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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웃었다 4.5
류재빈 지음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왕은 웃었다> 4.5권을 읽었다. 2부가 시작되기 전의 외전으로, 두 가지 이야기- 1~4권의 본편 시점에서 미래인 '나르숀 이야기'와 과거인 '백야 이야기'가 실려 있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는 솜씨 좋은 장인들의 나라 공국 소녀 나르숀의 이야기이다. 주변의 도적떼로 인해 무너져가는 공국에서는 장인이 되지 않으면 검을 잡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 여자아이라서 나르숀은 검을 들지 않지만, 아버지는 성벽을 지키고 있으며 쌍둥이 두 동생들도 일찍부터 검을 들고 있다. 나르숀에게는 하나뿐인 언니, 예쁘장하며 제멋대로인 나르패와 장녀를 몹시 귀여워하는 어머니 역시 있다. 어쩌면 평범한, 그림처럼 그린 것처럼 화목하지도 불행으로 넘쳐흐르지도 않는, 고만고만한 가족 속에 어느날 외부인이 찾아든다.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다면서 데리고 온 세 소년―그래, 라야와 무무와 기해이다.
"딱 보면 아는 건 아버지 쪽이야. 아버지가 우리보다 더 오래 사셨고, 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겪어 봤을 테니까. 아버지 말씀 새겨듣고 너무 친해지지 마. 어차피 바깥 사람이잖아. 곧 떠날 거라고." - p.63
무뚝뚝해 보이는 라야와 달리 입담 좋은 무무를 두고 나르패는 좋은 아이라고 하지만, 나르숀은 아버지의 충고를 따라 가깝게 지내지 않으려 한다. 존경은 하지만, 한편으로 불만도 쌓이고, 때로는 잘못도 하고. 차라리 결점 있어 완벽하게 보이는 가족상이다. 주인공 일행의 가족들이 워낙 장렬해서인지; 나르패의 반항(...)은 귀엽게 보일 정도다. 무무도, 라야도 여전하다.
나르패는 어딘가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소녀이고, 나르숀은 든든하다. 위연은 멋지다. 위연과 나르숀, 두 사람이 자아내는 일상은 참 아름답고 아기자기할 것 같다. 예술은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당장 죽게 생긴 마당에 예술이 필요한가,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잿개비로 가득 찬 세상, 모래 위에 그려낸 그림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상상한다.
두 번째, '백야 이야기'. 자애로운 부부에게서 태어난 군석을 지닌 소녀는, 부모가 고른 보좌가 될 만한 소녀 두 명과 함께 성장하여 왕이 되고 그들을 군위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그녀―화왕 아래 찾아든 군석을 지닌 아이. 보통 왕은 찬탈 등을 염려하여 군석을 지닌 아이를 거두지 않지만, 화왕은 아이―백아를 받아들인다. 백아는 군위들에게서 나라의 운영에 관련된 것을 배우고, 화왕에게서 자애를 배웠다. 그러나 그 무조건적인 용서를 내리는 넓고 따뜻한 마음은, 그녀 치세에서 첫 번째 살인자가 나타나면서 일그러지고 만다.
사형 제도는 아직도 찬반 논란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죄에 벌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죄인을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에서는 '법을 어겼을 때의 처벌이 없다(고 여겨진다)면' 어떻게 되는지 교실을 통해 그려내었다. <백아 이야기>에서는 법을 만들었으며, 법을 어겼을 때 처벌을 내려야 할 주체가 차가운 잣대 대신 지나친 관용을 보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준다.
"……용서는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화왕이 지친 눈길로 백아를 응시했다.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죗값을 치르고 난 후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에요. 그들만이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할지 말지를 정할 수 있지, 우리같이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끼어들고 간섭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더 억울하지 않도록, 더 속상하지 않도록, 더 원통하지 않도록, 죄를 지은 자들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도록, 죄를 지을 생각을 못 하도록 법을 바로 세우고, 피해자들을 늘리지 않도록 해야 할 뿐이에요." - p.293
"제가 보복 살인을 한 것이 죄라면, 그것은 저의 죄가 아닙니다!"
해나는 무릎을 꿇었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말했다.
"어머니를 잃은 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는 것만으로 동정을 일삼아 법을 가벼이 여겨, 살인범을 벌하지 않고 내보낸 왕의 잘못이지요!" - p.308
"나와 같이 가자."
떨리는 갠지의 어꺠에 백아는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군석은 다시금 열릴 거야. 그때 내 나라를 너에게 보여 줄게. 내가 그토록 원했던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 보여 줄게. 내 곁에 서서 지켜봐 줘. 내가 어떤 왕이 되어 가는지, 어떤 나라를 만드는지, 군석이 어떤 색을 가지는지 나라의 이름은 무엇으로 정하는지 네가 지켜봐 줘. 그러다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 나가거든 네가 말해 줘. 오늘 내가 했던 것처럼, '왕께서는 잘못하고 계신 겁니다'라고." - p.340
5권은 언제쯤 나와줄까. <왕은 웃었다>의 이어질 이야기에 한층 더 기대를 품게 된, 본편에 비해서는 얇지만 짧지 않은 한 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