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 최초 감염자를 찾습니다!
탐정이 된 과학자들 | 마릴리 피터스 글 | 다른
2015.07.01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문제가 심각한 국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감염자 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감염관리 시스템의 부실과 초기 대응에서 미숙함을 여지없이 드러낸 정부의 무능 대처에 국민들은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할 것 같다. 2002년 경험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학습효과도 약효가 다 떨어진 걸까.
나날이 발전하는 정보 통신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는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소리 없이 밀려드는 전염병의 위협에서 우린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과거 인류 역사 속에서는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에볼라, 에이즈 같은 전염병이 전쟁보다 더 많은 생명을 빼앗아갔다. 그렇다면 이 전염병들의 최초 감염자와 발병 원인 및 감염 경로는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탐정이 된 과학자들》은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의 조롱을 받아가며 전염병의 비밀을 파헤친 전염병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초 감염자를 추적하고 거기서 얻은 정보를 단서 삼아 전염병의 발생 원인과 전염 경로, 대처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마치 한 권의 추리소설처럼 재구성한 논픽션이다.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전염병학자에 의해 병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초기 전염병학자들은 마치 탐정처럼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자료를 찾고 단서를 수집해야 했다. ‘일주일 단위로 출생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한 통계자료’를 살펴보며 의심스러운 사망자의 기록을 분석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전염병을 유행시킨 감염자의 행적을 추적해 뒤를 쫓기도 했다. 이렇게 최초 감염자를 찾고 나면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단서 삼아 전염병의 비밀을 파헤친다.
반면 오늘날에는 구글의 ‘플루 트렌드 서비스’가 전염병학의 도구로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검색 횟수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지 지역별 또는 나라별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병이 어떤 방식으로 퍼져 나가는지도 살펴볼 수 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첨단 의학 기술이 제 아무리 발달하여 치료요법이 존재하더라도, 끊임없는 전쟁으로 구조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아프리카 대륙에는 전 세계 에이즈 감염자의 70%가 살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전염병의 발병 원인도 모르고 비참하게 죽어갔던 것이 과거의 이야기지만 최신 의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염병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런데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이 후진국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엉뚱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나날이 커져가는 빈부격차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까지 하는 아이러니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늘날의 전염병학’을 다룬 이 책의 ‘맺는 글’ 뒤에는 이현숙 박사(연세대학교 의학사연구소 연구교수)가 우리나라의 전근대 시대, 시기별 전염병 역사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전염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전염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전염병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등을 통해 전염병학 관점으로 한국사를 둘러보는 재미도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