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클리닝은 한마디로 세상을 떠날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남기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치울 수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 치워줬으면 좋겠는가? 기억하라. 사랑하는 이들은 당신이 남길 물건 중 몇 가지는 물려받고 싶겠지만 전부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선택을 쉽게 만들어 주자는 말이다. - P11

"빈손으로 가지 마세요 Gá inte tomhánt!"
벽에 걸린 작품을 떼어 가져가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낮이 저물고 밤도 되어가니 다들 테이블 정리에 조금씩 손을 보태라는 뜻이었다. 어쨌든 어디로든 움직일 거라면 무엇이든 들고 갈 수 있지 않은가. 비르짓타의 부탁은 간결하면서도 다정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녀는 자기 인턴들과 예술가들은 물론 볼보 Volvo의 최고경영자나 예테보리 예술 박물관 관장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그 말을 했다. 누구나 그 부탁을 받았고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다. 모두 조금씩 손을 보탰다.
비르짓타의 다정한 한마디가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본 나는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곧 그 규칙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이는 당연히 저녁을 먹고 식탁을 치울 때에만 적용되지는 않았다.
빈손으로 떠나지 않기 규칙은 어떤 상황에도 적용될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침실 바닥에 빨랫감이 떨어져 있는데 빈손으로 세탁 바구니를 지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빨랫감은 계속 불어날 것이다. 그러니 빈손으로 움직이지 말라.
외출할 때는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라. 빈손으로 움직이지 말라. 집에 돌아올 때는 그냥 지나치지 말고 우편물을 꺼내라! 빈손으로 움직이지 말라.
또 다른 친구 마리아에게는 집 안 물건들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는 특별한 규칙이 있었다. 바로 집에 새 물건이 하나 들어오면 헌 물건 하나를 내보내는 것이다. 나눔이든 기부든 판매든 재활용이든. 타협은 없다. 처음 시작은 단순히 책뿐이었다. 책 한 권을 사면 한 권을 처분했다. 그런데 효과가 좋은 것 같아서 옷과 신발, 화장품, 보디로션, 스카프, 샴푸, 아스피린에도 이를 적용했다. 심지어 음식에도!
그래서 요즘 마리아의 부엌은 옷장이나 책장, 화장실만큼 잘 정돈되어 있다. 어디에도 분류하고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쌓여 있지 않았다. 자리만 차지하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물건은 없었다. 가끔은 새 물건을 들이지 않고 있던 걸 처분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점이다.
생각해 보면 볼수록 비르짓타의 한마디는 삶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니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구를 떠날 때 다른 사람이 대신 치워야 할 쓰레기 더미를 그냥두고 가지 말자. - P62

남편이 떠난 후 내 삶은 무척 공허하고 쓸쓸해졌다. 그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50년 가까이 부부로 지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일을 함께 헤쳐 왔고 수없이 함께 울고 웃었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했고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주었다. 나는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남편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지, 그가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지 잘 알고 있다.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라스라면 어떻게했을까? 그가 너무 그립지만 한편으로 그가 늘 나와 함께 있다고 느낀다. 심지어 가끔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나는 두 사람 몫을 한꺼번에 살고 있다. 우리가 했던 생각들, 우리가 누렸던 즐거움, 우리가 해결했던 모든 문제들응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 P75

당신은 주변의 젊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아주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바로 당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말인데 정말 맞는 말이다.
무릎이 아프다고 또 징징대지 말라. 자주 전화하지 않는다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지 마라.
그저 질문하라. 그리고 들어라. 관심이 없더라도 있는 척 해라.
배부르게 먹이고, 가서 삶을 즐기라고 말해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계속 전화하고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당신이 있는 곳을 좋은 곳으로 여길 것이다. 당신이 그들의 부모보다 내어줄 시간이 많다면 특히 더. - P121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라고 말하기 직전에 과감히 ‘예스‘라고 대답했던 모든 순간을 더 확실히 기억하게 된다. 물론 나도 늘 열린 마음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마음을 좀 더 열 걸 그랬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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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뉴스는 수수께끼를 보여줄 뿐,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저자의 말이 묵직하다. 이 말은 뉴스가 무의미한 매체라는 뜻이 아니라,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끝까지 추적하여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뉴스의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의 몫이라는이야기일 것이다. 뉴스는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넘어 ‘그다음‘을 이야기하길 바란다.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 P5

