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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맛 - 셰익스피어처럼 쓰고 오스카 와일드처럼 말하는 39개의 수사학
마크 포사이스 지음, 오수원 옮김 / 비아북 / 2023년 8월
평점 :

<콜린스 영어사전>의 서문을 썼다는 필자의 이력을 보고 무조건 선택한 책이다.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책의 서문을 쓴다는 것은 이미 글쓰기의 대가임을 증명한 셈이다. '마크 포사이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외국에서는 꽤 유명한 듯 하다. 특히 작가, 언론인, 편집인이 직업인만큼 글쓰기에는 도가 튼 것으로 보인다.
그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는 천재적 소질을 가진 작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글쓰기 기법을 배우고 꾸준히 기량을 갈고 닦은 노력파에 가깝다. 그의 초기작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많은 수사적인 표현들도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수사법은 설득의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수사적 표현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단어를 바꾸어 특정 구절을 더 부각해서 기억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공식, 즉 위대한 대사나 문구를 만들기 위한 공식을 말한다. 이런 공식들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꾸준히 연구해 왔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당시는 수사적 표현은 '수사법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영국인들은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이런 표현을 배우고 또 배웠다. 글쓰기를 하면서 이런 수사적 표현을 배우지 않는 것은 마치 요리사가 눈을 가리고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수사는 결국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이며, 언어는 우리가 현실을 파악하고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특히 수사는 정치에 많이 활용된다. 2000년대 초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이라는 수사로 중동 전쟁을 일으켰다. 2020년 초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조국을 위한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수사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힘 있는 자들의 수사는 대중을 움직이는 것이다.
필자는 두운, 동어이형반복, 대조법 등 총 39가지의 수사학을 소개한다. 여기 있는 내용을 심도 있게 공부하면 셰익스피어처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전반적으로 셰익스피어의 글을 분석하는 부분이 많다. 그의 능력을 폄하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그의 노력을 부각하고 후천적 능력임을 알리려는 것 같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이다. 필자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의 표준 번역본을 쓴 토머스 노스의 원문과 셰익스피어가 거의 몽땅 베껴쓴 글을 비교한다. 다만 여기에 셰익스피어는 작은 변화를 준다. 바로 앞에 나오는 단어들을 'b'로 시작하는 단어들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The barge she sat in like a burnished throne, Burned on the water: the poop was beaten gold;
두 행에만 'b'가 4번 나온다. 두운의 효과를 강조한 것이다. 위 글 외에도 노스의 글을 베껴 t, f, w, a 등의 두운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였다. 필자는 셰익스피어를 도둑이라 말한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남의 양말을 슬쩍한 후 곱게 기워놓는 일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말이다.
사람들은 두운 효과를 좋아한다. 그리고 작가 입장에서도 두운은 다른 수사적 표현보다 만들기 쉽다. 두운을 활용하면 소재나 내용과 상관없이 훨씬 기억하기 쉽다.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라도 따라해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일종의 언어 유희에 가까운 느낌이다.
우리가 익히 들었던 잘 알고 있는 고전들을 끌어다가 39가지의 수사학을 펼친다. 아무 생각없이 읽었던 표현들이 이런 치밀한 계산을 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나는 글을 생각나는대로 쓰는 편이지만 작가들은 생각의 구조를 짜고, 수사학을 고민하면서 쓴다고 하니 대단해 보일 수 밖에 없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유명한 고전을 분석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수사학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