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케 호모 - 제1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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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20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오수완 작가의 제1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을 만나보았다. 니체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에케 호모 Ecce Homo》라는 제목의 의미부터 검색해 보았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로 "이 사람을 보라."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예수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이 사람'은 누구일까?


종교라는 신화에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이 더해져 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중년 아저씨 노먼과 어린 소녀 서브가 인류의 99%가 사라진 폐허 속으로 여행을 떠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둘의 여정이 불안하기만 한 까닭은 도덕이나 윤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멸망한 지구를 여행한다는 점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지나간다. 불안하게.


불안하게 이어가는 여정의 목표는 지텍의 엑스포이다. 가는 과정은 고난의 길을 옮겨놓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지구 멸망을 겪은 이들인데도 변함이 없다. 한결같은 인간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미래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데 오늘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말을 하지 않던 소녀 서브의 첫 마디가 "너희들은 변하지 않아."(p.111)인 까닭은 결말쯤에 밝혀진다. 약한 존재는 오늘도, 미래에도 희망이 없는 것일까?


세계를 폐허로 만들어버린 '프라임'이라는 초인적인 존재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흥미로운 SF 판타지로 변한다. 노먼과 소녀 서브가 지텍의 엑스포에 가는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곳에서 가장 인간적이었던 존재를 만난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최상의 빌런이 등장한다. 세상 멸망을 비껴간 1%에 든 망나니. 인간 말종. 정말 짧게 등장하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인물이다. 다른 고난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지구 멸망 후에도 이런 자들을 만나야 하나?


결말은 앞서 던져놓은 많은 '복선'들을 하나둘 터트려 '반전'을 만든다. 도로시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노먼과 서브가 찾았던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도로시가 찾아 떠났던 것은 결국은 곁에 있었다. 그렇다면 노먼과 서브가 찾은 것은 어디에 있을까? 화를 낼 줄 모르는 아저씨 노먼과 말을 하지 않는 소녀 서브의 발걸음은 무겁지만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경쾌하다. 지구 멸망 후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그려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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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따위 멸망해도 ㅣ 사계절 1318 문고 155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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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로부터 파일을 제공받았습니다."


남유하 작가의 상상력은 가끔씩 놀라운 게 아니라 늘 놀랍다. 세 번째 만나게 된 작가의 단편집은 지면이 아니라 메일을 통해서 받은 파일 형식이다. 그것도 죽음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받은 3개의 단편. 단편집 《세상 따위 멸망해도》의 반쪽만 만나보고 전체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사랑'이라는 부분으로 만나본 작품들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청소년 아이들의 감성을 작가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죽음'으로 묶인 단편들도 만나보고 싶다.


"처음부터 빛나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사랑을 선택한 덕분에 <빛나지 않아>를 통해서 사랑을 온몸의 빛으로 측정할 수 있는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랑이 식으면 마주 잡은 손에 빛이 나지 않는다. 애정의 강도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서 좋은 것일까? 사랑이 식어버린 순간을 너무 빨리 알아버려 나쁜 것일까? 그런데 제목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상하게 하는 데 이 아이들은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세상 따위 멸망해도> 자기 전 천장의 별을 보고 소원을 빌은 주인공 앞에 헤어진 구남친이 찾아오면서 짧지만 여운이 긴 이야기는 시작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사귀었던 둘은 각자의 아픔과 슬픔을 참고 견디기 위해 이별하게 된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 다시 만난다. 그런데 인류는 모두 사라지고 단둘만 남았다. 재이는 주인공의 소원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숭이 손'이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지는 모르지만 이 아이들은 '왜?'세계 멸망을 빌었던 것일까?


"퇴소하시겠습니까?"


<살아남은 아이들>은 또 다른 모습의 아포칼립스를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많은 아이들이 죽자 아이들을 보호시설로 모이게 한다. 학교. 원형 돔 형태의 보호막이 쳐진 곳에서 인공 숲을 산책하며 지내던 미로는 탈출을 계획한다. 룸메이트와 함께. 탈출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만 보호막의 세상에 도착한 두 아이는 엄청난 '반전'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한번 '반전'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삶과 안전한 삶. 어떤 선택이 좋은 것일까? 세계 멸망이라는 배경이 선택에 영향을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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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 페이지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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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열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조직경영, 인문학 프로그램을 개발한 교육 콘텐츠 전문가 홍승완이 들려주는 독서 이야기《터닝 페이지 TURNING PAGE》를 만나보았다. 단순하게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글쓰기로 이어지고 있어 흥미로웠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서법을 알려주는 본문도 좋았지만 '서평'의 예시문을 담고 있는 '부록'도 좋았다. 또한, 저자의 개인적인 독서법뿐만 아니라 헤르만 헤세 같은 유명한 독서가들의 방법도 알려주고 있어서 더욱더 흥미롭게 만날 수 있었다.


본문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독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들려주고, 2장에서는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깊이 읽기'심독深讀에대해 촘촘하게 설명하고 있다. 3장에서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독후감'인 이유를 '서평 쓰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4장에는 독서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 공간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여행, 술 그리고 책. '독서를 통해 삶이 깊어질 수 있는가?'에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본문은 한 단어 한 문장이 소중하다.


