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으로서의 집home as process’이 다시 내 시야에 잡힌 것은 살면서 거래자는커녕 거주자 자격도 획득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집에 대해 논하는 동영상을 봤을 때다.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이 서울역 맞은편에 자리 잡은 양동,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과 미래의 집에 관한 대화를 나눈 자리였다. 공공개발이 이뤄진다면 임대주택에 어떤 시설이 있는 게 좋겠냐는 질문을 받자, 주민들은 꽤 상세한 답변을 내놓았다. 집 내부에는 "조리할 수 있는 싱크대" "베란다"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문‘ (각자 쓸 수 있는 "수세식 변기" "세탁기를 들여다 놓을 공간"이 있기를 바랐다. 단지에는 운동 시설, 의료 시설, 휴식 공간, "모여서 회의도 할 수 있"고 "수급 서류 상담도 받을 수 있는" 자치 공간이 있기를 원했다. 30년 이상 노후화된 건물에 월평균 24만 원의 임대료를 내고 두 평도 안 되는 방에서 온갖 냄새와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연명해온 사람들, 동네 골목, 각종 복지시설, 반빈곤운동 단체 사무실, 서울역, 남산 등으로 제집을 확장해야 간신히 숨통이 트였던 사람들이 생각해낸 기대목록이었다. 또 하나, 쪽방주민들도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청년들처럼 1인 가구의 집과 ‘원룸‘을 동일시하는 통념에 반대했다. 방이 최소한 두 개는 돼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잠자는 방말고 "친구들 오면 같이 놀기도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이 필요했다. - P149
인류학자들은 집home을 건조물이나 자산에 국한하지 않고 일종의 희망이자 미래로, 세계에서 자기 자리place를 확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꿈의 표현으로 봤다. 사람들은 집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물질성, 감정, 사회적 관계, 거주 실천의 교차 속에서" 부단히 만들고, 이 실천 속에서 소속, 안전, 가치의 감각을 조율한다.(Samananiand Lenhard 2019:7) 이는 홈리스, 이주자, 난민에게 분명 더 위태롭고 고된 노동이다. 이 장에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과정으로서의 집‘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감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핀다. 집이 수많은 행위자의 실천이 매개된 결과라면, 과정으로서의 집을 기술하는 작업이란 이들의 실천이 더 너른공간과 더 긴 시간대에 걸쳐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Brun and Fábos 2015) - P151
분노를 느끼지 않고, 체념하고, 반항하지 않는 태도는 박탈당한 사람들이 "순전히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빈곤한 상황에 순응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센 2013 : 118)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이 빈곤을 단순히 낮은 수준의 소득이 아닌 "기본적 역량capability" (2013: 151)의 박탈로 정의한 이유다. 하지만 이 장에서 쑨위펀과의 동행을 비교적 상세히 기술한 것은, 빈자의 삶에서 급진적 변화에 대한 열망과 분노가 체념, 무관심, 순응에 선행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물어볼 엄두가 안 나고, 아무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은 태생적인 게 아니라, 묻고 따지고 소리지를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험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누적된 결과다. 쑨위펀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한때 나는 그의 ‘집‘이 계속 헷갈렸다. 태어난 고향인가, 시댁이 있는 빈현인가, 아니면 친정 식구가 모인 하얼빈인가? 지척에 농사지을 땅이 있는 가옥인가, 편리하고 현대적인 아파트인가? 쑨위펀은 토지를 찾으러 빈현에 갈 때도 "집에 돌아가고 싶다"더니, 토지를 포기하고 다시 하얼빈으로 떠날 때도 "집에 돌아가자" 했다. 집은 결국 특정 장소로 가리킬 만한 ‘어디‘도, 건조물로 지칭할 만한 ‘무엇‘도 아니라, 세계 속 자기 ‘자리‘를 만드는 부단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언제 헐릴지,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를 벗어나 맘 편히 누울 자리, 섭씨 영하20도에 볼일을 보러 공중변소를 찾지 않아도 되는 편한 자리, 방이 단 한 칸이라 이 일 저 일 떠돌며 숙식을 해결하는 자식한테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조금 넓은 자리, 자식이 미래의 배우자 앞에서 좀더 당당해질 수 있는 신원 증명의 자리, 몸이 아프고 돈이 없어도 괜찮은 자리, 서로 돌보고 의지할 존재를 곁에 둔 자리……… 하지만 쑨위펀이 자리를 만드는 과정은 (심지어 자기 자신한테조차) 자격을 의심받고, 자격 없음의 감각을 내면화하는 과정이었다. 토지의 권리, 집을 구매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면서도 일상의 마디마다 권리의 수정, 번복, 예외를 정당화하는 국가와 자본의 통치술만 문제가 아니다. 촌장, 진 정부와 주민위원회 간부, 부동산상담사의 노골적인 무시, 시댁 사람들의 은근한 경계, 가장 친밀한 가족들의 무관심과 체화된 수동성까지, ‘자격 없음‘의 판정은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심지어 가장 친밀한 사람들에 의해 계속됐다. 동행하면서 주저하기를 반복했던 나도, 거듭 노력하고 거듭 ’부적절한‘ 존재임을 확인받으며 점점 움츠러든 쑨위펀 자신도 예외일 수 없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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