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정작 그들에게 필요하고 가치 있는 미덕을 원하는 만큼 갖출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애초에 직원들에게 기대했던 덕성과 실제로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 덕성 사이의 간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쉬운 대체 방법을 찾기보다 어쩔 수 없이 부족한 품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면서 직원들이 그 상태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성장하도록 돕는다. 모든 조직이 지녀야 할 첫 번째 지혜는 구성원들의 영혼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각각의 덕은 무엇보다 먼저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P31
우리가 지닌 충성의 능력은 액면가가 보장된 주식이 아니다. 그것은 내적 삶의 질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의 수준에 따라 변한다. 지금 여기에 충성하겠다는 나의 선택은 내면에서 느끼는 정신적 보상에 달려 있을 것이다. 때로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특정 기업이나 공동체에 충실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 인식에 달려있을 수도 있다. 기업은 충성심을 창출할 수 없음에도 이는 전적으로 그레고 오로지 인간의 자유로운 선물일 뿐이다. - P37
인간은 제도나 기업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복합적이며 풍요롭고 신비로운 존재이다. 때때로 우리는 하찮게 보이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월등한 존재이다. 우리는 언제나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능률을 기대하지만 우리는 종종 마음속에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데 장애가 되는 감정과 정서를 느낀다. 마침내 절대 채워지지않을 인정과 존중 욕구를 충족시키려 애쓰면서 우리는 헛되이 힘을 낭비한다. 기업이 우리를 위축시키면서 마음의 열정을 꺼버리지 않는 한, 그리하여 영혼의 위대함을 지워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살아 있고 창조적일 것이다. 영혼이야말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기업의 구원이 깃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 P40
겸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덕목이고, 근본적으로 관계적이다. 좋은 시민적 삶의 문법을 구성하는 상호성의 행위 안에서 우리의 겸손은 오직 타인들만이 식별할 수 있고 그들의 겸손 또한 우리 쪽에서만 인식할 수 있다. 우리가 그다지 겸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겸손과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겸손이 무엇인지 식별할 줄은 안다. 겸손해지기 바란다면 그 자체가 이미 겸손이다. 겸손의 열매는 다른 것과 혼동할 수가 없다. 겸손의 첫 번째 열매는 삶과 타인들 그리고 자신의 부모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난 감사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재능과 장점, 아름다움이 선물이자 사랑이며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비롯된다. 겸손은 세상과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는 행위이므로 의지적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겸손은 어느 날 저절로 환히 드러나서 알아보게되는 것이다. 존재하고 소유하는 모든 것이 삶의 관대함으로부터 단순히 거저 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닌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 중에서 우리 손으로 이룬 것은 실로 보잘것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이 무상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 자연스럽고 근본적인 감사의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진리를 향한 사랑이라는 윤리적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성숙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이 세상을 떠날 때 마침내 겸손한 감사의 마지막 행위로 끝을 맺는다. 겸손은 더욱 심오한 진리에 다다르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겸손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선물이다. 겸손한 사람은 항상 고마워한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그의 ‘감사‘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오직 겸손한 이들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인간과 세계의 보다 심오하고 더욱 아름다움이 있다. 겸손한 이들만이 기도할 줄 안다. - P48
겸손과 유사한 온화함, 연민, 너그러움과 같은 덕목들을 존중하기 시작한다면, 리더십의 기술적인 면과 함께 리더십을 고취하는 문화의 내부에서 완전한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겸손은 누군가를 따르는 법을 가르친다. 타인들, 각양각색의 사람들, 가난한 이들, 자기 자신보다 우수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뒤따르도록 양성되지 않은 책임자는 결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안내자(리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한 존재의 온전한 가치는 그가 도달한 겸손으로 측정된다. 겸손은 큰 시련의 시기를 견디며 살아내기 위한 토대와 같다. 삶이 우리를 땅humus에 내팽개치고 진창에 빠뜨릴지라도, 땅과 친하게 지내는 법을 배워 땅의 친구가 되었다면, 우리는 크게 다치지 않고 다시 일어날수 있다. 겸손이 없다면 누구도 인간의 고귀함에 도달할수 없고, 어떠한 일도 제대로 터득할 수 없다. 나아가 결코 진정한 어른으로 성숙할 수도 없다. 겸손은 피조물의입에서 나올 수 있는 궁극의 언어이다. - P53
