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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흐드러지다 2 (완결) ㅣ 흐드러지다 2
여은우 / 로코코 / 2018년 4월
평점 :
제윤이 혜아를 찾아내고, 여은이 숨을 거두고, 무영의 죄가 끝나는 <흐드러지다> 완결권.
무영이 혜아를 그림자로 만들었다면, 여은은 혜아를 그림자로 살게 한 캐릭터다. 황후로서 간택되었으니 운명이 조금 달랐다면 혜아의 자리에 여은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은은 제대로 된 등장 없이 숨을 거둔다. 제윤이 혜아를 눈치챈 바로 그 때에, 역할이 다했다는 듯.
무영은 여은을 아끼고 사랑한다 알려졌지만, 그마저도 부성애라기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준 도구를 대하는 것에 가까웠다. 무영이 바란대로 생각이 단순하고 무영에게 복종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애정이었으며, 타의나마 무영이 정해준 길을 벗어나자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본인이 인식하지 못했을 뿐, 사실 여은의 삶에도 무영이라는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던 셈이다.
삶에 대한 절박함을 가득 안고 있는 눈동자들을 볼 때면, 무영은 늘 그 우위에서 오는 짜릿함을 즐겼다.
아비와 힘을 잃고 울던 제윤을 볼 때는 황제마저 무영의 발아래에 있다는 전율이 일었고, 무영의 입김에 휘둘리던 혜아를 볼 때는 자신의 손에 한 사람의 인생이 휘저어질 수 있다는 황홀감이 있었다.
무영이라는 캐릭터는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졌지만 그것이 작중에서 악인 매력적인 악역이 아닌, 그저 두 주인공의 시련이 되기 위해 만들어져 악만을 이야기하는 악역에 가깝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악역을 몰아내려 할 때, 당연하지만 악역도 저항을 시도한다. 이른바 최후의 결전이고, 마지막 사건인 셈이다.
"그대의 청대로 내가 그대를 죽일 겁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살려 낼 겁니다."
"그대의 거짓 이름을 죽이고 본래의 이름을 살려 낼 겁니다."
어찌 보면 예상했던 전개. 혜아는 여은으로서 제윤과 만났기에, 여은이 죽어도 혜아는 살 수 있다. 혜아가 지금껏 무영에게 딸로 인정받은 적이 한 번도 없고 진짜 여은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자면 당연한 결말에 가깝다.
1권에서 제윤이 혜아의 정체를 언제쯤 눈치챌 것인가를 기다렸다면, 2권은 무영이 언제쯤 반란을 일으키고 그것을 이겨낼지에 대한 기다림이다. 1권은 두 주인공이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시간이 있었으니 그렇다해도, 2권은 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혜아를 빼내기 위해 혜아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무영을 상대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혜아는 불안해한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황제를 한 번 갈아치울 만큼의 권력자에 거의 평생 자신을 묶여지내게 한 사람이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이걸 제윤이 자신이 준비한 것을 보여주며 안심시켜주는 방향으로 풀어내는데 지나치게 길어 지루해졌다(혹시나 했는데 이 이야기의 떡밥이 나중에 뭔가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끝까지 읽은 후 본편 전개가 길어진 것이 더욱 안타까운 것이, 황후를 죽은 것으로 처리하여 잠시 출궁한 혜아가 새 가족과 지내는 것까지 세세하게 풀어냈으면서, 완결 뒤의 외전은 전혀 없다. 여은으로서 입궁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으니 혜아로서 입궁하는 것이 이야기의 끝인 것 자체는 좋은데, 이제야 자기 자신으로서 제윤의 곁에 설 수 있게 된 혜아와 진정한 황제가 된 제윤의 이야기를 좀 더 보고 싶어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