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몸을 차별하지 않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친절과 사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과 함께 일할 때 필요한 기술을 몸으로 습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 P222
책 <페미니스트 모먼트>에서 장애여성운동의 동료인 나영정은 이 과정을 ‘개별성, 훈련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 과정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어서 오래 알아온 장애여성 동료라도 서로의 몸의 변화에 따라 ‘훈련하는 과정‘이 갱신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것을 존엄이 담긴 기술과 노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노하우도 원칙도 제각각인 기술들은 지원받는 위치에서 존엄성을 잃지 않으며, 장애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고집스러움이기도 하다. - P223
서로의 말을 알아차리는 순간, 경험은 더 이상 개별로서 존재하지 않는 우리라는 감각을 일깨운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며 일하자는 선언이 일상에 자리 잡으려면 수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장애여성공감이란 공간이 갈등에 유독 강한 것도 아니지만, 이 공간은 특이하게도 갈등을 직면하는것에 익숙해지게 서로를 단련시킨다. 회피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하는 방식은 힘들고 독특한 문화다. 이 힘든 과정을 장애여성공감은 ‘저주받은 세라피‘로 부르거나 ‘직면의 과정‘이라 불러왔다.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기 입장을 드러내도록 독려하는 것은 존중의 방식이지만, 많은 경우 힘든 도전이다. 솔직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공동 작업에서 필요한 과정이지만, 어떤 이는 상처받았고 어떤 이는 더 많이 말해야 하는 책임에 괴로웠다. 서로를 잘 안다는 건, 그만큼 관계의 책임을 동반하기도 했다. - P225
운동의 방향을 노정하기 위한 공통의 감각과 입장은 소수자 운동을 하는 이들에겐 이르기 어려운 과정이다. 사회적인 발언과 참여가 허락되지 않은 몸들이 모여, 사회의 규범과 부정의를 거부하는 입장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중층적인 부정을 거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장애여성공감은 그 몸들이 모여 수많은 직면 끝에 어렵게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고 공통의 약속을 만들어나갔다. 긴 논의들은 대부분 몸에 피로감을 남겼다. 고단한 토론이라는 노동 끝에 다다르는 짧지만, 충분한 희열이 나를 아직 여기 남아 있게 한다. - P226
소수자라는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진 얼굴 있는 관계들의 활동이 정치적 입장을 만들어내왔다. 갈등을 예고하는 공동 작업을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고, 실패의 연속선을 이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 공간에 남아 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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