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폐지하라 -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법
소피 루이스 지음, 성원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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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상대가 충분한 돌봄뿐만 아니라 자율성을 만끽할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다-자본이 숨통을 조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런 풍요가 가능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 P11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를 고립시키고, 그의 생활 세계를 사유화하고, 그의 거주지와 계급과 법적 정체성을 임의로 지정하고, 친밀하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의 영역을 철저히 제한하는 사회적 기술을 승인하는 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 P11

결국 모두가 패자다. 가족은 자본축적을 제외한 다른 모든 목적에는 비참할 정도로 부합하지 못하므로.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닐 때가 많다. 그냥 별것도 아닌 데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일 뿐이다. 한편으로 가족은 이 지구에서 가장 많은 강간과 가장 많은 살인이 일어나는 장소다. 당신에게 날강도짓을하고, 당신을 괴롭히고, 갈취하고, 조종하고, 구타하고, 원치 않는 접촉을 할 가능성은 그 누구보다 가족이 더 크다. 논리적으로, "당신을 가족같이 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많은 항공사, 레스토랑, 은행, 소매점, 직장에서 그러하듯이)은 소름 끼치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대신 누군가에게 은유적으로 "가족"이 된다는 건 그사람에게 상당히 가족답지 않은 무언가 말하자면 수용, 연대, 기꺼이 돕겠다는 약속, 환대, 돌봄이 있다는걸 믿게 만드는 일이다. - P22

르 귄은 사실 톨스토이의 말을 뒤집은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서" 성장한 르 귄은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어떤 가족이 행복하다고 묘사하는 건 현실을 얕보는 참을 수 없는 잘못"임을 지적한다. 르 귄에게 "행복한 가족"이라는 표현은 바로 행복의 본질, 즉 (특히 자본주의하에서는) 무지막지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에 대한 근본적인 무관심함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한가하게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가족이 누리는 행복의 토대에 "희생과 억압, 억제,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린 선택, 잃거나 잡은 기회, 크고 작은 해악의 균형 잡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하부구조"가 존재함을 망각한 것이다. "눈물, 두려움, 편두통, 부정의, 검열, 말다툼, 거짓말, 분노, 잔인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렇다, 가족은 행복할 수 있다고 르 귄은 말한다. 속마음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농담 같은 걸 던질 때는 말이다. 그게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러니까 한 주, 한 달, 뭐 그보다 더 길게"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P26

하지만 모든 유토피아가 그렇듯이 그 세상 역시 이미 현재에 깃들어있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해방적이고 (사유재산에 반한다는 의미로서) 퀴어적인 돌봄 양식을 개발하고자 애쓰는 모든 구석구석에서 성긴 움을 틔우고 있다. (‘퀴어‘라는 단어에서 공산주의적인 의미는 상당 부분 지워졌지만, 여기저기서, 또 내 마음속에서 분명 ‘퀴어‘는 여전히 가족 폐지론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재생산 제도-결혼, 사유재산, 가부장제, 경찰, 학교-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퀴어적이게도, 최고의 돌봄 제공자들은 이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아이들, 연로한 친척,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재산 사랑"이라고 부른 소유적 사랑 pos-sessive love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동지적인 어머니 역할 수행자들은 민간에 내맡겨진 돌봄에 반기를 든다. 따라서, 어쩌면,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행복의 생산은 지금 같은 조건에서는 가망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직 재산 사랑이 폐지된 뒤에야 우리는 새로운 사랑, 혁명적인 사랑, 붉은 사랑을 창조하기 시작할 수 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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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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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가족은 상이한 생활조건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왔다. 한국에서도 가족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가령 지금의 한국은 과거보다 결혼을 적게 하고 이혼을 많이 한다. 이 사실을 두고 가족의 ‘위기‘나 ‘해체‘라고 묘사하는 것과, 가족의 ‘변화‘나 ‘다양성‘의 증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의 ‘위기‘와 ‘해체‘ 담론은 특정 가족 형태를 ‘옳다‘고 전제한 진단이다. 이에 대해 윤홍식은 이렇게 비판한다. "가족의 특정 형태의 변화를 가족의 해체로 이해하는 것은 가족이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고 변화했다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두 접근은 국가 정책적으로 중대한 차이를 낳는다. ‘위기’와 ‘해체’의 담론은 공포를 조장하고 과거로 회귀하게 만든다. 반면 ‘변화‘와 ‘다양성‘의 담론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여 새로운 제도를 만들게 한다. 전자는 기존의 가족질서에 맞추어 살도록 개인을 통제하고 압박하지만, 후자는 모든 사람의 가족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대안적 제도를 고안하도록 한다. - P188