왜 우리가 ‘타자의 고통‘에 섣불리 공감하기보다 고통을 겪는 타자의 공간에 침범하는 걸 더 조심해야 하는지, 왜 우리의 얄팍한 이해력은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할 때‘가 아니라 ‘다 아는 척할 때‘ 더 나빠지는지. - P6

어떤 고통을 보여줄 수 없는지에 대한 논쟁 밑으로는, 고통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뿌리 깊게 흐르고 있다. 그 어둑한 욕망은 뉴스 산업 전반에 지하수처럼 깔려있다. 사건 당시의 화면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논리는, 기술이 발달해 얻을 수 있는 화면이 많아질수록 논의 없는 당위로서 단단해진다. - P14

한 가지 확실한 건 고통의 중개인이 미디어든 개인이든, 남의 고통을 궁금해하고 알아내는 일은 도움을 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했다는 죄의식은 대개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다. - P32

대상화를 무작정 멈추라는 말은 함정이다. 타인에 대한 말하기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도울 기회를 알지도 못한 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의 눈은 움직일 수 있다. 자랑스럽지 않은 이유로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곳으로 분명히 이동할 수 있다.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전달과 전달, 중개와 중개를 통해 유예되어 버린 행동의 가능성이 당신에게 있으니까.
그러므로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여력이 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움직이기를. 행동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시급한 진단의 효용과 오용을 잊지않은 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기를. 때로 대중이 활용하는 기술은 부당할 정도로 쉽게 공격받는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볼수 있는 큰 단위의 숫자만으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행동했다는 효능감을 느끼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좋아요‘와 ‘리트윗‘ 같은 대중화된 기술의 효과를 괄시하거나 폄하할 필요 역시없다.
인터넷에서 펼쳐지는 말의 향연은 당연히 충분치 않다. 그걸 알고 있으면 된다. 비평가 존 버거John Peter Berger가 말했듯이, 타인의고통을 보고 난 뒤 충격을 개인의 ‘도덕적 무능‘으로 연결해 그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될 필요도 없다. 때론 죄책감이라는 통증을 넘어서야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는 길이 열린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을 보는 일에는 완벽함이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미욱한 애씀의 흔적을 조금씩 용인하면서라도 움직이기를 바라기에. - P36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 P94

보도란 ‘누군가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말하는 일이고, 그 하나하나의 고통 역시 누군가에게 속한 것이기에, 취재를 통해 고통에 침범하는 일은 결국 누군가의 삶에 침입하는 일이었다. 어떤 고통이 문제라고 말하는 건, 고통이지만 끝내 당신의 것인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이걸 취재하는지 잘 이야기하고 동의를 받은 것만으로는 다 무를 수 없는, 취지가 좋은 것만으로는 다 메울 수 없는, 취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남기는 상처가 있었다. - P120

앞서 말했듯 특혜에서 배제된 집단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선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악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약자라는 맥락 안에서 조명받곤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 P136

전쟁 보도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많은 보도에비유와 대조의 공식이 적용된다. 지난해, 지난달, 지난 분기와 비교하거나 다른 세대, 다른 성별, 다른 국가, 다른 지역, 다른 계급과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 가늠한다. 패턴을 찾아 현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보도의 대상이 고통일 경우에는 특히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기 위해 거의 필수적이다 싶게 이러한 과정이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자주 불려나오는 기준은 역시 ‘나‘다. 뉴스의 수신자가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다. 고통의 당사자, 폭력의 피해자가 나일 수도 있었다는 구호는 매우 원초적인 불안을 건드리는면이 있다. 한동안 유행했던 내러티브 기사 쓰기 역시, 사건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를 작성해 더 쉽게 이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법이었다. 독자가 인물에 자신을 태운 채로 대리 체험을 해 결국 1인칭으로 마음을 포개도록 설계된 쓰기다.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나를 틀로 쓰자는 뉴스의 제안은, 얼마만큼 유효한 기획일까? 실제로 ‘나‘의 고통은 뼈저리게 생생하다.
남의 고통보다 훨씬 더. 이따금 끔찍한 사건을 취재하고 난 뒤에나나 가족이 피해자가 되어 같은 사건을 겪는 악몽을 꾸곤 했다.
그럴 때면 식은땀이 범벅이 된 채로 깨어나 몸서리를 쳤다. 취재를 하며 피해자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던 순간보다 꿈에서 스스로 피해자가 된 순간이 훨씬 고통스럽게 여겨졌다는 점이 끔찍했다. 가짜 고통, 가짜 겪음일지라도 내 몸을 통과하니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여겨진다는 게 괴물 같았다. - P146

