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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4월
평점 :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함께 미국 장편소설의 양대산맥을 이룬다. <노인과 바다>와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의역 중심의 기존 번역서에 이의를 제기하고 최대한 원서에 가깝게 번역하기로 유명한 이정서 작가님의 최신작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5년 출간 당시만 해도 대부분 무관심했다. 그나마 책을 읽은 사람들도 호평보다는 혹평이 더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1950년~60년대 텔레비전의 대량 보급으로 지금과 같은 위대한 경지에 오르게 된다.
그 이후 2013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가 개봉되면서 판매량이 3배로 뛰었다. 지금은 미국 고교생의 필독서가 되어 <노인과 바다>와 함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의 미국의 사회상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무능력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개츠비는 성공의 야망을 품고 육군 장교가 되어 데이지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데이지는 돈 많은 상류층의 뷰캐넌과 결혼하고 되고 개츠비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개츠비는 밀주 사업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데이지 근처에 저택을 구입해서 그녀를 그리며 산다.
옆 집에 사는 닉이 데이지와 친척 사이임을 알게 되고, 개츠비는 닉을 자신의 파티에 계획적으로 초대한다. 화려한 주말 파티를 통해 마침내 데이지를 만나게 되고, 둘은 아직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 때, 데이지는 뷰캐넌과의 사이에 딸을 두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남편의 외도로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개츠비와 사랑을 시작한 데이지는 남편에게 파혼을 요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차를 타고 가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자동차 정비소 부인을 죽이게 된다. 정비소 남자는 개츠비가 자신의 아내를 죽였다고 오해하고 개츠비를 살해한다. 닉은 정비소 부인을 죽인 사람이 데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개츠비는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죽음을 맞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인생을 살아온 남자의 인생 스토리이면서 러브 스토리다. 하지만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미국 사회의 계급 사회적인 단면을 나타내는 사회 반영 소설이다. 이런 면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다.
소설이지만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고, 시대가 변해도 사람이 추구하는 사랑과 부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를 다룬다. 100년 정도 지난 지금도 작가가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사랑, 부, 사회상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지금도 사회는 부의 양극화가 심하고, 개츠비처럼 부를 물려받지 못한 사람들이 계층 이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부를 세습받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이스트에그는 물질적인 부와 세련미, 교양을 갖춘 사회지만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타락한 사회로 묘사된다. 반면 웨스트에그는 개츠비처럼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이스트에그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를 지키면서 사는 곳이다.
상류사회의 타락한 도덕적 가치에 대해 다루는 책과 영화들이 많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아서 영화가 더 재미가 없다고 말한 한 영화감독의 말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스트에그에 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과거의 사랑을 찾기 위해 부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찾았지만 결국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고 개츠비는 죽는다. 개츠비가 보여준 사랑은 어쩌면 과거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이 아니었을까?
결국 옛사랑에 대한 집착과 소유는 성공을 위한 좋은 동기가 되었지만 비극을 초래한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을까?
사랑과 성공,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100년 넘게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