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오래된 책 몇 권에 대한 이야기다. 오래된 책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오래된 책에는 내용뿐 아니라 책 자체에도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 '이야기'가 반드시 아름다우리라는 법은 없다.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추한 내용도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

- p.13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권,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화자 고우라 다이스케는 책을 읽지 않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스물셋 청년이다. 책을 읽지 않는 이 청년은, 책 자체를 싫어하진 않는다. 긴 글을 읽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뿐이다. 이유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인데, 할머니의 책을 건드렸다가 혼쭐이 난 뒤 장문 자체를 읽지 못하는 '체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이스케는 할머니의 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소세키 전집』 제8권 『그 후』에 적힌 '나쓰메 소세키, 다나카 요시오 님께'라는 사인의 진위 여부를 알기 위해 할머니가 소세키 전집을 구입했던, 그리고 자신이 6년 전 지나쳤던 비블리아 고서당을 찾아간다.

 

다이스케가 6년 전 스쳐지나가며 보았던 그녀, 이제 비블리아 고서당의 주인이 된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병원 침대에 앉은 채로 『소세키 전집』에 얽힌 옛 이야기를 풀어낸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는 『소세키 전집』외에도 『이삭줍기·성 안데르센/고야마 기요시』, 『논리학 입문/비노그라도프, 쿠즈민』, 『만년/다자이 오사무』 등 네 권의 실제 책이 등장하고, 한 권의 책에 한 가지 에피소드를 담았다. 이야기를 담은 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불러들여, 책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첫 에피소드는 두 주인공이 만나며 다이스케 할머니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책등빼기' 시다의 등장과 시다가 도둑맞은 책, 그리고 책을 훔쳤던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책을 팔기 위해 찾아온 손님과 그의 아내, '책을 한 권 판다'는 단순해 보이는 일 사이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었는지 조심스레 펼쳐보인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어쩐지 첫 번째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하는, 시오리코가 개인 소장한 희귀본 『만년』과 그것을 노리는 사람, 책을 아끼는 사람들 간의 이야기이다.

 

에피소드는 때로 훈훈한 엔딩을 가져오기도 하지만(세 번째 에피소드), 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한다(네 번째 에피소드/"나는 책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가족도, 친구도, 재산도, 이름조차도. 이게 내 본심이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설령 몇 년이 걸린다 해도 나는 이 책을 가질 거야!" - p.288). '책 좋아하는 책벌레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 이라는 인연에 대해서 전율하기도 한다.

각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추리 면에서 본다면 큰 점수를 주기 어려울 것이다. 시오리코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책에 남긴 흔적과 전해들은 이야기만을 그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지나친 확대해석, 때로는 작위적이며 과거의 일인 경우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불안을 품고 있다. 하지만 소설, 단지 이야기로서 본다면 술술 읽히며 막힘없이 진행되니 기꺼이 그 이야기에 실려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책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과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 우리는 책을 통해 이어진 사이였다. - p.249

이 구절처럼, 책 이야기를 좋아하는 시오리코와 책을 읽지 않았기에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다이스케에게는 실제로 책을 읽었는가 읽지 않았는가의 간격이 있고, 책에 대한 태도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간의 간격을 조금씩 좁혀나갈 모양이다. 다음 권에서 어떤 책이 더 등장할지, 거기에는 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지, 다이스케와 시오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기대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이 공간의 매개이며 사건의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읽으면서 <명탐정 홈즈걸>을 떠올렸다. 엄연히 말하자면 고서점과 서점, 고서점 주인과 서점 직원 등으로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책에 얽힌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면 <명탐정 홈즈걸>도 추천해본다.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검색해보니 마침 도서출판 b에서 다자이 오사무 전집이 나오는 중이다(제1권 <만년>, 제2권 <사랑과 미에 대하여>, 제3권 <유다의 고백>, 제4권 <신햄릿>, 제5권 <정의와 미소>. 전10권 예정). 시오리코가 소장한 초판본('자신을 가지고 살아가자. 살아있는 이들은 모두 죄인이니 - p.237')이나 복각판처럼 언컷본은 아니지만^^ 읽어봐야겠다.

 







/1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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