그러나 나와 닮은 것들에 대한 연민은, 자꾸만 나에게로, 나라는 좁은 둘레로, 가족으로, 우리 민족으로, 우리 인종으로, 우리 계층으로, 우리나라라는 비좁은 단위로 파고들어 그 바깥을 바라볼수 없도록 우리의 이성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생산하는 뉴스, 그리고 우리에게 도달하는 뉴스는 나/우리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일 수 있을까?
나와 닮은 것에 대한 연민을 자극하고 발휘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세상에 충분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닮은 것에 대한 반응은 나쁜가? 그게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져 무리 생활을 해나가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히 낫지 않은가? 무엇에서 촉발되었건 불완전한 사회가 대중적 감정이 뿜어내는 힘을 기반으로 무거운 몸을 조금씩 들썩이며 어디론가 가게 된다면 어쨌든 괜찮은 걸까? 약간 비뚤어진 듯하면서도 타인에게 공명하는 감정이기에 이타적인 구석이 있는, 각자와 닮은 것에 한정된 연민을 연료로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재어본다. - P153

저항을 무효화하는 효과적인 방식은 억압된 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저항이야말로 갈등의 범인이라고 지목하는 것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교묘하게 맥락을 지우는 일이다. 언론은 갈등 상황을 ‘화해‘가 필요하고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며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이쪽도 힘들고 저쪽도 힘들다고 나열하며 사안의 무게를 재려하지 않고 등가로 기록하고 지나간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의 효용은 매우 분명하다. 구조적인 오류를 수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다. 억압의 맥락을 자른 보도는 억압을 재생산하고 기존 질서를 공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곤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맥락을 제거한 채 화해를 강요하는 일이아니라, 지워진 맥락을 복구하는 작업이다. 또한 김지수 기자가말했듯 "갈등의 맥락을 재배치해 더 나은 언어를 설계"하는 일이다. 갈등이 있다고 외치기보다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묻고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젠더 갈등‘을 유일한 문제로 지목하지 않고, 현실에서 살아가는청년들이 피부로 겪고 있는 진짜 문제가 지워지지 않도록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그들의 문제를 그들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줘야 한다. - P206

"진정으로 어려운 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 믿을 만큼 인간성에 대한 충분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다 한쪽 눈을 잃었고, 결국 목숨까지 잃은 종군기자 마리 콜빈Marie Colvin의 말이다. 그 뒤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짤막한 소식의 파편들을 들고 한계가 분명히 보이는데도 이걸 왜 만들어내고있는 걸까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람들에 대한 신념이나 믿음보다 오히려 더 자주 떠올리게 되는 건 ‘반응의 자유‘ 쪽이다.
한 고통과 마주쳤을 때, 우리를 크게 흔드는 이미지를 만났을 때, 우리는 공감하며 크게 감응할 수도 있고, 곧 잊어버릴 수도 있다. 연민을 느끼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무력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너무 많은 타인의 고통에 질려 눈을 돌릴 수도 있다. 분노한 나머지 공격적인 말들을 쏟아낼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무엇이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질 수도 있다. 행동은 절대선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행동이라고 해일상을 살아가며 연민을 잊지 않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균형과 전환 사이에서 기이한 파열음이 나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라는 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반응 속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 자유를 지켜볼 수 있을지를 더 자주 곱씹어보게 된다.
각자의 시선이란 잔인할 정도로 개인적이고, 우리의 망막에 고인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눈물 한 방울 내지 못한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 한구석에 던져 놓은 신문뭉치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새로운 물건을 만들듯이, 시야 어딘가에 머무르다 펼쳐보게 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조금 더 천천히, 더 담담한 뉴스를 만드는 건 어떤가. 빨리 시선을 잡아채는 것이 반드시 변화를 약속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한 지 오래이니, 오래 걸리더라도 있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알려야 할 것을 균형 있게 생산해 내는 매체로 머무는 건 어떤가.
그러고 보면 역사가 늘 전진하고 진보한다는 세계관을 더 이상믿을 수 없게 된 세상 아닌가. 연민이라는 감정 하나로는 세상이바뀌지 않는다는 걸, 행동을 촉발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다는걸 떠올리다 보면 생산자는 최대한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소비자는 마음을 온전히 포개는 데 또 실패했다는 패배감을 덜 느낀 채로 뉴스를 생산하고 소화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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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살면서 늙는 곳, 요리아이 노인홈 이야기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가난한 자는 한가할 틈이 없다. - P62

