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의사라는 직업은 구술시험으로 적성을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가 얕지 않습니다. 지식 따위는 사소한 곁가지입니다. 지식은 임상의 바다에 뛰어들면 싫어도 익히게 됩니다. 그 이전에 더 중요한 자질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다카시나 교수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걸 추가시험 과제로 하죠. 잘 생각해 보세요."
약간 불친절하다고 느꼈는지, 다카시나 교수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힌트를 한 가지만 드리죠. 룰은 깨기 위해 있는 겁니다. 다만 보다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개인적인 확신이 있을 때만 깰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내 눈을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적어도 지금 학생의 말을 듣고 보니 내 판단이 틀리지 않을 거란 확신은 들지만." - p.142


제4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심장이식의 권위인 기류 교이치를 중심으로 꾸려진 바티스타 팀은 평균 성공률 60%인 바티스타 수술을 백 퍼센트 성공하던 중 세 차례 수술 실패를 겪는다. 이상을 느낀 기류는 다카시나 병원장에게 외부 감사를 의뢰한다. 그리고 외부 감사를 맡게 된 것이 외과와는 인연이 없는 부정수소외래, 일명 구치외래의 '나' 다구치 고헤이다.

기류는 말할 것 없는 스타 의사이지만, 다구치는 전혀 다르다. 그의 구치외래는 "환자들에게서 구치외래라는 존재가 떨어질 날까지 묵묵히 시간의 요람을 흔든다". 그는 애초에 강사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외부에서 온 다른 의사가 의국장 자리를 노리고 음모를 꾸미자 선선히 의국장 자리에서 내려오기 위해 부정수소외래를 만들었다. 명성을 바라고 권력 투쟁을 하는 의국에서 꽤 이색적인 존재인 셈이다.

다구치는 수술 카르테들을 조사한 후 기류 교이치 / 가키타니 유지 / 사카이 도시키 / 하바 다카유키 / 히무로 고이치로 / 오토모 나오미 / 나루미 료, 바티스타 수술 팀원의 면담 조사로 들어간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그의 조사는 무의식중에 수술 사망이 살인에 의한 것으로 단정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의료 미스를 계속 의심한다. 실제로 그의 눈앞에서 실시된 첫 번째 수술은 성공했지만 두 번째 수술은 실패한다. 다구치가 수술 사망이 단순한 의료 미스가 아니라고 결정내린 순간, 현장에는 탐정이 나타난다. 후생노동성의 괴짜 공무원 시라토리 게이스케, 화식조란 별명을 지닌 로지컬 몬스터[논리 괴수]다. 그들은 다구치가 조사한 패시브 페이즈를 기초로 액티브 페이즈, 오펜시브 히어링으로 사람들을 조사해 하나씩 소거하며 범인을 찾는다.

"머리로 좀 생각을 하세요. 선입관을 버리고." - p.420

역자 후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이야기는 정말로 <엔터테인먼트한 소설>이다. 되새겨 보면 환자가 수술 중 병원 침대 위에서 살해당했다는 끔찍한 사건이지만, 책을 읽는 와중에는 그것을 생각할 새가 없다. 사건 전체를 바라보며 서술하는 다구치는 살인사건 그 자체보다 범인을 찾기 위해 팀원들의 인물상과 그들 사이에 엮인 관계를 신경쓰고, 거친 조사 방법에 얼빠진 것 같지만 핵심을 잡아내는 시라토리는 딴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바티스타 수술 팀, 그를 숭배하거나 질투하는 이들, 병원 사람들, 매스컴, 공무원 등. 범인인 사이코패스가 발견되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그가 수술대로부터 끌어내려진 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재미있었다'고 생각했다. 병원, 수술 사망, 사이코패스. 한없이 질척거릴 수도 있는 이 소재를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니, 라고 생각해서 감탄했다. 주저할 것 없이 별 다섯 개짜리 <엔터테인먼트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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