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옛날엔 그랬어
비움 지음 / 인디언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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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도 안 돌아보면서 일을 하고, 자기계발서와 경영서를 읽으면서 열심히 달리다 보면 간혹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시를 읽는 일은 내게는 아직도 버거운 일(?)이다. 시는 여유를 가지고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아직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작년 말부터 기회가 되는대로 시를 읽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에는 2019년에 등단한 비움 작가의 시를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시의 세계에 푹 빠져 등단한 작가다. 모든 일은 알아갈수록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비움 시인도 시를 처음 쓸때와 써가면서 점점 어렵고 그 매력에 빠져든다고 한다.



<나도 옛날엔 그랬어> 시집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듯 하다. 사용한 시어들이 어렵다기보다는 함축적 의미가 많이 담긴듯 하다. 내공을 가진 시인의 시를 평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 개인적인 의견만 조심히 써보려 한다.



시인은 사랑을 하고, 이별 수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을 즐기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세상에서 숨기보다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반려묘를 통한 세상과의 교감도 시도한다. 그리고 시집에 산문같은 시가 나오는 것도 신선하다.



같이 있다는 건



너랑 밥을 먹는다

니 벗은 발가락 사이에 나의

얇은 발가락을 끼워 넣는다


우린

아무 것도 없는데

그냥 좋았다


배달된 육개장

빨간 국물

너와 먹으니 맛있다

얼굴에 국물자국 묻혀가며

킥킥거리다


우린

뭘 해도 좋았고

아무 것도 안 해도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감정을 이것보다 더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다. 특히 "니 벗은 발가락 사이에 나의 얇은 발가락을 끼워 넣는다'라는 구절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꽁냥꽁냥 사랑 놀이가 상상이 된다. 말 자체가 그림이 되어 머리 속을 맴돈다. 사랑하는 사이에 저 구절만큼 살가운 느낌이 또 있을까?



외로운 날


서녘 하늘

구름의 살갗이 붉디붉어질 때

늙은 바람이 기와집 낡은 문간을 만지고 지나간다

그늘진 방구석 귀퉁이에 아이혼자

우두커니


창밖 누런 산 갈대 바람에 부대껴 휘어진다



누구나 외로운 날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서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어도 소통이 안되서 외로울 때도 있다. 외로움은 모든 사람을 찾아가지만 머무르는 시간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오래 머무르면 힘들어진다. 시인은 그 외로움이 '만지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사랑하는 인연을 떠나보내고도 이별에 젖어 슬퍼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과정처럼, 지나가는 바람처럼 여기는 듯 하나 문득 찾아오는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럴 때는 스치는 외로움을 스며드는 그리움으로 멋지게 승화시킨다. 최대한 절제되고 아름다운 그녀의 시어는 하나의 그림이다.



시집에는 아름다운 시와 함께 아름다운 삽화들이 가득하다. 화가인 시인이 직접 그린 것들이라 그런지 시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시를 읽으면서 그림을 보는 재미가 너무 좋다. 시를 읽다가 그림에 빠져 감정이입을 시도해 본다.



시인은 반려묘 '단무'를 통해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듯 하다. 세상과 단절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왜인지 기존의 어떤 것과의 이별을 통해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인의 사랑과 이별, 미니멀리스트, 반려묘와의 일상, 그리고 주변 이웃들과의 일상을 조그마한 시 한 권에 잘 녹여 놓았다. 때로는 쉽게 읽히지만 때로는 집중해서 음미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속도가 빨라지려고 하면 산문같은 시가 등장해서 시선의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다른 시인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읽고 상상하고 싶다면 한 번 쯤 읽어보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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