진정한 안도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안도감은 결국 지불한 금액만큼만 손에 쥐는 등가교환의 상품권이다. 멋지고 화려한 팸플릿에 쓰여 있는 희망에 찬 문구는 진정한 희망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멋지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다. 그런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맡길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P77

어쨌든 눈독을 들였던 땅은 손에 넣었다. 특별 노인요양시설을 건축하는 데 얼마나 큰 돈이 들어갈지는 현재로서는전혀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액수가 얼마이건 우리는 해낼수 있다. 우리 손으로 우리 길을 개척할 수 있다. 근거 따위는 없다. 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결의가 있을 뿐이다. 무모하다면 무모할 수도 있다. 계획이 없다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전례가 없다거나 성공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면 새로운 일은 절대 시작할 수 없다. 새로운 일은 언제나 무모하고 계획조차 없는 상태에서, 전례가 없고 미래가 약속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탄생한다. 우리가 당시에 느끼던 ‘고양되는 느낌‘이나 ‘설렘‘은 바로 그런 데서 연유했을 것이다. - P86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늙음‘이라는 불가항력의 영역에까지 미치게 된 이후, 사람들은 두려움에 젖어 노화 예방과 치매 예방에 모든 신경을 쏟게 되었다. 특별한 문제 없이 자연스럽게 늙어서 서서히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사치라고 불러야 할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생존권에 귀속되는 간병 문제를 서비스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민간에 위탁하여 해결하는 길을 선택했다. 결국 간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동산 회사나 건축 회사, 이자카야 체인점까지 간병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 정책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옵션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진행될테고 향후 간병 업계에서는 그런 방식을 기준으로 삼게 될 것이다. 즉 모든 수고를 돈으로 살 수밖에 없는 서비스 제공 시스템인 것이다. - P207

시설로서 어떤 형식을 갖추어야 하느냐, 이런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시설다운 시설‘이 아니라 ‘아무리 보아도 시설로 보이지 않는 시설‘을 만들고 싶었다. 관리와 감독에서 자유로우며 지배나 속박과는 거리가 먼 시설. - P217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참견이겠지만) 말하고 싶다.
유토피아를 찾아봐야 의미가 없다고.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없으면 다른 데에도 없다. 여기저기 들락거리며 웃물만 맛보고 세상이 넓어졌다거나 깊어졌다거나 혹은 실망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얕은 바다에 떠서 돌아다니기만 하는 행위와 같다. 늘 자기 마음에 드는 경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일종의 자기 찾기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바다에는 심해어가 있는 세계도 있다. 그것을 알려면 하나의 바다 속으로 깊이 더 깊이 잠수해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세상은 깊이가 있어 재미있는 법이다. - P235

‘요리아이‘는 간병을 지역사회의 몫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늙어서도 익숙한 장소에서 살려면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연결하고 낯익은 사람을 늘림으로써 ‘어려울 때는 서로 돕는‘ 안전망을 만들어두려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번 무너져버린 ‘이웃 간 교제‘는 원래 형태로 되돌릴 수 없고 비슷하게나마 되살리려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반대로,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을 어딘가로 몰아내기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전화 한 통, 상담 한 번으로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움직여서 처리해준다. 그야말로 인스턴트, 그야말로 편의적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동원해 안도감을 얻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한 안도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이 반대 입장에 놓이는 순간 불안해지는 ’잠정적인 안도감‘에 지나지 않는다. 인과응보다. 다른 사람에게 한 짓은 반드시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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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나무 - 인간적 경제를 위한 10가지 이야기
루이지노 브루니 지음, 강영선 옮김 / 상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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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정작 그들에게 필요하고 가치 있는 미덕을 원하는 만큼 갖출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애초에 직원들에게 기대했던 덕성과 실제로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 덕성 사이의 간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쉬운 대체 방법을 찾기보다 어쩔 수 없이 부족한 품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면서 직원들이 그 상태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성장하도록 돕는다. 모든 조직이 지녀야 할 첫 번째 지혜는 구성원들의 영혼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각각의 덕은 무엇보다 먼저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P31

