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전날,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읽던 중,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하마터면 역사속에 묻혀질뻔 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불행했던 한 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용병'이란 부끄러운 위치로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참전한 한국군에 맡겨진 것은 인명손실의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민간인 학살의 위험성이 높았던 토벌작전이였다고 합니다. 저자를 포함한 진실위원회는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셨던 문명금, 김옥주 두 분 할머니께서 생전에 정부의 생활보조금과 민간단체에서 모아 드린 귀한 돈을 전쟁으로 고통을 당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썼으면 한다고 보내신 돈으로 평화역사기념관 설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글에서 적고있습니다. 우리가 피해자였던 일본위안부문제나 노근리를 비롯한 민간인 학살에 관심갖는 것에 비해 다른 나라에선 우리가 가해자였던 역사적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오늘(12월 2일)
그건 우연이였을까... 베트남에서 온지 8년째 된다는 광진씨를 소개받았습니다. 종이에 씌여진 질문을 눈으로 좇아가며 어설픈 질문자의 물음에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며 친구들, 가족이야기에 해맑게 웃음을 보이시던 광진씨. 언뜻 언뜻 스치는 표정하나 하나에 한국에서 지내온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것같습니다.
한국에 온지 8년째인 광진씨는 베트남이름도 발음소리가 한국이름과 비슷한 Pham quang chinh (쾅친)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아내와 함께사는 2살된 딸아이의 이름도 광진씨가 '민주'란 한국이름을 지어주었답니다. 2002년 센터가 세워진 때부터 계셨다고 하시니 광진씨는 창립멤버십니다.^^그런 만큼 센터에서 다양한 일에 참여하셨는데요, 특히 아시아문화 축제가 제일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눈치없이 베트남 쌀국수 너무 맛있죠?!! 이렇게 불쑥 끼어들었죠.^^ 광진씨가 환히 웃으시면서 그것도 축제때 만들었었다고 자랑도 하십니다.^^ 광진씨가 가장 행복한때는 열심히 번 돈을 베트남가족들에게 보낼때라고 합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온 친구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고,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서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장사를 하고싶다고 하십니다. 시간이 흐른 뒤 제가 베트남으로 배낭여행을 갔을때, 우연히 광진씨의 가게에 들어설 어떤 날을 꿈꿔봅니다. ^^
"무슨 일을 해요?"
"어떤 공부 했어요?"
광진씨가 인터뷰 중간중간 제게했던 질문들입니다.
'과연 난 지금까지 무슨일을 했으며, 어떤 공부를 한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무슨일을,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마음속으로 질문들을 곰곰히 되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