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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평점 :

현실 경제는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내게도 어려운 분야이다. 학문으로 배우는 경제학과 경영학은 실제로 현실과 괴리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어려운 경제 이야기를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경제학 교수가 음식 이야기를 한다. 경제학과 음식 이야기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경제학 언어의 마술사인 장하준 교수라면 다르다. 그 동안 여러 저서에서 시도했듯이 상식적인 개념을 뒤엎고 다양한 사회의 이면을 밝혀낸다. 이 책 또한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에게 경제 개념들을 잘 알려준다.
마늘로 시작해서 총 18가지의 재료와 음식을 통해 경제학의 핵심 개념인 가난과 부, 성장과 분배, 자유주의와 보호주의, 제조업과 서비스업, 금융의 자유화와 규제, 복지의 확대와 축소, 민영화와 국영화, 공정과 불평등 등을 쉽게 설명한다.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 하더라도 경제와 음식 이야기를 어떻게 버무릴지 무척 궁금했다. 책을 읽다보니 경제학을 읽는 것인지, 음식 이야기를 읽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절묘하게 구성되어 있다. 마치 경제 소설을 읽는 듯하게 순식간에 빠져든다. 음식에 대한 지식과 함께 경제학 지식이 나도 모르게 성장하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인 '고추'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저자는 18개의 재료와 음식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과 사례를 통해 서두를 열어간다. '고추'에 대한 경험은 중국 쓰촨지역으로부터 시작한다. 고추에 대한 언급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는 쓰촨지역의 음식을 통해 GDP의 개념을 소개한다.
GDP는 현대 경제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인 무보수 돌봄 노동을 무시한다. 이런 무보수 돌봄 노동은 대부분 여성들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여성들의 노동력이 무시되고 있다.
저자는 무보수 돌봄 노동은 물론이고, 성적 편견과 성차별 관행으로 인해 심각하게 저평가되는 보수를 받는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 관행 및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제학 서적에서도 다루지 않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전세계 수십 억 명의 사람들에게 고추가 없는 음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수의 여부와 상관없이 돌봄 노동이 없는 인류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쓰촨요리를 통해 매운 맛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서 새로운 음식 문화에 대한 지평이 늘어난 동료 교수의 경험을 통해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돌봄 노동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 관행 및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더 공평하고 균형잡힌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어려운 경제 이론을 음식과 결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오래된 고전적인 문제에만 집착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피하지 않고 문제 제기와 함께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려운 경제학 이야기를 상상하지 말고, 죽어 있는 경제학 지식에 겁내지 말자. 저자의 타고난 혜안을 바탕으로 다양한 식재료에 버무려진 다양한 경제 이슈를 재미있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