2장에서 나눈 혼외출생자 이야기나 3장에서 나눈 ‘혼혈인‘, 한센인, 장애인 등의 이야기는, 부도덕하거나 열등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불행이 아니라, 가족각본이 만들어낸 불평등의 결과였다. 한부모가족, 입양가족, 재혼가족, 이주배경가족, 조손가족, 비혼가족, 동성커플가족, 트랜스젠더가족 등 모든 가족은 가족의 ‘위기‘나 ‘해체‘, 혹은 ‘붕괴‘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양식이다. 그런데 가족각본이 이러한 삶을 열등하고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여 낙인을 새기고 차별을 정당화한다. 국가가 특정가족 형태를 ‘건강가정‘이라고 명명하며 ‘만들어내는‘ 이 불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2022년의 대법원이 가족각본에 흠집을 내며 만들어낸균열이 특히 의미가 있다. 앞에 발췌한 결정문에서 보듯, 대법원은 헌법 제36조 제1항이 보장하는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가 모든 사람의 권리임을 확인했다. 설령 가족관계에 변화가 있더라도 "이렇게 형성되는 부모자녀 관계와 가족질서 또한 전체 법질서 내에서 똑같이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존엄하고 평등한 가족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모든 개인에게 인정되는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불평등한 가족질서는 타당하지 않다. 누구나 다양한 모습으로 가족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하도록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 P191

장경섭은 ‘가족도덕‘의 회복을 강조하는 정치적 기조의 이면에, 국가가 사회보장 책임을 축소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한국의 공공부문 지출 수준은 낮은 편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문 지출의 비중은 프랑스 31.6퍼센트, 독일 26.7퍼센트, 일본 24.9퍼센트, 스웨덴 23.7퍼센트, 영국 22.1퍼센트 등이고, OECD 평균이 21.1퍼센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공공부문 지출은 GDP의 14.8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은 사회보장에 필요한 비용을 아끼고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맡김으로써,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렇게 기업 역시 오랜 시간 돌봄의 책임을 피하며 이익을 누렸다. 돌봄을 ‘사적인‘ 가족의 문제로 분리시키고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의지한 결과, 기업은 돌봄에 관해 신경쓰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한껏 사용할 수 있었다. 기업은 돌봄의 책임과무관하다는 생각에서, 여성을 결혼과 육아를 이유로 차별하고남성에게 과도한 노동시간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국가의 ‘가족정책‘은 여전히 가족이 공동생활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제도를마련하는 일보다, 아동을 돌봄 기관에 맡김으로써 국가와 기업이 노동력을 확보하게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다. 돌봄을 국가와 기업을 포함한 모두의 책임이자 개인의 권리로 인식하고 함께 연대하게 될 때, 비로소 불평등한 돌봄의 시간도 재배치될 수있을 것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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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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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결혼과 출산의 절대공식이 해체되면, 그래서 비혼가족이 많아지고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간단한 몇마디로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해외의 상황을 보면 그변화의 결과가 "붕괴"나 "사회적 재앙"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더구나 합계출산율을 비교하자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국가들의 상황은 한국보다 훨씬 낫다. 가령 2001년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해 이미 20년이 지난 네덜란드의 경우, 오늘날 합계출산율은 1.62명이다(2021년 기준). 프랑스는 1999년 동성·이성 비혼커플을 위한 대안적 결합제도로서 연대계약 PacteCivil de Solidarité, PACS을 도입하고 2013년부터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2021년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1.80명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혼외출생률도 높다. 태어나는 아동의 절반 이상이 결혼 밖에서 출생한다. 네덜란드의 혼외출생률은 53.5퍼센트, 프랑스의 혼외출생률은 62.2퍼센트이다(2020년 기준).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을 보면 혼외출생률 41.9퍼센트, 합계출산율 1.56명이다. 결혼과 출산의 절대공식이 허물어진 나라에서 출생률이 높은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들 나라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든 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왔다는 뜻은 아닐까? 결혼으로 쌓아올린 담벼락을 내리고 다양한 출생을 포용하려 애쓴 변화를 두고, 불경하고 문란하다고 치부하는 오류를 우리 사회가 범해온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 P65

