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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파경
초현 지음 / 베아트리체 / 2018년 1월
평점 :
전형적인 재벌가 아가씨,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 지금껏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아내는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은 성혜민이 아닌 지고은이라고 주장한다. 성혜민과 함께한 오 년간의 결혼생활보다 짙은 반나절을 지고은과 함께한 진혁은, 그간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내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는데…
―성혜민은, 그리고 지고은은 대체 누구인가?
※스포일러 주의
소개글에 빙의물 같은 키워드가 없어서 대체 여주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해하며 읽었습니다. 남주가 여주의 정체를 쫓고, 여주 또한 자신이 살아온 시간에 대해 조금씩 찾아내거나 기억해 내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쫓아갑니다. 추리물이 대부분 그렇습니다만, 숨겨진 진실 혹은 트릭을 몰랐기에 흠뻑 집중해서 이것저것 추측도 해가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진실은, 어떤 부모의 잘못된 사랑이었습니다. 행복하길 바라며 자신이 낳은 아이를 부잣집 아이의 요람에 눕히고 데려온 아이에겐 죄책감을 깔고 사랑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못 꿰인 단추는, 친딸의 유전병으로 산산조각 납니다. 키워온 딸은 제 자리로 돌아가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길러준 부모를 찾았고, 친딸은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쓸쓸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사랑스러웠으면서.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았으면서. 그녀가 진심인 것도, 불안해하는 것도 다 느꼈으면서. - p.529
진혁 역시 아픈 과거가 있었습니다. 집안을 뛰쳐나가면서까지 결혼했던 전처, 그리고 사고로 태어나지 못한 아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처의 추억은 그야말로 미화해가면서, 곁에 있는 사람이 기억상실이 될 정도로 몰아간 게 잘한 건 아니지요. 심지어 전처의 실체란(...). 지고은이 어떻게 성혜민이 되었고, 성혜민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알게 된 진혁은 곁에서 함께했던 아내의 진심을 느끼면서 자신의 감정 역시 인정하게 되고, 전처에 대한 미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왕자님은 공주님을 영원히 사랑했습니다. 왕자님을 짝사랑했던 평범한 소녀가 공주가 되어서 재혼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왕자님은 그저 공주님만 사랑할 뿐입니다.
"그런데 사실 공주님이 되는 거, 원하지 않았어요." - p.588
소설을 읽는 동안 혜민의 아픔에 지나치게 공감했는지, 화해가 너무 빠르지 않은가 싶은 게 좀 아쉬웠습니다. 진혁은 뭐라 해도 오 년간 혜민을 냉대해 왔으니, 5년쯤은 고생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죠. 혜민이 진혁을 받아들인다는 해피엔딩 자체는 좋았습니다. 그간 전혀 솔직할 수 없었던 혜민, 곁에 있는 사람을 밀어내며 과거에만 잠겨 있던 진혁. 둘에게 기억상실은 사고였지만 두 사람 사이의 벽을 없애주고 서로 솔직할 수 있게 한 고마운 우연이기도 했던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