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슴 깊이 진실하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을 듣거나 읽을 때면 온몸에 강렬하고 얼얼한 전율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이 느낌을 ‘진실의 종‘(truth bell)이라고 부르는데… - P7
우리가 다양한 자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론이 인격을 파편화한다고 주장하면서 반기를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인격은 ‘이미‘ 파편화되어 있다고 느끼고, 우리의 과제는 이 자아들의 파편성 혹은 다수성을 제대로 인식함으로써 삶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파편화된 모순적 감정을 한 번쯤은 확연히느낀다. 감정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일수록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 P29
사실 우리의 인격에서 가장 일찍 발달하는 측면 중의 하나는 보디가드와도 비슷한, 우리를 ‘보호하는 자아‘이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를 늘 살피고, 어떻게 하면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을지를 판단한다. 그것은 우리의 안전을 확보해주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이게끔 해주리라고 느껴지는 일련의 규칙을 정함으로써 부모와 사회가 금지하거나 권고하는 조항들을 만들어내어 우리의 행동을 광범위하게 통제한다. 이 자아가 우리가 얼마나 감정적이어도 되는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우리가 바보처럼 행동하거나 스스로를 난감해지게 만드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 자아를 ‘보호자/통제자‘라고 부른다. 보호자/통제자는 많은 다른 자아들의 배후에 있는 원초적 에너지 패턴이다. 보호자/통제자는 이성적 자아의 에너지와 책임감 강한 부모 자아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한다. 사실 사람들이 ‘나‘라고 말할 때, 대부분은 자신의 보호자/통제자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호자/통제자 에너지는 인격의 감독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에고ego‘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이것이다. - P32
외면당한 자아들에 대해 더 깊이 탐사해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중요한 점을 미리 구분해놓을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의식되지 않는 자아를 가리키는 용어는 ‘무의식적(unconscious)‘ 자아이다. 하지만 모든 무의식적 자아가 반드시 ‘외면당한‘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 자아는 단지 ‘의식되지 않을‘ 뿐이다. 어떤 에너지도 그것을 억압하거나 그것을 무의식 속에 붙들어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모든 외면당한 자아는 에고와 보호자/통제자가 동일시하고 있는 에너지와 정반대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무절제한 성욕과 관련된 외면당한 자아를 묻어두고 있는 여성은 실제로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규율을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 정반대의 에너지, 즉 도덕적으로 올바른 에너지는 보호자/통제자와 손을 잡고 외면당한 자아를 끊임없이 억압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자아를 발견해내기 전까지는 그 자아가 외면당했는지 어떤지를 알 방법이 없다. - P50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외면당한 자라들을 반영하는 무수한 인간관계의 무력한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런 인간관계들을 도전과제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나의 내면의 지성에게) 스승님, 이 사람/상황은 어떻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식이 크게 전환된다. 삶 속의 많은 스트레스는 우리가 외면했던 자아들을 대인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무의식적 경향으로 인해서 야기되고, 똑같은 패턴이 삶에서 반복되는 만큼 우리는 계속 고통에 시달린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과정이 담고 있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외면당한 자아들의 에너지는 점점 더 강해지고 더 왜곡되어간다. 생존욕, 성욕, 공격 욕구와 같은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에너지들이 오랫동안 외면당하면 그것은 무의식 속으로 다시 돌아들어가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에너지는 사라질 수 없다. 그래서 외면당한 본능들은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하고, 자기 쪽으로 부가적인 에너지를 끌어당긴다. 곧 이 에너지들은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악의적으로 변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에너지들에게 ‘악마적 에너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외면당한 자아의 에너지가 악마적으로 변하면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공격성은 생명을 위협하는 분노로 전환되고, 질투는 통제할 수 없는 울화로 변하고, 본능적인 성적 충동은 끔찍한 경험들로 변한다. 이런 악마적 에너지들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 양쪽에서 모두 파괴적이고 포악한 행동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올 수 있다. - P56
