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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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계에선 누구도 빈곤의 천태만상을 멀찍이서 바라만 보는 위치에 있을 수 없다. …… 정부는 선별적 포섭, 보호, 배제를 제도화하면서 공공부조 수급자에서 난민·이주자에 이르기까지 빈자를 식별하고 등급화한다. 지구상의 공유부commons를 상품화하고, 인간생명을 인적 자본으로 취급하며 경쟁을 독려해온 기업은 고도로 산업화·전문화된 반빈곤네트워크의 젖줄이 됐다. 이들은 사회공헌, 윤리적 자본주의, 임팩트 투자, 환경·사회·거버넌스ESG 등 시기별로 다양한 구호를 변주해가면서 빈곤산업의 언어와 문법을 ‘혁신‘하고, 다수의 빈곤을 초래한 대가로 축적한 자본의 극히 일부를 정부, 대학, 비영리재단, 시민단체에 세련된 퍼포먼스와 함께 재분배한다. 나를 포함한 시민 대중도 빈곤의 연결망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던 국가 통치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족 바깥의 삶에 대한 무심함을 내면화한 채 ‘쓸모없는’ 생명의 축출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공조자다. 주가와 부동산이 오를 수만 있다면 해고, 철거, 산업재해, 환경 파괴를 적당히 눈감고, 쓰레기 소각장, 축사, 심지어 복지 기관까지 ‘혐오 시설‘이라 부르며 빈곤과의 물리적 거리 두기에 안간힘을 쓴다. 아프리카 아동이 후원의 보답으로 보낸 손편지에 감동하면서도, 자녀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엔 신경이 쓰인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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