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까마귀골에서 고고한 백로로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것 같다. 까마귀 입장에서 바른말만
하는 백로의 존재는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고 자격지심을 가지게한다. 밥그릇 챙기려 반대하는 입장이라 구차함을 강요하는 윤휴가 참으로 미웠을 것 같다. 조선에 사대하던 100만의 소수민족인 여진이 대륙을 통일하였으니 조선도 대륙도모가 가능하겠다는 호연지기는 단순히 만용이 아니었다. 오삼계 등 삼번의 난이라는 기가막힌 타이밍인 천시라는 때가 되었는데 북벌을 원하는 세력에
의한 인시에 실패를 했던것 같다.
병자호란시에 옥쇄를 각오하고 싸우자던 김상현 등의 서인들은 말로만 싸울뿐 겁먹어 짖어대는 시끄러운 개와 다름 없다. 일본엔 함부로 하면서
중국 등 북방에는 한없이 낮은자세를 취하던 전정권과 참 비슷하다. 국격을 끝없이 떨어뜨린
것이 부족하여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을 비롯
여러 의병장들 그리고 소현세자, 강빈은 물론 손주
들에게까지 열등감과 질투라는 소인배적 태도가 왕의 권위를 땅바닥에 내팽겨쳤졌다. 이러한 상황
은 신하들로 하여금 조선의 왕은 단지 사대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를 함으로써 예송논쟁을 불러오게 하였다.
청나라로 부터 조선은 군약신강이라는 조롱을 들으며 패당뿐 아니라 왕마저저 환국을 획책하는 공작정치를 도모함 으로써 왕권을 강화 하려는 소인배 다운 더러운 정치꾼에 불과했다.
탕평이란 당파간 담합하여 나눠먹는 야합이다. 주희를 신격화하는 송시열은 이슬람 시아파 근본
주의자나 서양 중세기 초기의 교부 철학자와 같다. 송시열은 광신자들 보기에는 송자이나 대다수 민초들이 보기에는 시열(강아지 이름)일 뿐이다.
대학의 삼강령인 명명덕, 신(친)민, 지고지선에서 주희가 해석한 신민은 백성을 특권층의 입맛에 맞도록 교화대상으로 보는 전제주의적 사고인
新民 이 아니라, 인의로 보살펴야 할 親民이
맞다는 윤휴의 해석에 동의한다.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함에도 인의 예지를 이념으로 한다는 송시열이 和而不同 하지 못함은 개시열임을 자인하는 것 같다.
파란의 정국에서 당당히 죽는다고 얻어지는건 없다. 정치든 사랑이든 인간관계에 있어 강약조절의 밀당
이 현명한 처세인듯 싶다. 개혁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니... 결국 서인들이 주도한, 서인 사관의 조작된 팩트와 감정실린 문장으로 역사에 주홍글씨
를 새겨지고 처자식은 물론 그 가문이 풍지박산 되었
으니 아따까울 뿐이다. 사문난적이란 프레임에
걸려 사사 당했다는것을 알고 읽었지만 새드엔딩의 스토리는 언제나 익숙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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