우리가 지닌 충성의 능력은 액면가가 보장된 주식이 아니다. 그것은 내적 삶의 질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의 수준에 따라 변한다. 지금 여기에 충성하겠다는 나의 선택은 내면에서 느끼는 정신적 보상에 달려 있을 것이다.
때로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특정 기업이나 공동체에 충실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 인식에 달려있을 수도 있다. 기업은 충성심을 창출할 수 없음에도 이는 전적으로 그레고 오로지 인간의 자유로운 선물일 뿐이다. - P37

인간은 제도나 기업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복합적이며 풍요롭고 신비로운 존재이다. 때때로 우리는 하찮게 보이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월등한 존재이다. 우리는 언제나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능률을 기대하지만 우리는 종종 마음속에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데 장애가 되는 감정과 정서를 느낀다. 마침내 절대 채워지지않을 인정과 존중 욕구를 충족시키려 애쓰면서 우리는 헛되이 힘을 낭비한다. 기업이 우리를 위축시키면서 마음의 열정을 꺼버리지 않는 한, 그리하여 영혼의 위대함을 지워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살아 있고 창조적일 것이다. 영혼이야말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기업의 구원이 깃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 P40

겸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덕목이고, 근본적으로 관계적이다. 좋은 시민적 삶의 문법을 구성하는 상호성의 행위 안에서 우리의 겸손은 오직 타인들만이 식별할 수 있고 그들의 겸손 또한 우리 쪽에서만 인식할 수 있다.
우리가 그다지 겸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겸손과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겸손이 무엇인지 식별할 줄은 안다. 겸손해지기 바란다면 그 자체가 이미 겸손이다. 겸손의 열매는 다른 것과 혼동할 수가 없다. 겸손의 첫 번째 열매는 삶과 타인들 그리고 자신의 부모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난 감사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재능과 장점, 아름다움이 선물이자 사랑이며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비롯된다. 겸손은 세상과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는 행위이므로 의지적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겸손은 어느 날 저절로 환히 드러나서 알아보게되는 것이다. 존재하고 소유하는 모든 것이 삶의 관대함으로부터 단순히 거저 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닌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 중에서 우리 손으로 이룬 것은 실로 보잘것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이 무상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 자연스럽고 근본적인 감사의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진리를 향한 사랑이라는 윤리적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성숙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이 세상을 떠날 때 마침내 겸손한 감사의 마지막 행위로 끝을 맺는다. 겸손은 더욱 심오한 진리에 다다르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겸손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선물이다.
겸손한 사람은 항상 고마워한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그의 ‘감사‘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오직 겸손한 이들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인간과 세계의 보다 심오하고 더욱 아름다움이 있다. 겸손한 이들만이 기도할 줄 안다. - P48

겸손과 유사한 온화함, 연민, 너그러움과 같은 덕목들을 존중하기 시작한다면, 리더십의 기술적인 면과 함께 리더십을 고취하는 문화의 내부에서 완전한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겸손은 누군가를 따르는 법을 가르친다. 타인들, 각양각색의 사람들, 가난한 이들, 자기 자신보다 우수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뒤따르도록 양성되지 않은 책임자는 결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안내자(리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한 존재의 온전한 가치는 그가 도달한 겸손으로 측정된다. 겸손은 큰 시련의 시기를 견디며 살아내기 위한 토대와 같다. 삶이 우리를 땅humus에 내팽개치고 진창에 빠뜨릴지라도, 땅과 친하게 지내는 법을 배워 땅의 친구가 되었다면, 우리는 크게 다치지 않고 다시 일어날수 있다. 겸손이 없다면 누구도 인간의 고귀함에 도달할수 없고, 어떠한 일도 제대로 터득할 수 없다. 나아가 결코 진정한 어른으로 성숙할 수도 없다. 겸손은 피조물의입에서 나올 수 있는 궁극의 언어이다. - P53

우리의 너그러움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든다.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면서 자연히 너그러움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미래의 지평선이 목전에 다가오거나 예기치 못하게 끝나버려서-너그러움의 첫 번째 ‘밑천‘인-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절대 충분치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 때문에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너그러움을 간직하고, 젊은이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고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너그러움은 덕으로 변화한다. 시간이 흘러도 너그러움을 잃지 않으려면 더 많은 사랑과 고통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P60