재생산 권리를 보장한다는 건 임신·출산에 관한 개인의 결정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여 출생하는 사람을 존엄하고 평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차별을 용인하고 묵인할 때에는 누군가의 출산을 막는 일이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처럼 보였겠지만, 차별과 맞서기로 결정한다면 양육자의 권리가 곧 아동의 권리이고 그 가족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 모든 사람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 된다. 그리하여 트랜스젠더가 출산을 할 수 있는 세상은, 성별이라는 오래된 구획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일 수 있다. - P94

스웨덴의 성교육은 성을 죄악시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감정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성을 둘러싼 긴장을 없애야 상대방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성을 피해야 할 위험한 것아니라 긍정적인 삶의 요소로 보고 접근했다. 모든 개인에게 성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성을 결혼과 결부시키지 않은 스웨덴 모델을 두고 누군가는 비도덕적이고 문란하다고 했다. 하지만 스웨덴 모델에서 생각하는 ‘도덕‘은 달랐다. 스웨덴 모델은 결혼 전 성관계에 낙인찍지 않는 것, 성적 행동을 특정한 틀에 맞추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 성을 개인의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P129

이런 제도가 가족 간 불평등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까? 가족부양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일은, 마치 가족의 실패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 것과같다.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끊임없이 증명해
야 국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가족의 실패’가사회보장의 전제요건이 되면서, 사회복지제도는 마치 가족이 없는 자들을 위한 낙오된 세계인 것처럼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후의 ‘고아‘와 ‘미망인‘부터 오늘날의 장애인, 노숙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시설에서 집단적으로 생활한다. 이들은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시설에 오고, 또 시설에 있기에 자유로이 가족을 형성할 수 없는 덫에 빠진다. - P164

분명 성소수자의 출현은 가족질서에 큰 혼란을 가져온다. 뒤집어 말하면, 현재의 가족체제가 성소수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보았듯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은 성별에 따라 세밀하게 구조화된 체제다. 모든 사람을‘남‘과 ‘여‘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고 성별에 따라 달리 기대되는 역할이 있음을 대전제로 한다. 남녀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법적으로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일련의 가족각본을 충실히 따르기를 기대하고 때때로 압박한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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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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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등장은 가족각본에 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혼란의 틈에서, 아니 그 혼란 덕분에, 가족각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리는 왜 ‘당연히‘ 결혼과 출산을 하나로 여기며 결혼 밖에서 태어난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차별하는가. 우리의 인생은 왜 ‘당연히‘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양육자가 부와 모가 아닌 가족은 왜 ‘어쩔 수 없이‘ 불행한가. 왜 성별이 같은 사람은 가족을 이룰 수 없으며, 도대체 왜 며느리는여자여야 하는가. 국회 앞에서 본 피켓처럼 성소수자가 가정을파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때 그 걱정을 비틀어, 그리하여 지키고자 하는 가족은 무엇인지 질문해보면 어떨까. 그렇게당연하던 것들을 의심하다보면, 우리가 바라는 가족이 무엇인지도 알수 있게 되지 않을까. - P11

전통적인 의미의 며느리는 단순히 아들의 아내로서의 지위가 아니라 집안 전체에서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은 직책을 뜻하는 말이다. 집안 내 며느리의 서열을 잠시 잊고 그 기대되는 역할만 본다면, 며느리를 맞는다는 건 전문경영인을 모셔오는 일과 같은 수준의 대사인 것이다. - P27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 패밀리 family 의 어원인 라틴어 파밀리아 familia 는 ‘가장에게 속한 소유물‘을 뜻했다. 중세시대 파밀리아에는 아내, 자식, 노예가 포함되었다. 가장paterfamilias은 스스로 소유물이 될 수 없으므로 파밀리아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니 ‘가족‘이란 오늘날의 의미와 같은 공동체 단위가 아니었다. 당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 가난한 사람이나 노예의 경우는, 그들이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족이라 일컫지 않았다. 기원적으로 가족은 엘리트 계층이 지배하는 소유물을 지칭하는 의미였다. - P28