우리의 너그러움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든다.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면서 자연히 너그러움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미래의 지평선이 목전에 다가오거나 예기치 못하게 끝나버려서-너그러움의 첫 번째 ‘밑천‘인-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절대 충분치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 때문에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너그러움을 간직하고, 젊은이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고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너그러움은 덕으로 변화한다. 시간이 흘러도 너그러움을 잃지 않으려면 더 많은 사랑과 고통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P60
가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순결을 불러들인다. 너그러운 사람은 ‘독식‘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소진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놓아둔다. 너그러운 회사 조직은 우수한 노동자들의시간과 영혼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나아가 우수하거나 특별한 자질을 지닌 노동자의 영혼과 시간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기업의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이들에게 달려 있다. 만일 회사가직원을 완전히 움켜쥐려고 하면 사람은 탁월함과 특별함이 깃든 아름다운 면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이 아름다움을 지닌 상태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잉여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것을 알거나 직관적으로 감지해야 한다. - P65
성과주의 이데올로기 안에 숨겨진 함정은 미묘하며 일반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업은 성과의 다양함을 오직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만으로 축소해 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를 성과에 보답할 능력을 지닌 곳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화가의 그림을 그리는 재능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의 손이 지닌 가치는 볼트를 조이는 능력으로만 측정된다. 경제적 성과는 보상하기 쉽다. 판단하고 측정하고 보상하기 위한 성과와 과오는 단순해도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의 성과는 판단하기 훨씬 어렵고 측정하기는 한층 더 어렵다. 이럴 경우에 큰 위험이 드러난다. 기업은 측정 가능성의 손쉬움을 고려하여 ‘가시적‘ 성과만을 인정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이것만을 측정하여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동시에 두 가지 결과가 벌어진다. 양적이고 측정 가능한 성과는 과도하게 장려되고, 질적이고 비생산적인 성과는 지나치게 위축된 채 버려진다. 우리가 담론을 시작하면서 소개한 좋은 삶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하지만, 경제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미덕의 파괴는 가속화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학교에서 했던 경험을 기업과 경제 분야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학문적 성과는 손쉽게 점수로 정량화되고 측정되었다. 이 평가의 결과로 전문가로서 직업적 출세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들 사이에서 매우 편차가 심한 봉급과 사회적 평가의 프로필이 확정된다. 삶과 사회에서 학문적 성취는 성과로 변질되고 말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지만 다른 형태의 지성을 지닌 사람들을 딛고 올라서서, 오래된 성과주의의 이름으로 모든 권력의 구조를 구축하였다. 모든 측정과 성과주의는 권력을 관리하는 도구이다. 그리스도교 인본주의의 탁월한 업적은 패자들을 죄인처럼 여기는 고대 세계를 지배한 인과응보의 문화로부터 우리의 사고를 해방시킨 것이다. 성과의 불콩죽한 그릇에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운명을 달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존재이다. - P141
창업기에는 노동자와 경영자가 젊고, 기업과 노동자간의 약속, 기대, 상호적 인식과 배려가 선순환되면서 책임감과 열의, 인센티브도 나선형으로 상승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정서적이고 관계적인 투하 자본이 누적되고 어느 날 청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되면 이것은 자본이 아니라 감정적 부채로 변질되고 만다. 맨 처음 지녔던 이른바 "자기도취적인 계약"이 위기에 봉착하고, 초기의 희열은 환멸과 좌절로 바뀐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고 덧없으며 스스로 "패자"라고 느끼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때까지 이룩했던 "이상적인노동자"라는 이미지는 붕괴되고 뒤를 이어 번아웃, 탈진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수시로 지치고 약해지며, 시간이 흐를수록 쇠잔해가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게임은 삶의 등불로서의 가치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게임은 머지않아 새롭게 교체될 다른 젊은이들이 계속하여 뒤를 잇게 될 것이다. 마치 군대나 사이비 종교집단과 같이 이 조직들이 젊음을 "소비"하는 방식은 놀라울 뿐이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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