가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순결을 불러들인다. 너그러운 사람은 ‘독식‘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소진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놓아둔다. 너그러운 회사 조직은 우수한 노동자들의시간과 영혼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나아가 우수하거나 특별한 자질을 지닌 노동자의 영혼과 시간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기업의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이들에게 달려 있다. 만일 회사가직원을 완전히 움켜쥐려고 하면 사람은 탁월함과 특별함이 깃든 아름다운 면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이 아름다움을 지닌 상태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잉여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것을 알거나 직관적으로 감지해야 한다. - P65

성과주의 이데올로기 안에 숨겨진 함정은 미묘하며 일반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업은 성과의 다양함을 오직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만으로 축소해 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를 성과에 보답할 능력을 지닌 곳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화가의 그림을 그리는 재능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의 손이 지닌 가치는 볼트를 조이는 능력으로만 측정된다. 경제적 성과는 보상하기 쉽다. 판단하고 측정하고 보상하기 위한 성과와 과오는 단순해도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의 성과는 판단하기 훨씬 어렵고 측정하기는 한층 더 어렵다. 이럴 경우에 큰 위험이 드러난다. 기업은 측정 가능성의 손쉬움을 고려하여 ‘가시적‘ 성과만을 인정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이것만을 측정하여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동시에 두 가지 결과가 벌어진다. 양적이고 측정 가능한 성과는 과도하게 장려되고, 질적이고 비생산적인 성과는 지나치게 위축된 채 버려진다. 우리가 담론을 시작하면서 소개한 좋은 삶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하지만, 경제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미덕의 파괴는 가속화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학교에서 했던 경험을 기업과 경제 분야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학문적 성과는 손쉽게 점수로 정량화되고 측정되었다. 이 평가의 결과로 전문가로서 직업적 출세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들 사이에서 매우 편차가 심한 봉급과 사회적 평가의 프로필이 확정된다. 삶과 사회에서 학문적 성취는 성과로 변질되고 말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지만 다른 형태의 지성을 지닌 사람들을 딛고 올라서서, 오래된 성과주의의 이름으로 모든 권력의 구조를 구축하였다. 모든 측정과 성과주의는 권력을 관리하는 도구이다.
그리스도교 인본주의의 탁월한 업적은 패자들을 죄인처럼 여기는 고대 세계를 지배한 인과응보의 문화로부터 우리의 사고를 해방시킨 것이다. 성과의 불콩죽한 그릇에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운명을 달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존재이다. - P141

창업기에는 노동자와 경영자가 젊고, 기업과 노동자간의 약속, 기대, 상호적 인식과 배려가 선순환되면서 책임감과 열의, 인센티브도 나선형으로 상승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정서적이고 관계적인 투하 자본이 누적되고 어느 날 청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되면 이것은 자본이 아니라 감정적 부채로 변질되고 만다. 맨 처음 지녔던 이른바 "자기도취적인 계약"이 위기에 봉착하고, 초기의 희열은 환멸과 좌절로 바뀐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고 덧없으며 스스로 "패자"라고 느끼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때까지 이룩했던 "이상적인노동자"라는 이미지는 붕괴되고 뒤를 이어 번아웃, 탈진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수시로 지치고 약해지며, 시간이 흐를수록 쇠잔해가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게임은 삶의 등불로서의 가치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게임은 머지않아 새롭게 교체될 다른 젊은이들이 계속하여 뒤를 잇게 될 것이다. 마치 군대나 사이비 종교집단과 같이 이 조직들이 젊음을 "소비"하는 방식은 놀라울 뿐이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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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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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할 것을 제대로 못 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그래서 자신감을 잃은 끝에 제풀에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 위에 생존 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곧바로 소외감이 찾아오고, 그것이 또 부당하게 느껴지고,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 P86

그녀는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늘 남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은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거나 우월감에 취한 게 아니라 단지 남에게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안에는 우연히 들어온 바람으로 가득 채워졌다가 그것이 빠져나가 텅 비워지곤 하는 허공 같은 게 있는지도 몰랐다. 결국은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는 독선적인 사람들에게 번번이 끌려다니는 꼴이 되고 말지만 말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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