성별에 따라 정해지는 이 모든 가족질서는 ‘자연스러움‘과 거리가 멀다. 인위적으로 정교하게 기획해놓은 틀에 사람을 끼워맞춘 것이지, 사람의 본성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질서라고 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왜 가족제도가 남성을 중심으로 발달해야 했을까?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이 현상에 대해 유발 하라리 Yuval NoahHarari는 사피엔스 Sapiens에서 "현재로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고 말한다. 남성이 힘이 더 세다거나 공격적이라는 것은, 실제로 사회적 능력이 신체적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험적 증거라기보단 신화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왜 여성이 복종하는 지위에 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합당한 설명이 없다. 유교에서 남존여비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교리였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말로,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은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했다. 그러니 여자는 남자를 따라야 한다며,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의 도덕규범이 나왔다. 이제 모든 사람이 평등함을 원칙으로 하는 시대에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로서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규범이다.
그렇다면 며느리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현대사회에서 추구하는 평등은, 성별을 이유로 결정되는 지위를 거부한다. 가족 내 지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가족은 일반적인 사회제도와 다른 ‘자연‘의 영역이라고 말하기엔, 전통으로 내려오는 가족제도가 너무나 작위적이다. 익숙해서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거나 ‘순리‘라고 말하기엔 근거가 취약하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고 개탄하기보다, 왜 며느리가 여성이어야 하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 P33

처는 한명이지만 첩은 여럿 둘 수 있었으니 서얼의 수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권내현은 조선 후기 경상도 한 지역에서 촌락을 형성한 안동 권씨의 족보와 호적을 통해 자손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 안동권씨 18~29세손 중 결혼한 남성 구성원 총450 명 가운데 서자가 28퍼센트였다. 얼자의 경우 족보나 호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서자도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실제 서얼의 수는 더 많았을 것으로 본다. 서얼의 자손은 대대로 서얼의 신분을 가지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8~19세기 서얼의 수가 적자를 넘어섰을 것이라 추정되기도 한다. - P50

혼외출생자의 설움은 근현대사에도 계속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사생아‘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당시 조선호적령은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의 아이만을 공식적으로 자식으로 인정해 ‘적출자‘라고 했다. 결혼은 당연히 법적으로 등록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원래부터 그랬다고 말할 수 없다. 종전에는 부부로 생활한다는 사실로 충분했는데(사실혼주의), 일제강점기부터 법적인 절차를 따라야 결혼이 인정되었다(법률혼주의). 이제 법률혼주의가 채택되면서,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자식은 (공적인 인정 없이) 사적으로 태어난 아이, 즉 ‘사생아’가 되었다. - P51

결혼이란 제도가 사람을 적법과 불법으로 갈라놓은 것인데, 어느 순간 사람들은 태어난 사람을 불법적인 존재라 믿기 시작한 듯하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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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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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가진다.‘ 여성에게는 일종의 경구처럼 사용되어 왔다. 얼마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던가? ‘모든 것을 다 가진다‘는 말은 탐욕적으로 들린다. 비이성적이고 불가능한 말처럼도 들린다. 그런데 이 말은 남성에게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남자들, 특히 정계에 입문한 남자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과 아이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주 흔한데도 말이다. 남자들은 모든것을 다 가지는 게 완벽하게 가능한데, 그 이유는 모든 일을 도맡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다‘는 말이 ‘모든 것을 도맡는다‘는 의미라면, 실현 가능성은 제로가 될 것이다. 타냐 플리버섹에게는 아내가 없다. 하지만 타냐에게는 꽤 쓸 만한 복합적 대안이 있다. 바로 남편이다. 그녀의 남편은 여러 가지 일을 곡예하듯 해내고 그녀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도와준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게 흔해지지 않는 한,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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