에너지 패턴은 통합될 준비가 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꿈속에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입장료, 곧 항복을 요구한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 우리 뒤를 쫓는 사람들이나 집안으로 침입하려는 사람들… 이런 꿈들은 모두 우리와 접촉하려고 애쓰은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 패턴들이다. - P64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외면당한 자아들을 포용하기 시작할 수 있을까? 첫째로, 외면당한 자아가 작용하고 있는 것부터 알아차려야 한다. 누군가에게 짜증이 날 때를 주목하라. 그 느낌이 좋은가? 자기만이 옳다고 느껴지는가? 상대방이 ‘너무‘ 끔찍하지는 않은가? 유감이지만, 이제 당신은 외면당한 자아들에 대해 알았으니 더 이상 도덕적 우월감ㅇ 햇살을 만끽하고만 있을 수가 없다. 당신은 이제 당신이 상대방을 바꿔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이 과도하게 동일시한 성품들(당신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성품들)을 직시하고 그 성품들이 당신을 어떻게 한정하는지를 알아차려야 할 때이다. 아마 당신은 지나치게 깔끔하거나, 지독하게 열심히 일하거나, 강박적일 정도로 친절하게 남을 배려하거나, 항상 남을 돌보고 베풀거나, 항상 올바른 일만 하거나, 절대 불평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지 모른다. 이런 성품들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해서, 우리는 그것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 성품들이 어떻게 우리를 한정할 수 있고, 편협하고 완고해지게 만들 수 있고, 자신과 타인들을 복합적이고도 온전한 인간으로서 느긋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완벽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이 곧, 실패할까봐 두려워서 새로운 것은 결코 시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면 어떤가? 이제부터가 재미있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질 테지만, 외면당한 자아에게 말을 걸어보라. 외면당한 자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살펴보라. 그것이 통제권을 얻는다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물어보라. 외면당한 자아의 새로운 에너지를 느껴보라.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우리의 외면당한 자아는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영감, 풀리지 않는 문제의 새로운 해결책을 공급해주는 원천이다. 무엇보다 외면당한 자아들은 우리가 지금껏 접하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 새로운 에너지에 깜짝 놀랄 것이다. 당신에게 ‘외면당한 자아가 되라‘고 하는 것은 아님을 잊지 말라. 그저 외면당한 자아의 에너지가 ‘말하도록‘ 허용하라. - P66
이런 딜레마에 대한 답은 깨어서 의식하는 것, 즉 이런 에너지 패턴들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 자각은 어떤 것도 제거하거나 심판하려 하지 않는다. 샐리의 사례에서 의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각과 경험이었고, 그것이 선택의 가능성을 가져다줬다. 샐리는 그녀의 밀어붙이는 자아와 히피의 이야기를 들었다. 목소리와의 대화 상담에서, 우리는 그녀의 존재방식을 지배해온 생각, 태도, 감정의 시스템으로부터 그녀의 자각의식이 떨어져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생애 최초로 ‘자신의 차를 직접 운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이후에도 계속 밀어붙이는 자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밀어붙이는 자아는 더 이상 그녀를 지배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더 이상 밀어붙이는 자아가 자신에게 하는 말을 무턱대고 믿지 않았다. 그녀는 더욱 깨어 있는 에고를 발달시켜가고 있었다. - P161
최강급의 비판적 자아는 어느 각도에서도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 오직 지속적으로 경계하면서 명치 속의 철렁하는 느낌을 예민하게 감지할 때만 우리는 정신을 차려 비판적 자아의 목표를 잘 겨눈 교활한 공격을 피해낼 수 있다. 세심히 살펴보기만 하면 우리가 어떠하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비판적인 자아의 성에는 결코 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것이다. 비판적인 자아는 정확히 어디에 비수를 꽂아야 하는지를 잘 안다. 그곳은 항상 예민한 지점이며, 일단 비수가 꽂히고 나면 우리는 우리에게 꽂혀 있는 비수보다 비판적 자아의 불평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비판적인 자아는 뛰어난 칼잡이이다. 비판적인 자아의 능력을 자각할 수 있고, 비판의 내용 너머를 볼 수 있고, 비판적인 자아의 파괴적인 힘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각의식과 높은 수준의 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자각의식을 진화시켜낼 때까지 우리는 늘 비판적인 자아의 제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P170
비판적인 자아의 에너지는 변화되어(의식된 후에) 자각의식 속으로 들어오고, 깨어 있는 에고로부터 명확히 구별될 때에만 진정한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비판적인 자아는 우리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우리가 어떤 분야의 일을 하든지 기량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무의식의 영역에 대해 방심하지 않게 하여 외면당한 자아들을 알아차리게 하고, 우리가 관계의 덫에 걸려 있을 때 알려줄 수 있다. 비판적인 자아의 비난이 부정적 힘을 잃으면 비판적인 자아는 매우 효과적이고 분별력 있고 이성적인 친구가 될수 있다. - P176
우리의 삶에서 우리 안에 그토록 많은 분노를 야기하는 압정은무엇인가? 그것은 승낙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능력 혹은 무능력이다. 우리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적당히 승낙하고 적당히 거절하면서 살아간다면 분노가 치밀 일은 줄어들 것이다. - P193
우리 안의 사자는 포효하고 싶어하는데 그 대신 염소가 매에~ 하고 운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 전도된 상황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는 다양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대가는 우울증, 에너지와 열정의 상실, 커지는 무의식으로 경험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대가는 통제할 수 없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이 동안에 재산과 직업과 결혼생활, 혹은 인생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대가는 질병이나 심지어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육체적 파산이다. - P197
젊었을 때 낸은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녀의 외향적이고 질탕한 에너지가 표출되었다. 이는 음주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흔한 일이다. 외향적인 에너지가 차단되면 음주는 이 에너지를 배출하거나, 이 에너지가 외면될 때 쌓이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주된 방법의 하나가 된다. 안타깝게도 낸은 술을 끊고 나자 모든 면에서 차분하고 냉정해져버렸다. 그녀의 표현적이고 관능적인 여러 에너지 패턴들과 함께 외향성도 외면되어버렸다. 본능은 그녀의 적이 되어 돌아섰다. 그 본능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한 가지 통로는 그녀의 비판적인 자아였다. 걷잡을 수 없이 파괴력을 키워가는 종양처럼 힘을 키워가는 자아 말이다. - P206