'깊이 읽기'심독深讀의 5가지 원칙 정독精讀, 문독問讀, 심독心讀, 재독再讀, 교독較讀에대한 디테일한 이야기가 '서평 쓰기' 로 이어지면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깊이 있게 읽고, 다시 읽기(재독再讀)를 하라고 권하고 있다. 5가지 원칙 중 심독心讀 이 가장 흥미로웠다. '거울 -창문 독서'로 소개하며 성찰적 독서와 공감적 독서의 좋은 점을 촘촘하게 들려준다. 재독을 통해 깊이 있는 독서도 도전해 보고 싶고, 교독較讀을 통해서 분석하고 종합하는 독서도 도전해 보고 싶다.


저자 자신의 경험을 담고 있어서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독서 실용서'이다.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며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면 효율적인 독서에 커다란 도움이 될듯하다. 저자처럼 최애의 책도, 최애 출판사도 정해보고 싶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책을 참고해서 폭넓은 독서보다는 깊이 있는 독서를, 3번 읽기를 도전할 좋은 책을 찾아봐야겠다. 독서에 깊이를 더하고 싶다면, 서평 쓰기의 참맛을 맛보고 싶다면 《터닝 페이지 TURNING PAGE》를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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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인가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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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07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한, 『트렁커』로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고은규 작가의 《이것은 소설인가》를 만나보았다. 7편의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는 단편소설집이다.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허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처럼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오늘 이야기로 다가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곱 편의 이야기에 보이는 우리의 현실은 소설처럼 극적이다. 극한에 내몰린 이들과 내모는 이들이 우리의 오늘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소설인가〉 소설집과 동명의 제목이 시작을 알린다. 기계공학과의 유일한 여학생이었던 나미가 저격 글을 쓴다는 소식을 접한 주인공 관철은 그녀의 저격 글을 찾아본다. 글을 올리는 블로그명이 '이것은 소설인가'였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나미의 글은 자신이 학창 시절 겪은 일에 대한 '저격'이었다. 관철은 그녀와의 에피소드가 별로 없었다. 그에 생각이었다. 그녀와의 통화에서 관철은 잊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야기는 갑자기 촘촘해진다. 관철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도덕적인 압박은 심해진다. 과거가 오늘이 되는 순간 심연에 있던 깊은 생각들을 만나게 된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과 〈묻는 남자〉는 만남보다는 이별의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은 부모의 이혼이 준 상처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이의 이별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짧은 이야기 속에도 강한 반전을 숨겨놓은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놀랐다.〈묻는 남자〉는 유출된 불법 영상으로 고통받는 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된 이야기이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옆집 남자의 계속되는 질문'미림 여고 나오지 않으셨나요?'에 조금씩 무너져가는 모습이 너무나 힘겨워 보였다.


《이것은 소설인가》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모두 '이것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소설집에 담은 오늘의 아픔과 슬픔이 모두 허구였으면 좋겠다. 성범죄 피해자의 삶이 조금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고,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인간의 가치를 대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어른이 아니길 바라고, 타인의 것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7편 모두 정말 흥미롭고 재미나게 만날 수 있었다. 제목에서 던진 '소설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지적 탐구가 7개 이야기와의 만남을 더욱더 즐겁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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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이윤 리 지음, 정혜윤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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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프린스턴대학교 문예창작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이윤 리의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를 가제본으로 만나보았다. 2025 카네기메달 수상작, 2025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 등 많은 타이틀을 보유한 책이다. 거기에 더해 2026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소개 글에 더 이상의 소개는 보지도 않고 선택했다. 두 아이를 잃은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인 줄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설픈 선택은 훌륭한 작품과의 만남을 선물했다. 올해 만나본 글들 중에서 최고의 문장, 최상의 작품이다. 글이 가진 매력을, 문장이 가진 힘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의 내용을 필사筆寫하고 싶은 책이다.


p.25. 그러나 삶은 소설 작법을 따르지 않는다. 어쩌면 소설이 삶보다 덜 제멋대로인지도 모른다.


p.36. 그럼에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야 한다. 비극의 안에서, 비극의 밖에서, 그리고 비극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는 일은 나 자신을 그 기이한 영역에서 분리해 내는 방법인 동시에 그 영역에 영구히 안착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16살(첫째, 2017), 19살(둘째, 2024). 정말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아이의 엄마의 후회나 슬픔, 아픔은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아이들의 과거를 그리기보다는 남은 엄마가 살아야 하는 오늘을, 살아갈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아이를 글로, 책으로 애도하고 있다. 그런데 애도하는 글에서 슬픔이나 아픔은 묻어나지 않는다. 왜일까? 7년 사이에 십 대 아이 둘을 잃은, 극한에 닿은 엄마는 오랜 시간을 둔 '회복'이 아니라 '급속적인 수용'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길을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놓는다.


p.42. 이 책은 삶의 극한에 관한 책이다. 세상 어느 부모도 머물고 싶지 않을 만큼 깊은 심연의 자리에서 쓴,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이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의 가제본은 240여 페이지 분량으로 두껍지 않다. 감성 에세이라기보다는 철학 에세이다. 깊이 있는 생각을 끊임없이 끄집어내는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마지막 챕터 23장의 제목은 이 책이 가진 의미를 단번에 알려주는듯하다.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기만 해도 온 집안의 공기가 얼어붙는데 두 아이의 죽음이 누르고 있는 죽음의 무게를 삶의 의지로 지탱할 수 있을까? 경험해 보지 않은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누구보다 강한 엄마의 의지를 만나볼 수 있는 정말 깊이 있는 에세이다.


p.171.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일은 외롭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는 어느 순간 느껴지는 외로움을 비롯해 어떤 감정을 적당히 지나쳐 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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