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선전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로지르며 수행한 공장노동, 자원노동, 서비스노동의 궤적은, 도시가 단지 건물, 도로, 버스, 공원 등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환경이기만 한 게 아니라 "문화적 실천, 지적 회로, 정동적 네트워크, 사회적 제도들의 살아 있는 역동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자본과 전통적 노동조합의 명령으로부터 자율적인 노동계급을 지향했던 이탈리아 노동자주의 운동 이론가 마리오 트론티가 ‘사회적 공장social factory‘ 개념을 제안했던 맥락과도 닿아 있다. 잉여의 추출은 개별 공장을 넘어 다양한 작업장 안팎의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며, "인간의 노동력은 자본가에 의해 착취되는 것을 넘어 자본 내부에 통합"된다. 가사 영역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전방위적침투를 볼 수 있는 핵심 지대라는 페미니즘 논의를 상기한다면, 여성의 무임 재생산노동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부엌, 침실, 그리고 집" 역시 ‘사회적 공장‘의 예외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쭤메이를 폭스콘 노동자의 전형으로 묶어내는 대신 그가 폭스콘 공장 너머 사회적 공장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물적·정동적 가치에 주목했다. 강조할 것은, 생산이 전 사회에서 발생할 때, 착취뿐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틈입할 여지도 커진다는 점이다. ‘공통적인 것‘, 즉 "언어와 정동, 네트워크를 발산하고 공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을 가질 기회는가난한 사람들한테 전적으로 닫혀 있지 않다. 쭤메이가 자원봉사를 수행하고 보험을 판매하면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스스로 설 자리를 새롭게 확보하려고 노력했듯 말이다. 하지만 이 장의 문화기술지가 보여주듯, ‘사회적 공장‘은 노동자들을 단순히 기계, 노예, 짐승으로 억압하는 대신 이들의 열망을 한껏 부추기는 방식으로 가치를 수탈한다. 쭤메이는 자원봉사는 물론 보험 판매에서 강조하는 자기계발조차 조립 공정에서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공장노동과 상반된 가치로, 자존감과 사회성을 발현하는 기제로 보면서 도시의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생산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랬음에도 법적으로든 사회적 인정으로든 도시에서 농민공청년들이 통상 쓰는 표현대로) ‘과객‘으로 남았을 뿐이다.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량을 계발할 기회는 계속 축소되었고, 자원을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은 결혼과 가족으로 압축되었다. 이 또한 혼례 당일 몸을 씻으러 남의 집을 찾아가야 할 만큼 취약했지만.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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