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신부 세트 - 전2권 그림자 신부
류다현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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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 위보형은 경요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어떤 상단이나 상점과 거래를 하려 할 때 꼭 살펴야 할 일이 있다. 첫째는 아랫사람들이 우두머리가 공정하다고 여기는 가, 둘째는 자기 자신과 피붙이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가, 마지막은 아랫사람에게 주어야 할 새경을 제날짜에 제대로 주고 있는가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찌 앞의 두 가지보다 마지막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윗사람이 공정하지 않아도 상단은 돌아간다. 또 윗사람이 자신과 피붙이에게 엄격하지 않아도 상단은 돌아간다. 그러나 아랫사람에게 주어야 할 새경을 제날짜에 주지 않는다면 그 상단은 절대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 힘든 일을 한다고 생각하느냐? 돈이다. 윗사람이야 그 돈이 없어도 호의호식하겠으나, 아랫사람에겐 자기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족의 목숨을 위해 꼭 필요한 돈이다. 주어야 할 새경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어찌 공정함과 엄격함을 논할 수 있단 말이냐. 또한 앞의 두 가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으나 마지막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지 않느냐."-1권 80쪽

"제 소원은 그림자 신부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
"한 사람만 희생하면 양국이 평안하다. 그것이 모든 이들의 생각입니다. 지금껏 그래 왔고요. 그럼 그 한 사람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는 그런 화친 따윈 원하지 않습니다."
(……)
"아까 폐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인人은 인仁이라고요.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게 인仁이며,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세상 전체와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믿고 사람을 대하는 게 인仁이라 배웠습니다. 그림자 신부라 부른다 하여 한 여인이 그림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인은 살아 있고 무언가를 바라는 인간입니다. 한 사람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데, 더 많은 사람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두렵고 싫습니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없는 존재로 만들고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 말입니다. 폐하께서는 성군이십니다. 그런데 왜 폐하의 은택이 배우인 황후에게는 내리지 않는단 말입니까."-1권 192쪽

문득 준은 경요만 한 황후감을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니 단사황태후가 바라는 그런 황후감 아닌가. 강하고, 현명하고, 자신과 정사를 동등한 눈높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식견과 경륜을 갖추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은애하는 여인이지. 이 황궁에서 원하는 오직 한 사람의 여인이지.'
하지만 그는 경요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1권 292쪽

"하나 단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힘의 균형이 연 쪽으로 넘어가 중원이 연의 차지가 된다 해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들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땅에 뿌리내리고, 집을 짓고, 농토를 가꾸며 사는 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땅에 대한 집착을 끝내 배우지 못할 겁니다. 그건 동물의 본성을 바꾸는 것만큼 힘든 일이지요. 청랑족들의 피에 사냥과 이동에 대한 본능이 숨어 있는 것처럼 단의 백성들의 피 속엔 땅에 대한 집착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키우지 못합니다. 풀들이 자라는 곳을 따라 초원을 이동하며 살지 그 풀을 키울 생각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연의 군대는 중원에 폭풍처럼 불어닥치겠지요. 하나 한 계절 이상 부는 폭풍도 없으니……, 전투에서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기면 되는 겁니다."-2권 224쪽

"단은 지고 있는 해다. 하나 연은 떠오르는 태양이지. 언젠가 여능ㄴ 중원을 지배하게 된다. 그대는 떠오르는 해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야. 단처럼 늙어 가고 있는, 빛나는 옛 영광만을 붙잡고 사는 머리 굳은 이들이 그대 같은 여인을 품을 수 있을까?"
재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경요는 알았다.
경요는 대답했다.
"석양도 아름답습니다."
경요는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준과 함께 보는 석양이라면.
예상했던 거절이었다.
경요는 준과 함꼐 석양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석양을 가장 아름답게 불태우리라. 천천히 어둠이 내리게 하리라. 그게 그녀가 선택한 운명이었다.-2권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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