우리의 외면당한 악마적 패턴들을 대면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자아들의 에너지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나병환자들이 일반사회에서 배척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가능한 한 그들을 피하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가 무시한 자아들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일인가. 만약 우리가 그들을 대면하고 귀 기울일 준비를 하여 그들을 우리 삶 속으로 안아 들일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찾아 나서기만 한다면, 황금 같은 기회들이 사뭇 규칙적으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 P211
수잔느의 다음 연애는 상처입기 쉬운 아이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그녀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관계였다. 수잔느는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즉각적으로 이야기하고 새로운 파트너와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상처와 두려움도 그것이 일어날 때마다 말로 표현했고, 남자도 그렇게 했다. 두 사람 모두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속 깊은 나눔을 경험했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수잔느는 배움이 빠른 단호한 여성이었고 그녀의 용기는 그녀의 파트너에게도 동등한 친밀감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들은 위험을 감수할 때마다 서로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복잡한 인간성을 함께 탐사하는 일에 대해 점점 덜 두려워하게 되고 갈수록 점점 더 용감해졌다. 그것은 늘 쉽거나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처입기 쉬운 아이들이 준 정보를 가지고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고, 달콤한 에너지의 교환(서로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신뢰할 때 두사람 사이에서 진동하는 따뜻하고 활기 넘치는 에너지)을 지켜갈 수 있었다. 한 가지 경고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영원히 완벽할 수는 없다. 깨어 있는 에고의 통제를 넘어서는 상황들은 때때로 상처입기 쉬운 아이가 관계에서 물러서게 만든다. 하지만 일단 이 따뜻함을 경험하고 나면 그것을 얻고자 노력하게 되고, 그것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 불가피한 불편은 기꺼이 감수한다. - P223
로라는 전능한 목소리와 동일시하기를 멈추고(더 이상 전능한 목소리가 달콤한 말로 그녀를 유혹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겁먹은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아이의 걱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깨어 있는 에고는 겁먹은 아이에게 부모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숙제를 했다. 자신이 알아야 할 사실들을 배워서 겁먹은 아이가 더 이상 그녀의 준비부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취약성과 두려움을 삶과 일 속에 품어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전능한 목소리에 의존하기를 그만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전능한 목소리가 자신을 지지하고 인정할 때는 기분이 매우 좋지만, 그런 힘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진정한 힘은 그녀가 자신의 취약성을 품어 안은 이후에, 그녀의 자각의식과 깨어 있는 에고로부터 나왔다. 상품을 파는 그녀의 능력은 이제 다른 사람들을 감탄시키고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욕구보다는 자신의 일에 대한 그녀의 헌신과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라 그녀를 더욱 지지해주고 현실적인 격려를 해줄 것이다. 로라는 마침내 자만심과 자기의심의 양극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 P232
지금까지 논의된 많은 자아들을 되살펴보면, 그들이 대체로 권력과 취약성의 연속체상에서 반대극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력의 극은 우리의 부모 측면이고 취약성의 극은 우리의 아이 측면이다. 우리의 에너지들은 이 양쪽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 에너지의 전형적 움직임은 다음 그림과 같이 개념화할 수 있다. 이런 에너지 흐름은 대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이것은 원형적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이 균형 잡힌 에너지 시스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통제력 부족과 취약성을 상징하는 아들/딸 측면은, 모든 면에서, 권력과 통제력을 상징하는 아버지/어머니 측면만큼이나 크다. 우리는 이 균형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것은 우리가 이 힘의 연속체의 한쪽 끝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다른 한쪽 끝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각수준이 높아져가면 에너지의 원형적 운동과 이 균형을 더욱 확연히 자각하게 된다. 깨어 있는 에고는 이런 에너지들이 우리 내면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통제하고 선택할 수단을 갖추기 시작한다. - P266
이 책의 초판을 쓴 이래로, 우리는 비인격적 자아와의 작업을 갈수록 더 강조해왔다. 우리는 외면당한 비인격적 에너지를 되찾으면 힘이 커지고 자신을 보호하는 자연스러운 능력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여성들에게 특히 그러했다. 비인격적 에너지를 표출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심리적 경계를 정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승인이 있든 없든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있고, 적대적이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요구를 표현할 수 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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