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 조선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의 애도문 44편 AcornLoft
신정일 지음 / 에이콘온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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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감정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서 누구나 희로애락을 겪으며 특히 애(哀)의 감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감출 수 없는 법이다. 조선시대처럼 감정의 표현을 극도로 자제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글로써 무너지는 슬픔을 표현한 이들이 글을 남겼다. 말로는 다 못할 절절한 심정을 표현한 글을 통해 그들의 깊은 슬픔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유교사상에 젖은 우리나라는 남자는 함부로 울면 안되고 슬픔을 마음놓고 표현할 수도 없었다. 남자는 함부로 슬픔을 표현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의 성비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슬픔을 표현할 길이 없었던 그들의 눈물과 울음, 그리고 깊은 그리움은 그들의 기록에 배여 지금까지 절절하게 다가온다.


절제와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를 지키오던 선비들조차 배우자와 자녀의 죽음 앞에서, 형제와 벗을 잃은 슬픔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정약용은 막내 아들을 잃은 슬픔을, 김정희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혜경궁 홍씨는 남편 사도세자를 향한 참담한 슬픔을 글로 적었다. 말로는 다하지 못할 애절한 고통과 그리움을 담아낸 슬픔의 서사이다.


44개의 다양한 형태의 애도글을 통해 그들의 상실의 슬픔과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한지 시대를 넘어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너무나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한자로된 원문과 더불어 필자의 번역이 곁들어져 해석하는데 무리가 없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잘 풀어쓴 필자의 깔끔한 해석이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해준다.




자녀를 먼저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부모의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스러운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일은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을 안기는 일이다. 특히 막내라면 부모에게 얼마나 애틋한 존재일 것인가? 정약용은 형제가 사형에 처해지거나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6명의 자녀를 질병으로 잃고, 그 슬픔과 참혹함을 견뎌야 했다.


가족을 떠나 유배지 강진에서 두 해를 보내고 있을 때, 막내아들 농아가 4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피를 토하는 충격으로 다가왔음이 틀림없다. 농아를 위한 추도문은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미안한 마음이 나타난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부모로서의 무력함을 느꼈으리라.


유배지에서 홀로 지내는 고독과 상실의 안타까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더해 사랑하는 막내아들의 죽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많은 책을 읽고 연구를 하며 개인적인 학문 성과를 이룩할 정도로 큰 어른이었던 다산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에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9명의 자녀 중 6명을 잃은 아빠의 슬픔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부모의 사랑과 슬픔을 결코 느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실과 그리움을 느낄 수 없다. 평소에는 표현하지 않지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의 정도를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많다. 아버지들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지 않을 뿐,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머니 못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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