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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 彩虹 : 무지개 ㅣ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둔중한 흉기로 뒷골을 맞는 느낌과 함께 봉빈은 그때 비로소 알았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 p.198
작가의 이름을 보고 집어들게 된 소설. 주인공은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이었으며 조선왕조실록 동성애 스캔들의 주인공 순빈 봉씨다. 하지만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처럼, 이 소설에서 또 한 명의 주인공을 들자면 봉빈-난暖의 상대였던 소쌍보다 그의 남편인 문종 향珦을 들고 싶다.
난은 소녀였다.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에 익숙한. 하지만 그런 소녀는 구중궁궐에 들어와 언제나 자신을 꾸짖기만 하는 사람들 틈에서 남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고 마음을 털어놓아야 할 세자에게 버림받았다. 때때로 느낀 섭섭함들이 소복이 쌓여 서러움이 되었다. 서로만 바라보겠다 다짐한 부부라면 부딪치면서 상처를 입고 또 아물어가며, 그것이 파경으로 끝나건 비 온 뒤 땅처럼 굳어지건 결말이 났을 테다. 하지만 시대와 지위 때문에, 남편이 다른 여자를 찾아가는 것은 용납을 넘어 권장될 지경이었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린 외로운 '사람'이 또 다른 사랑을, 마음곁을 찾고자 한 것이 그렇게 잘못일까?
자신의 완벽한 세계에 사랑 같은 감정은 불필요하다고 느낀, 못생긴 휘빈도 어여쁜 순빈도 그저 똑같이, 아내라는 이름으로 제 세계에 비집고 들어오려는 여인들이 두렵기만 했던 소년―향이야말로 이 비극의 원천이 아닐까. 이 나라의 국본인 그에게 한 치의 흠도 있어서는 안 되기에, 두 번이나 벌어진 폐빈 사건은 오로지 여자들의 책임이 되어야 했다.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한, 다만 사랑하고자 했던 여심,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빚어낸 소설. 다 읽고 나자 채홍彩虹이란 제목이 사뭇 인상깊었다.
/1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