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조부의 상단을 물려받기 위해 자라온 여국 둘째공주 경요. 정인이 있는 첫째 하석공주 대신 그림자 신부가 되고자 한다. 혼인례를 치르고 여후儷后라는 봉호를 받았지만, 이름뿐인 황후일 뿐 그림자 신부는 진짜 황후가 될 수 없다. 황제의 아내로서 아이를 낳는다는, 반려로서의 권리는 황귀비와 후궁들의 것이며, 그림자 신부는 유선궁에서 유폐된 황후라는 이름의 산 인질이다.

 

"상단의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편 하나 없는 낯선 곳에 가서 신뢰를 쌓고 거래를 하는 것 말입니다."

"그 누구도 절 그림자로 만들 순 없습니다. 전 마지막 그림자 신부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제 발로 단국에 가는 것입니다." - p.30

 

"전 공주의 몸가짐이나 예법 같은 건 애초부터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무엇을 배웠나?"

"의술과 산학, 천문학을 배웠습니다. 또 칼을 쓰는 법, 산을 타는 법, 낙타를 모는 법, 낯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좋은 물건을 고르는 법, 이익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장사꾼이 이익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니 믿을 수 없군."
"장사꾼이 이익에 흔들리면 상도의 근본이 흔들리고, 임금이 권력에 흔들리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립니다. 외조부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利는 칼[刀]이라, 큰 이익에 눈이 멀어 덥석 잡았다간 칼날에 손을 크게 벨 수 있다고요. 이利가 이理가 되도록 하는 게 장사꾼의 역할이라 배웠습니다." - p.59

 

공주답게 자라지 않아, 공주답게 눈물을 흘리는 대신 그림자 신부 자체를 없애고자 하는 경요. 그녀와 혼인한 이는 단국 예석황제 준이다. 한 번 내쳐졌으나 아들을 낳았기에 다시 황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뒤로 오로지 아들을 제위에 올리는 것만을 생각하고 살아온 황귀비 규완 - 현 단사황태후의 하나뿐인 아들. 준에게 있어 형제는 오로지 물리쳐야 하는 상대였기에 언니를 위해 대신 그림자 신부의 길을 택한 경요가 신기했다.

 

대대로 그림자 신부가 존재해야 했던 이유인 환주 땅, 그리고 환주 땅에 벌어진 사건과 환주 땅을 노리는 연국 왕 제선까지 얽혀 정세는 점점 복잡해진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경요와 준, 그리고 둘 사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단사황태후가 선택한 황귀비 주유, 준의 벗 자균, 경요의 오라비 태원세자와 외조부인 상단주 위보형, 어머니 동비 유정 아씨. 자신 앞에 펼쳐진 갈림길에서 경요는 멋진 행동력을 보여준다. 무작정 나아가는 듯하나 실은 길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작중에서 몇 번이나 미인이 아니라는 묘사가 등장하지만, 그녀의 매력은 이 활기찬 모습일 것이다. 이 눈부신 모습이 한 발짝 너머서 바라보면 먼치킨에 가깝긴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빠져든 터라 큰 걸림은 느끼지 못했다.

 

<그림자 신부>에서 정말 인상깊었던 것은 누구 하나, 악을 위한 악이 없다는 것이다. 두 주인공 경요와 준은 물론이고 그들 사이를 가장 못마땅해한데다 만만찮으니 최고 악역이라 부를 만한 단사황태후, 무능했던 효성황제, 그림자 신부인 경요를 원하다 끝내 경요 그 본인을 연모하게 되는 제선, 제선을 키운 피 섞이지 않은 조모 효라까지. 캐릭터 하나하나에 제각각의 사연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이해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풀려나와 끄덕 하고 어느새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 두 권이었다. 이 분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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