 다른 삶은 다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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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상한 몸 - 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6
장애여성공감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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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비정상적인 몸‘이 된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무런 장애나 아픔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인간의 몸에 대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환상은 의학과 자본이 만나 실제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매일 엄청난 양의 넘쳐나는 의학 정보와 건강을 매개로 하는 수많은 상품들은 건강한 몸, 즉 정상적인 몸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된다. - P41

지금 규범으로서 자리 잡고 있은 인권과 평등의 담론 속에서도 장애인은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미 규밤이 된 인권과 평등은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도 동시에 생긴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라고 말하는 것. 무척 쉬운 말 같지만 나의 모든 욕망과 욕구를 사회에서 인정받고 실현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나의 욕구와 욕망은 변화무쌍하다"는 영희의 일갈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의 구분, 공적인 가치와 사적인 가치를 나누는 기준을 다시 보게 만들고 장애인 해방의 지향과 목표를 확장하고 수정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자유롭고 평등해진다는 해방은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P60

섹슈얼리티는 시민권의 척도

장애여성공감이 ㅣ출발하면서 지금까지 내내 놓지 않는 화두가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이다.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진행되고 있는 질문들이 있다.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다른 몸과 경험을 가진 장애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넘어서 자신의 성적 욕망과 쾌락을 어떻게 추구해나갈 수 있을까. 섹스가 매개된 관계가 폭력 피해만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언제나 성공을 보장할 수 없지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고, 섹스의 실패가 꼭 관계의 실패는 아닌, 그리고 관계의 실패가 꼭 삶의 실패는 아닌 그런 안전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 P77

전형화는 소수자의 삶을 차별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치료, 극복, 불행, 불편 등의 부정적 서사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로 구성된다.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비장애인과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산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생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 관계의 역동, 실패와 성공, 변화들을 겪어내면서 사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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