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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하차 - 잘 나가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기타무라 모리 지음, 이영빈 옮김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인생의 절정을 달려가던 30대의 잡지 편집장이 인생에 갑자기 찾아든 병으로 지금껏 달려가던 레일 위에서 <도중하차>했다.
공황장애(이 병명을 알게 되는 것은 꽤 이후가 된다)로 일을 계속할 수 없고 회사에 병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사표를 던지게 되었지만, 전직도 프리랜서도 아니라는 말에 선거에 나가냐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마흔할 살에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인가 실감'(p.61) 하고 '일을 그만둬서 수입은 없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통장 입금내역에는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는'(p.83) 처지가 된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하여 '무직'으로 있었던 적이 없는 그. 병과 더불어 자신에게 새롭게 펼쳐진 일상에 익숙해지기가 힘들다. 가사와 육아를 해내다가도 자신의 이른바 '화려했던' 과거를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비정기적으로 생기는 수입원에 바쁘게 매달리기도 하고... '쉰다'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해 미련도 남아있고, 그 동안 일에 매달려 멀어졌던 가족간의 사이도 마음만 먹는다고 쉽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아내에게 천만 원을 받아 아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주인공은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아들과 관계를 회복해나가고 장애도 조금씩 극복해 간다. <도중하차>에는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소설이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멋지게 복귀, 따위의 해피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는 에세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불경기를 반영하여 복직이 그리 쉽지는 않다.(위키에는 저널리스트라고 소개되어 있긴 하다)
한 번 레일에서 내린 자가 레일 위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꼭 누구나가 인정하는 레일 위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레일 위를 달리며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아래에도 소중한 것이 존재한다. 어느 게 더 소중한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비록 병에 의한 것이어도, 레일에서 내려와서 그 아래의 가치를 주워낸 시간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다. 후반부의 된장국을 만드는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